제약산업, 신약개발로 한국의 '화이자' 꿈키운다

머니투데이 김명룡 기자 2011.08.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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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위기의 한국 제약산업, 성공의 돌파구는(상)]

편집자주 정부가 고강도 약가인하 정책을 펴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 고갈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이에따라 110년간 국내 제약사들을 먹고 살기 쉽게 해준 제네릭(복제약)이라는 보호막이 일시에 사라질 위기다. 제약사들은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에 들어선 셈이다. 제약사들이 만드는 '의약품'은 일종의 공공재다. 제약사는 시장논리대로 자율경쟁은 하되 반드시 생존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 놓였다. 그래서 제약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많지 않다. 신약을 개발하고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세계로 진출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가장 확실한 해법이다. 과거에도 '모범 답안'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단지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을 뿐이다. 더 이상 행동을 미룰 이유도 시간도 없다. 머니투데이가 정부의 강력한 약가 규제정책 이후 국내 제약사들의 생존비법으로서의 신약개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1. JW중외제약 (30,000원 ▲200 +0.67%)은 지난 2000년 미국 시애틀에 '쎄리악(Theriac)'이라는 현지 연구소를 세워 12년간 500억원 가까이 투자했다. 처음 10년간 쎄리악연구소가 내놓은 연구성과는 전무했다. 그래도 투자는 계속됐다.

2009년 비로소 이 연구소는 암 줄기세포를 사멸시켜 암을 근원적으로 치료해주는 표적항암제 후보물질 'CWP231A'에 대한 전임상시험에 돌입했다. 최근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혁신적 신약으로 임상시험신청(IND) 승인을 받고 미국 내 임상1상 시험에 돌입했다. JW중외제약은 'CWP231A'의 최종 개발에 성공하면 연간 1조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 최근 일양약품 (13,630원 ▼80 -0.58%)의 백혈병 치료제 '라도티닙'(제품명. 슈펙트)의 임상3상 시험이 시작됐다. 라도티닙은 일양약품과 가톨릭대가 공동개발한 아시아 최초의 백혈병 표적치료제다. 글리벡 내성환자에게도 효과가 있어 차세대 백혈병치료제로 기대되는 제품이다.

현재 세계 백혈병 표적항암제 시장규모는 약 50억달러에 이르고 있지만, 대부분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 제품이 독점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매년 300명 이상의 관련 백혈병 환자가 발생해 1000억원 가량의 건강보험 재정이 다국적 제약사에 지출되고 있다. 일양약품의 라도티닙이 출시되면 국민건강 증진과 의약품 무역수지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제약산업, 신약개발로 한국의 '화이자' 꿈키운다


두 국내 제약사의 사례는 신약개발의 장점과 가능성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약이 개발되면 제약사도 국민들도 모두 혜택을 보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제약사들 뿐 아니다. 국내 제약사들이 서서히 신약개발 성과는 내놓기 시작했다. 국내 제약사들은 1999년 7월 국산 1호 신약 선플라주를 개발한 이후 12년 만에 총 17개의 신약을 개발했다.

복제약을 만들던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개발에 뛰어든 것은 물질특허가 국내에 도입된 1980년대 후반이다. 이미 자본을 축적하고 있는 글로벌제약사와 신약 개발 태동 단계에 와 있는 제약사와 절대 비교를 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하지만 짧은 신약개발 역사와 다국적제약사에 비해 미미한 수준의 투자비용을 감안한다면 결코 무시할 만한 성과는 아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국내 신약개발 역사는 일본과는 20년,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서는 50년 이상의 격차가 있다"며 "양질의 인력과 수준 높은 임상시험을 바탕으로 비교적 빠르게 신약개발 능력이 성장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에 따르면 우리 제약사들은 1999년 이후 지금까지 국산 신약 17개를 개발했고 연평균 3.5건의 기술수출을 하고 있다.

30개 안팎의 국내 상위 제약기업들은 한 개 기업 당 평균 5개의 신약 후보물질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중에 임상시험 중인 파이프라인과 전임상시험 중인 파이프라인은 약 100건으로서 본격적인 실용화 연구가 진행 중이다.

국내 제약사들의 상황이 열악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양호한 성과라는 평가도 있다. 기본적으로 연구개발(R&D)에는 돈이 든다. 적절한 매출액과 꾸준한 수익이 있어야 연구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다.

제약업계에서는 국내 기업이 신약개발 R&D에 나설 수 있는 매출 임계점을 3000억~5000억원으로 본다. 동아제약과 녹십자 , 한미약품 등 상위 10위 정도만이 여력이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일양약품, 한올바이오파마, 동화약품 등 작은 제약회사들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국내 신약개발을 주도하면서 제약시장의 80%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주요 제약기업들은 지난 1987년 이후 매년 순이익의 70~90%, 매출액 대비 6.2~6.6%를 신약개발에 투자해 오고 있다.

제약산업, 신약개발로 한국의 '화이자' 꿈키운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투자 비율은 표면적으로는 다국적 제약사들보다 현저히 낮은 것으로 보이지만 수익의 70%가량을 투자함으로써 국내 기업의 실질적인 이윤 대비 연구개발투자는 다국적 제약사들보다 높게 나타났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상무는 "2000년대 들어 제네릭만 가지고는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할 수 없다는 인식 하에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신약에 투자를 집중하는 기업이 생기기 시작했다"며 "국내 제약기업들이 신약개발에 결코 소홀한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다만 일부 국산신약은 상업적인 부분에서는 성과가 미미하다. 하지만 후보 물질 도출, 물질 탐색, 임상 등 수 많은 단계를 거치게 되면서 얻은 노하우는 앞으로 신약개발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여 상무는 "국내의 제한된 신약개발 자원을 가지고 선진국 신약개발 역사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25년 동안 적잖은 신약개발 기술을 축적했다"며 "이 기술이 글로벌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다행히 정부는 제약기업 중 '옥석(玉石)'을 가려 글로벌제약 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차곡차곡 R&D 역량을 끌어 올려온 제약사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정부의 지원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제약사의 신약개발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제약사 한 관계자는 "이익의 대부분을 실패 위험이 큰 R&D에 투자해온 제약사들에 대한 적절한 지원이 이뤄진다면 한국판 '화이자'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소한 몇몇 국내 제약사는 화이자로 성장할 씨앗을 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이 씨앗이 잘 성장해 신약이라는 열매를 맺기까지 정부와 제약사가 협력하는 숙제가 남았다. 정부의 지원 의지가 제약업계의 노력과 시너지를 이룬다면 글로벌 신약이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도 신약강국의 기회는 있다.

[국내 주요 혁신형 제약기업의 연구개발투자 현황]
↑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연구개발통계 조사자료↑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연구개발통계 조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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