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스]아직도 감세인가?

머니투데이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상무 2011.08.30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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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테스]아직도 감세인가?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1920년대 말 대공황도 그중 하나다. 대공황은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에게는 참으로 답답한 사건이었다. 고전학파는 '세이의 법칙'대로 공급만 있으면 수요는 자동으로 창출된다고 보고 있었다. 산업혁명 이후 대공황까지 세계경제는 항상 공급이 부족한 상태여서 물건을 만들어내기만 하면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공황이 발생하면서 갑자기 수요가 없어진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기존 이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경제현상 앞에서 고전학파는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유효수요라는 새로운 개념을 들고 혜성처럼 세계경제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사람이 케인스다. 케인스는 대공황의 원인을 수요의 급격한 감소와 경제 전반에 팽배한 공급능력 과잉의 문제로 봤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정책목표를 유효수요 창출에 두고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케인스의 주장을 고스란히 담은 것이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이다.



1980년대는 세계경제의 새로운 시험대였다. 1970년대 2차에 걸친 오일쇼크를 극복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국제유가 급등이라고 하는 공급부문의 경제 충격에 대해 케인스이론은 답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케인스이론은 공급능력은 충분한데 유효수요가 부족한 경우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러나 유효수요를 창출하더라도 원가 상승이라는 문제로 공급능력이 훼손된 기업들의 공급이 원활할 수가 없었다.

이때 미국 레이건 대통령은 레이거노믹스라는 새로운 경제정책을 선보인다. 기업들에 대해 정부가 세금을 낮춰주거나 투자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법으로 훼손된 공급능력을 복원하는 것이 레이거노믹스의 핵심이다. 이른바 '공급주의 경제학'으로 고전학파의 공급능력 확충이라는 개념을 물려받은 신자유주의의 한 갈래다. 레이건 대통령의 실험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아직도 재론의 여지가 많다. 하지만 어찌되었거나 미국경제는 몇 번의 작은 경기침체를 제외하고 1983년부터 최근까지 장기 호황을 지속했다.



이제 세계경제는 서브프라임 위기라는 새로운 형태의 위기를 맞이했다. 서브프라임 위기는 부동산 버블 붕괴로 인해 가계부문이 부실화되면서 발생한 것이다. 부동산 버블로 형성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경제의 공급능력은 나날이 확대되어 왔는데, 가계가 망가지면서 수요가 대폭 축소되다보니 공급과잉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무덤으로 들어갔던 케인스가 다시 일어나서 걸어나오는 상황이 되었다. 바야흐로 세계경제는 공급주의 경제학에서 케인스경제학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케인스의 방식대로 과잉공급능력은 다소간 구조조정을 해주고, 가계부문의 유효수요를 창출해줘야만 문제가 해결된다. 다만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정책 한 가지로만 대응을 하기에는 사태가 다소 꼬였다. 각국 정부의 재정이 부실화되어 재정지출을 맘대로 늘릴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건전재정을 유지하면서 재정지출을 늘려야 하는 것이 정책당국자들에게 주어진 명제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방법은 고소득층에게 세금을 더 거둬서 저소득층의 유효수요를 창출해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도 공급주의 경제학으로 풀어낼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수출시장에서는 더블딥이 확실시되고 있다. 가계부문도 고물가와 내수경기 침체로 그 어느 때보다 수요여력이 취약해져 있다. 공급과잉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정책보다 공급능력을 확충하는 감세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그러지 않아도 OECD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소비세를 한번 더 인상하면 서민들과 중산층의 수요여력은 급속히 약화된다. 지금 필요한 경제정책과 정반대 방향이다.


훼손된 성장잠재력을 되살려내야 하는 과제도 있다는 점에 100% 동의한다. 하지만 지금은 위기상황이다. 가뜩이나 중산층이 붕괴되어 내수기반이 취약해지고 있다. 간접세보다 직접세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순리다. 최소한 위기를 넘어설 때까지는 공급주의 경제학을 보류해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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