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에 만원짜리 강의 즐기기

머니투데이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장 2011.07.1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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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빙에세이] 동네 아저씨, 아줌마 복이 터지다

나는 요즘 아줌마 복이 터졌다. 기타와 요가를 배우고 있는데 기타반에는 아줌마가 20명, 요가반에는 50명이다. 아저씨는 나 혼자다. 나는 70명의 아줌마들에게 둘러싸인 청일점이다.

그렇게 물 좋은 학원이 어디냐고? 우리 동네 여성문화회관이다. 이름이 그래서 여자만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동네 남자도 되고 동네 직장인도 된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수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년에 두번, 4월과 8월에 인터넷으로 신청을 받는데 경쟁률이 만만치 않다. 기타반은 수강신청 개시 1분30초 만에 마감됐다. 요가반도 마감하는데 1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이 치열한 경쟁을 뚫으려고 새벽부터 일어나 컴퓨터 켜고 로그인 하고 마음 조리며 대기했었다.



◆신나는 공부, 한달에 만원

어쨌든 어렵게 관문을 넘고 보니 그곳은 아줌마 세상이다. 나는 오늘도 호흡을 가다듬고 교실 문을 연다. 그렇다면 질문 하나 더. 4달 짜리 이 강의는 한달에 얼마일까? 1만원? 2만원? 3만원? 4만원? 5만원? 벌써 여러 명에게 물어봤는데 아직까지 맞춘 사람이 없다. 답은 1만원이다. 값이 싸다고 강의가 부실한 것도 아니다. 우리 선생님은 훌륭하시다. 나로서는 아무 불만이 없다. 한 학기 등록금 500만원 시대에 강좌당 4만원 짜리도 있으니 참고하시라!



동네 도서관도 가보니 아주 좋다. 동네 아저씨가 공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책은 한번에 3권씩 빌릴 수 있다. 보름 기한인데 반납일이 임박하면 안내 문자를 보내준다. 백수가 되니 따끈한 새 책을 사는 재미를 누릴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새 책보다 그냥 지나쳐버린 묵은 책이 훨씬 더 많다. 내 책꽂이에도 제대로 읽지 않고 꽂아둔 책이 수두룩하다. 그런 책을 평생 모시고 산다. 사실 책을 사서만 보는 것은 지적인 사치이고, 서재를 꾸미는데 열중하는 것은 지적인 과시일 것이다.

어른을 위한 공부 시스템이 생각보다 잘 갖춰져 있다. 사회교육 인프라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시골에 내려가도 이랬으면 좋겠다. 문화강좌는 야간도 있고, 도서관은 주말과 휴일에 여니 직장인 역시 마음만 먹으면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회사에 다닐 때는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다. 알아도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시설들은 백수가 되고 눈에 보이는 것들이다. 수십년 세금 열심히 낸 보람을 느낀다.

나는 남들 출근할 때 자전거 타고 기타 배우러 간다. 끝나고 집에 와서 쉬다가 오후에는 요가 하러 간다. 수업이 없는 날은 자전거 타고 도서관으로 간다. 날이 더워지니 '도서관 피서'가 더욱 즐거워졌다. 공부할 맛이 난다.


◆오염된 공부는 이제 그만

공부란 것이 많이 오염됐다. 학생들은 오로지 일류 대학, 일류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한다. '공부의 신'을 섬기며 공부하는 기계가 된다. 그렇게 20여년 지겹게 공부한 다음 공부와 담쌓는다. 학교 문밖을 나오면 공부는 끝이다.

대학은 건물만 올리지 그 안에 지성을 쌓아올리지 않는다. 건물은 크고 학생은 작다. 총장님도 돈 많이 끌어오는 CEO형이 우선이다. 이런저런 사회인 전문가 과정은 대부분 장삿속이다. 학생들은 몇백만원씩 하는 수강료를 척척 내고, 또 그 이상으로 돈을 들여 교우회를 굴린다. 네트워크를 짜고 늘이고 다지는데 몰두한다. 두세달 대충 공부하고는 뻐근한 졸업여행을 얘기한다. 그것은 공부가 아니라 사교다. 직장 다니며 박사 학위 따는 분도 여럿 봤는데 거의 학위에 매달린 억지 공부다.

대학가기 위한 공부, 취직하기 위한 공부, 성공하기 위한 공부는 고단한다. 나도 이런 공부는 끝이다. 이제부터는 재미로 공부한다. 소설가 공지영 씨의 베스트셀러 덕분에 요즘 '지리산 행복학교'가 떴다. 지리산 자락에 둥지를 튼 사람들이 서로서로 자기의 재능을 나누는 학교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배우고, 자기가 잘하는 것을 가르치는 학교라면 분명 '행복학교'일 것이다. 이런 학교라면 평생 공부할 맛이 날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당신의 학생이고 당신은 나의 학생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학생이며 선생이다.

공부는 나를 진실로 보기 위한 것이다. 인생을 누리기 위한 것이다. 세상을 넓게 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공부하지 않았다. 올바르게 공부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는 공부 타령이다. 빗나간 공부를 대물림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마음에도 없는 억지 공부를 시키는 것은 어른들의 폭력이다. 나부터 행복하게 공부해야 아이들도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강에 다리 하나를 덜 놓고 좀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보다 깊은 무지의 심연 위에 놓을 다리를 하나라도 더 건설하자." 기차가 막 달리던 시절인 19세기 중반 데이비드 소로의 말이다. 21세기에 다시 곱씹어 봐도 시차가 없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공부도 무지의 심연 위에 다리를 놓는 공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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