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혁신방안, 증권업계 냉소

머니투데이 엄성원 기자 2011.08.29 13:53
글자크기

국민연금 혁신방안, 기대보다 실망..평가결과 공개, 시장왜곡 소지 있어

국민연금이 29일 기금운용 혁신방안을 마련한 데 대해 금융투자업계의 반응은 냉담하다.

부작용만을 걱정한 채 시장 현실은 무시한 임시 처방을 내렸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부정행위가 드러난 직원의 퇴직 후 업계 취업을 제한하고 거래사에 무조건적인 불이익을 부여하는 등 스스로를 '슈퍼 갑'으로 생각하는 국민연금의 마음가짐은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 많다.

복지부는 내년 1월부터 국민연금 기금운용과 관련된 거래증권사, 위탁운용사의 세부평가항목, 선정기준 및 평가배점 등을 모두 투명하게 공개키로 했다. 탈락 기관에 대해서는 탈락사유 및 향후 개선필요 사항에 대한 정보도 제공할 계획이다.



또 비리의 여지가 있는 정성평가의 비중을 대폭 축소하는 한편 선정과정에서 공단의 입김이 최대한 배제되도록 외부전문가 과반수 이상으로 구성되는 선정위원회를 신설할 방침이다.

아울러 부정행위에 연루된 증권사나 직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대폭 강화할 계획이다. 국민연금에 로비를 한 증권사는 한 번만 적발돼도 곧바로 최소 6개월 이상(최대 5년) 거래를 제한하고 국민연금 재직 중 금품수수, 향응 등 부정행위를 저지른 직원은 사실상 금융시장에서 퇴출된다.



◇ 증권사, "부작용만 걱정..서비스 질 평가는?"

증권업계는 일단 이번 혁신방안이 기금운용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란 덴 대부분 동의했다.

A증권사 관계자는 "구체적인 평가기준이 공개되면 (거래사) 선정 과정과 관련한 잡음이 이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시험 기준을 알려주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간 선정 기준과 선정 과정에 대한 비공개 원칙이 스스로 오해의 소지를 만들어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국민연금이 혁신방안에 업계 상황이 제대로 반영됐는지에 대해선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B증권사 법인 영업 담당자는 정성평가가 대폭 축소된 데 대해 "질적인 부분을 다 계량화할 순 없다"며 "부작용만을 걱정해 정량평가에 지나치게 치중하다보면 결국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큰 손' 국민연금의 거래 증권사로 선정되면 해당 증권사들은 상당한 수수료 수입을 보장받게 된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을 잡기 위해 증권사들은 리서치 등 별도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일반적이다. 국민연금 역시 이를 통해 일정 수준의 혜택을 보고 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C증권사 법인 영업 책임자는 "거래 증권사 선정에서 정성평가가 대폭 축소될 경우, 정량평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수수료 경쟁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면서 "계량화하기 힘든 서비스의 질에 대한 평가도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 운용사 "시험성적 공개, 시장 왜곡 소지 있어"

D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국내 주식시장의 최대 큰 손인 국민연금이 평가점수를 공개할 경우, 여타 기관의 운용사 선정에 유무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평가 결과 공개가) 또 다른 시장 왜곡의 소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 최대 큰 손인 국민연금의 평가 점수가 우정사업본부나 사학연금 등 다른 연기금의 운용사 선정 과정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D본부장은 "국민연금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을 경우, 선정 기준이 다른 여타 연기금의 위탁사 선정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 것"이라며 "일단 (국민연금이) 불합격 판정을 내린 곳을 (다른 연기금이) 위탁사로 선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재정과 관계자는 이와 관련, "업계가 일부 오해하는 측면이 있다"며 "탈락 운용사의 평가 결과는 요청이 있을 때에만 개별적으로 통보할 방침"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국민연금이 부정행위가 적발된 직원의 향후 민간업계 취업까지 제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었다.

E증권사 법인마케팅 담당자는 "비리 사실이 드러난 직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지만 퇴직 후 민간업계 취업까지 막는 것은 월권행위가 될 수 있다"며 "업계보다 훨씬 낮은 연봉에도 불구, 사명감으로 일하는 직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E 담당자는 특히 "자의적으로 민간업계 취업을 제한한다, 안 한다 말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시장 위에 군림하는 '슈퍼 갑'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복지부는 국민연금 재직 중 고의로 기금 손실을 초래하거나 금품수수·향응·공금횡령 등 부정행위로 정직 이상 중징계를 받은 직원을 채용한 금융기관에 대해 최장 5년간 거래를 제한할 방침이다. 이 경우, 부정행위자들의 재취업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