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시청공무원, 칠순에 억대연봉 스타강사된 비결

머니투데이 진달래 기자 2011.07.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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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10년 늘어난 중년, New Old]<4> 이보규 동서울대 교양학과 외래교수

이보규씨에게 은퇴자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혹시 '기고(GiGo)'와 '뛰고(DiDo)'의 차이를 아세요? '쓰레기 같은 생각만 하면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게 되고(Garbage in Garbage out)', '다이아몬드 같은 생각을 하면 다이아몬드 같은 삶을 살게 된다(Diamond in, Diamond out)'는 얘기입니다. 은퇴한 그때부터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공부하느냐에 따라 남은 행복의 수준도 결정되는 법이죠."사진은 이씨가 지난달 30일 분당 새마을연수원에서 제천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강연하는 모습.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이보규씨에게 은퇴자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혹시 '기고(GiGo)'와 '뛰고(DiDo)'의 차이를 아세요? '쓰레기 같은 생각만 하면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게 되고(Garbage in Garbage out)', '다이아몬드 같은 생각을 하면 다이아몬드 같은 삶을 살게 된다(Diamond in, Diamond out)'는 얘기입니다. 은퇴한 그때부터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공부하느냐에 따라 남은 행복의 수준도 결정되는 법이죠."사진은 이씨가 지난달 30일 분당 새마을연수원에서 제천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강연하는 모습.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올해 칠순인 이보규씨는 자기계발과 창업 분야에서 스타강사다. 강연으로 버는 수입만 연 1억원이 넘는다. 그렇다고 이씨에게 엄청난 커리어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동사무소 9급직에서 시작해 36년간 서울시 공무원을 하다 2002년 한강사업본부장으로 은퇴했다.

시청 공무원과 스타강사, 어울리지 않은 조합 같지만 은퇴 후 이씨는 엄청나게 공부하고 연구했다. 은퇴하고 읽은 책만 500여권이다. 메모하고 노트정리하고 고시생처럼 공부했다.



그래서 지금은 대학생들도 가르치고, 공무원들도 가르치고, CEO들도 가르친다. 동서울대 교양학과 외래교수, 호서대 창업대학원 초빙교수 등 교수 타이틀만 2개이다. 지자체와 대학, 기업, 단체 등 한달 평균 강연이 30회가 넘는다. 하루 2~3건씩 뛰는 것도 예사다. 은퇴하고 나서 10여년을 어떻게 살았는지 그림이 그려졌다.

"열번 설명하는 것보다 제 강의를 한번 들어보시는 게 낫지 않겠어요? 두 시간 후에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에서 강의가 있으니깐 그리로 오세요." 마침 이씨에게 전화를 건 지난달 14일에는 종로상공회의소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 예정돼 있었다. 종로구에서 꽤나 큰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 30여명이 대상이었다.



이날 강연 주제는 '행복 디자인과 삶의 지혜'. 고난도 유머와 몸 개그까지 섞어가며 처음부터 좌중을 휘어잡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원래 자기가 잘 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혼자 앞 자리에 앉는데, 오늘은 예외네요." "'신이 화가 났다'를 세 글자로 줄이면 뭘까요? 정답은 바닥에 있습니다. 바로 신발끈이죠." 이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 성대모사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시도 읊었다.

근엄한 표정의 40, 50대 남성들이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웃다가, 이씨가 자기 어머니 얘기를 하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누구나 고통이 있습니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역설적으로 고통은 쉽게 극복됩니다. 멀리 보고 긍정적 마음을 갖는 것, 그게 바로 삶의 지혜이죠." 청중들을 들었다가 놓았다가 강연에 푹 빠져들게 하는 기술이 탁월했다. 기자도 푹 빠졌다.

원래 이씨는 은퇴하고 고향인 충북 괴산에 내려가 연금이나 받으며 살려고 했다. 그런데 은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용인대에서 초빙교수 자격으로 강의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서울시 인재개발원에서 예산과 회계를 강의해본 적이 있던 터라 망설임 없이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씨가 맡은 과목은 '기업창업론'. 1980년대 송파구청에서 창업지원 업무를 했던 게 도움이 됐다. 당시 이씨가 창업을 도와줬던 로만손같은 회사는 지금 세계적인 시계제조업체로 성장했다. 이씨는 이런 사례들을 실감나게 설명했고, 정영원 정주시멘트 회장 등 당시 인연을 맺었던 기업가들도 초청했다. "큰 욕심 없이 시작했는데 요즘말로 하면 대박을 쳤죠. 학생들로부터 주례요청도 들어왔고, 입소문이 나면서 다른 대학들의 외래교수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강연에 관한한 자신감이 생긴 이씨는 이후 강연 주제를 자기계발과 리더십, 인간관계, 갈등관리, 커뮤니케이션 등으로 넓히기 시작했다. 분야가 넓어진 만큼 공부도 더 악착같이 했다. "강의를 잘하려면 모르는 걸 아는 척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확신이 없는데 청중들을 설득할 수는 없죠. 청중들도 강사가 알고 하는 얘긴지, 모르고 하는 얘긴지 다 압니다."

그래서 이씨는 강의 요청이 들어오면 며칠을 파고 들었다. 카네기와 피터 드러커, 이어령씨 등 국내외 석학들의 책은 모두 독파했다. 10여년 강사경력이면 왠만한 강의는 다 매뉴얼화돼 있을 테지만, 이씨는 지금도 3시간짜리 강연을 위해 6시간을 투자한다. 강연 제목이 같아도 청중들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끊임없이 트렌드 변화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씨의 강연을 듣고 있으면 남녀노소 불구하고 시간가는 줄 모른다. "강연은 음식처럼 맛과 영양이 모두 중요합니다. 유익하기만 해선 안됩니다. 재미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씨는 유행하는 유머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600개 정도 올려놓고 외우고 또 외운다. 자신이 겪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들었던 에피소드들은 항상 메모하고 정리해 강의에 맞게 다시 가공해 써먹는다. 그는 "내 강의를 들으면서 잠을 잔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까지 자신만만했다.

청중 연령대에 따른 차별화전략도 확실하다. 이씨는 40, 50대 청중들에게는 행복과 인생에 대한 강의를 많이 한다. 아무래도 그런 얘기에 감동 받을 나이이기 때문이다. 유명 인사들의 성대모사를 통해 분위기를 띄우기도 한다.

그렇다면 칠순인 이씨의 감각이 20대 대학생들에게도 통할까? 이씨는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들어보였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를 활용합니다. 그러다 보면 젊은 친구들 사이 유행어와 유머도 알게 되죠. 70대니깐 소셜미디어 다루는 법을 몰라도 괜찮다고 넘겨버리는 순간, 강사 수명은 끝인 거죠."

이씨에게 6월 스케줄표를 한번 보자고 했다. 아주대 경영대학원 주최 중소기업 CEO 대상 '행복 디자인과 삶의 지혜' 강의, 호서대 글로벌창업대학원의 '창업과 기업가 전략;' 태백시청 공무원 대상 '사회변화와 공직자의 대응전략', 서울중구의회 의원 세미나 '정례회의 대비 예산안 심의기법', 양평군 농촌지도자연합회 대상 '행복 디자인과 삶의 지혜' 등 30개가 넘는 일정이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있었다.

좀 여유를 즐기며 쉬고 싶은 생각은 없을까? "돈을 벌 수 있는데 왜 쉽니까?" 한마디 농을 건넨 이씨는 이내 진지한 얼굴로 "강의를 하고 있으면 내가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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