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본드, 독일 빼고 만들어라-FT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2011.08.1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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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시장 규모가 중요하다

16일 프랑스-독일 정상회의에서 유로본드 도입이 무산됐으나 유로본드를 만드는 데 최대 걸림돌인 독일을 제외한 남은 국가들끼리라도 유로본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7일자에서 주장했다.

미국과 일본 국채 시장이 보여주듯 시장의 규모가 중요하므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도 통합된 대규모 국채 시장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미국 국채 금리는 연방 정부 부채 상한을 두고 벌인 논쟁과 국가 신용등급 강등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고, 전 세계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장 많은 공공 부채를 진 일본의 국채 금리는 세계 최저 수준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국채 시장의 규모 자체가 투자자들의 선택에 있어 변수가 된다는 점이다 .

따라서 미국·일본과 경쟁할 수 있는 규모의 채권 시장을 만들 경우 금리에서 그만큼 이득을 볼 수 있다.



미국 국채 시장은 9조5000억 달러(6조6000억 유로)다. 일본은 875조엔(7조9000억유로). 양국, 특히 일본의 경우 공공부문이 의무적으로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채권이 있으나 이를 제외하더라도 거래할 수 있는 물량은 여전히 막대하다. 시장 규모가 워낙 커서 사실상 투자자들이 이 채권을 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덕분에 현재 미국, 일본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각각 2.3%, 1% 수준이다.

한편 유로존의 시장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이탈리아가 1조5000억 유로, 독일이1조4000억 유로, 프랑스가 1조3000억 유로, 영국은 9600억 파운드(1조1000억유로)다.

개별 국가 국채 시장 역시 크지만 미국이나 일본 국채에 비해서는 투자자들이 꼭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필요성이 떨어진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단일 채권시장을 만들 때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해야 한다. 또 투자자들이 한번 차환 위험을 우려하기 시작할 경우 시장 패닉에 더 취약해진다. 아일랜드와 포르투갈 채권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스페인에서 심지어 이탈리아와 프랑스까지 확산된 것만 봐도 그렇다.

이러한 패닉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재정수지 개선만이 시장을 안심시킬 수 있으나 최근 유럽 경제 둔화세에서 보듯 무조건 긴축이 능사는 아니다. 긴축으로 경기 둔화가 가속화될 경우 오히려 국가 부채 문제와 정부 재정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

그러나 채권 시장이 크다면 이러한 상황이 반대로 연출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은 단기적으로 재정 적자를 키우는 내수 부양책을 사용했고 성장을 촉진하는 데 사용했으며 이 성장률 회복이 재정 전망 개선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대안을 유로존 국가들도 이용할 수 있다. 모든 유로존 국채를 공동 채권인 유로본드로 교체할 경우 5조5000억 유로의 시장이 만들어진다. 유로존 정부들이 공동 보증한다면 이 보증 주체의 재정적자와 부채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적다. 세금을 조달할 수 있는 역량도 더 크다. 이는 유로존의 평균 국채 금리를 낮추고 채권 투매를 없앨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유로존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

공식적인 대답은 이렇다. 유로본드가 공동 보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성립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위험하다는 주장도 있다. 재정 건전성이 좋은 국가와 나쁜 국가가 같은 금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동 보증위험은 유로본드 거래량 제한이나 적절한 제도를 통해 막을 수 있다.

진짜 답은 독일이 유로본드 발행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 독일 국채보다 높은 금리를 내야하는 유로본드 도입에 독일 정치권이 찬성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답은 독일 너머에 있다고 FT는 주장한다.

독일 및 독일과 의견을 함께하는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핀란드, 슬로바키아를 제외하고 여기에 2차 구제 금융을 지원받는 그리스를 배제한다면 남은 11개 유로존 국가들만으로도 3조5000억 유로의 채권 시장을 만들 수 있다. 유로존 전체 시장과 비교해서 거시경제 수치도 약간 더 취약해질 뿐이다.

11개국이 만든 유로본드 역시 규모의 이점을 이용하는 데 충분하다. 법적인 걸림돌 역시 없다. 동참하는 국가들이 리스본 조약에 저해되지 않는 새로운 조약에 합의하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정치적인 부분이다. 유로존 중 일부 국가만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유럽연합(EU)의 에티켓에 어긋난다. 그러나 자국의 번영을 위해 주권을 통합하는 것은 EU의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11개국 유로본드가 만들어질 때 독일은 어떻게 될까? 경제적으로 독일은 자국 국채의 대체 투자 상품 격인 유로본드의 등장으로 국채 금리가 상승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도 독일 내 유권자들이 유럽의 통합을 지금보다 더 우려할 것이다. 지금은 독일 국민들이 남은 유로존 국가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고 불안해하고 있으나 독일을 제외한 유로존 국가들이 단합될 때 자국이 소외되는 상황이 더 두려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FT는 독일을 배제한 유로본드를 만들 경우 권력이 유로존의 나머지 국가들에게 가게 될 것이며, 이를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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