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뛰는 전셋값, 얼마나 올랐기에…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2011.08.2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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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미친 전셋값/중개업자도 혀 내두르는 ‘이상 폭등’

"집 주인이 2억원을 올려달라는 말에 저도 놀랐습니다."

8월 중순 개포동 우성3차 184㎡(56평형)의 전세계약을 마쳤다는 한 중개업소 대표는 기자에게 ‘전셋값 폭등이 상상 이상’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2년 전 5억원에 자신이 직접 전세계약을 중개했다는 이 관계자는 9월 재계약을 앞두고 집주인이 7억원으로 올려받겠다고 해 극구 만류했다고 했다.

그는 세입자 사정이나 주변 시세를 제시하며 겨우 설득해 6억5000만원에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전셋값 폭등을 새삼 실감했다.



최근 강남 아파트 전세 재계약 시 ‘1억은 기본’이라는 말이 나돈다. 불과 2개월 전만 하더라도 분위기는 지금과 달랐다. 오름세가 지속되기는 했지만 증가폭은 감내할 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7월6일 재건축을 추진 중인 청실아파트의 이주공고가 나면서 강남 전셋값은 요동을 쳤다. 다음날에는 대치동 우성2차도 같은 절차를 밟았다. 모두 1800가구가 11월 전까지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 수요가 몰리면서 자연적으로 전셋값도 급등했다. 올 여름 불어닥친 전셋값 폭등의 진원지였다.





실제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143㎡(43평형)가 2년 전에 비해 2억4000만원 올랐고 대치동 은마아파트 113㎡(34평형)가 2억원가량 오른 것으로 파악됐다.<표 참조>

◆강남발 전세 폭탄, 현상유지도 힘들다


강남 발 전세가격 상승이 무섭기만 하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번지가 지난해 12월부터 8개월간 서울 아파트 전세가 변동액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매달 233만7500원 꼴로 올랐다. 이는 통계청이 올해 1분기 도시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흑자액인 90만8406원보다 2.6배 높은 금액이다.

특히 강남구의 전세가 상승액은 소득에서 가계지출을 뺀 흑자액보다 5배나 높았다. 월평균 소득액인 438만7262원보다 21만8978원 높은 금액이다. 즉 평균소득을 버는 도시근로자가 가계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으더라도 강남 아파트의 전셋값 상승액을 충당할 수 없다는 의미다.

부담은 고스란히 대출로 이어졌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무주택자의 전세자금보증액은 5조원을 육박한다. 전세자금 보증은 집 없는 서민들이 별도의 담보나 연대보증 없이 은행에서 손쉽게 전세 자금(월세보증금 포함)을 빌릴 수 있도록 신용보증을 해 주는 제도로 올해 집행된 금액만 4조9710억9300만원이다. 지난해에 비해 1조8780억5600만원이 늘어난 금액이다.

전세자금보증을 이용한 가구도 급증했다. 7월까지 이용가구수는 16만7445건으로 지난해보다 4만2624건이 늘어났다.

때문에 1억원이 있어도 강남에서 33㎡짜리 전셋집 구하기조차 쉽지 않다는 말까지 들린다. 부동산1번지의 조사에 따르면 강남구 아파트 10채 중 7채가 3.3㎡당 1000만원을 넘어섰다. 서울시 전체를 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2009년 1월 서울시에서 3.3㎡당 1000만원을 넘는 아파트는 3만2107가구였지만 올 7월 17만9458가구로 크게 늘었다. 3.2%에 불과했던 비중도 15.4%까지 급증했다.



◆중개업소 매물 없다

그렇다고 강남에 전세매물이 많은 것도 아니다. 도곡동에 위치한 월가의부동산 박명숙 대표는 "3000가구가 넘는 타워팰리스에서도 소형 면적만 몇 개의 매물이 있을 뿐 대림 아크로빌 등 2000여가구의 주변 전세매물은 겨우 1건이 전부"라며 전세 품귀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중개업소에서 부동산 시세를 모른다는 말도 나온다. 박 대표는 "물건을 받아놓고 세입자와 가격 조율을 하는 며칠 사이 집주인이 가격을 올리는 일도 부지기수"라며 "전세를 구하려는 고객에게 가격을 이야기하기조차 무서울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널뛰는 전셋값에 신혼부부는 강남 중개업소에서 종적을 감췄다. 중개업소에 따르면 강남 토박이면서 부모의 도움을 빌어 이곳에 신혼주택을 마련하려던 신혼부부들조차도 엄두를 내지 못할 지경이라는 것. 그렇다고 고향과도 같은 강남을 떠날 수 없어 강남 주변을 기웃거리게 된다는 설명이다. 강남 태생의 신혼부부들이 대안으로 삼는 곳은 사당이나 옥수, 서초 주변 등지의 노후된 아파트다.

대안으로 저층 재건축단지를 찾는 수요도 많아졌다. 개포동 태양공인 정지심 대표는 "올 들어 유독 개포주공 1~4단지를 찾는 신혼부부의 전세수요가 늘었는데 아무래도 전셋값이 높지 않고 오름폭도 크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과거 개포주공은 저층 단지가 많고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어 신혼부부에게 인기가 없는 지역이었다.

반면 입주2년차 단지나 신규수요가 있는 곳은 그나마 상황이 조금 낫다. 가격이야 수천만원에서 1억원 넘게 뛰는 곳도 있지만 비교적 전세매물이 보이는 곳이다. 반포동 백마공인 양봉규 대표는 "래미안이나 힐스테이트 등 브랜드 값어치가 뛰어난 곳에 입주물량이 쏟아지면서 전세가격의 변동이 주춤한 상태"라면서 "85㎡(26평형) 기준 5억5000만~6억원, 112㎡(34평형) 기준 7억5000만~8억원에 시세가 형성돼 있고 거래도 간혹 있는 편"이라고 전했다.

◆하반기 오름세 지속될 듯

문제는 하반기다. 가뜩이나 올라있는 전셋값에 상승여력이 남아있어서다. 여전히 재건축 이주 수요가 남아 있는데다 하반기 입주물량도 크게 줄어들어 세입자들의 전셋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부동산 가격 하락 위험과 유럽발 금융위기로 인해 주택매수심리가 얼어붙어 전세를 구하려는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당장 9월부터가 걱정이다. 입주할 새 집이 예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부동산 정보업체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임대를 포함한 9월 아파트 공급건수는 1만626가구로 지난해 동기(2만4924가구)의 42.6% 수준이다. 특히 서울은 397가구가 공급돼 전년(2754가구) 대비 14.4%에 불과하다. 가을 전세시장의 전망을 어둡게 했다.

전세물이 주로 나오는 입주 2년차 아파트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올 하반기 전국에서 입주 2년이 되는 아파트는 16만1386가구로 지난 해 대비 13%인 2만5099가구가 줄어든다. 하반기 서울에서는 1만4959가구가 입주 2년을 맞는다. 전년도 3만9500가구에 비해 2만4571가구, 62%가 줄어든 물량이다. 가을 전세시장의 전망이 어두운 이유다.

부동산 전문가들도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전세가격 상승을 막을 카드가 사실상 없다는 것이 이유다.

박원갑 부동산1번지 부사장은 하반기 전세가격 전망을 묻는 질문에 "파동까지는 아니더라도 당분간 시끄럽지 않겠냐"면서 "수급문제로 인해 전셋값은 지속적으로 오를 것이다. 단기간에 회복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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