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브랜드 가격 못내리는 진짜 속사정은

머니투데이 이명진 기자 2011.07.1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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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 이후 주주에게 시달리면서 품질보다 매출증대에 신경…제3국 생산도 급증

- 한·EU FTA로 관세 없어지는 데도 명품 가격인상 러시
- 제3국 대량생산으로 품질 예전만 못하다 지적도 만만치 않아
- 무조건 브랜드 추구 지양…품질 디자인 비교해 따지는 소비해야

↑(사진=루이비통, 셀린느, 디올, 끌로에, 구찌, 알렉산더 맥퀸, 프라다, 페라가모 2011 S/S 컬렉션)↑(사진=루이비통, 셀린느, 디올, 끌로에, 구찌, 알렉산더 맥퀸, 프라다, 페라가모 2011 S/S 컬렉션)


한·EU 자유무역협정(FTA)발효에 따라 자동차나 와인 등 유럽산 상품 가격이 인하되고 있는 가운데, 유독 유럽 패션명품 브랜드의 제품 가격만 거꾸로 오르고 있다. 가죽가방 8%, 의류 13%, 구두 13% 등 기존에 품목별로 붙던 관세가 없어지는 데도, 주요 브랜드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잇달아 값을 올리는 모습이다.

루이비통은 지난 2월에 이어 지난달 24일 제품가격을 4~5%가량 인상했다. 반년도 안 돼 2차례나 가격을 올렸다. 샤넬은 지난 5월 평균 25% 가격을 올려, 최근 2년 반 동안 4번이나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프라다도 최근 제품 가격을 3~12% 기습 인상했다.



업계에선 이 같은 가격 인상의 배경으로 유럽 명품 브랜드들이 인기가 높은 한국 시장에서 FTA 발효 이후에도 고급화 전략을 더욱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영 효율을 이유로 유럽이 아닌 제3국 생산이 늘면서, 명품 브랜드 제품의 품질이 이전만 못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런 비난 속에서도 유럽 명품 브랜드들이 해마다 지속적으로 가격을 올리는 진짜 속사정이 뭔지 들여다봤다.



◇명품 브랜드도 '장인정신·전통' 대신 '경영실적' 최우선

현재 전 세계 명품시장은 4대 명품 그룹인 프랑스의 LMVH그룹과 PPR그룹, 스위스의 리치몬드 그룹, 이탈리아의 프라다 그룹 등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LMVH그룹은 글로벌 명품브랜드의 절반 정도를 소유하고 있는 명실상부 세계 1위 명품 기업이다. 루이비통, 셀린느, 디올, 지방시, 겐조, 루이비통, 헤네시, 태크호이어, 쇼메, 등을 소유하고 있으며 지난 3월에는 이탈리아 최대 보석브랜드 불라기를 인수했다. 에르메스의 인수도 추진 중이다.


리치몬드그룹은는 몽블랑, 까르티에, 피아제, 알프레드 던힐, 끌로에, 반클리프 앤 아펠 등 브랜드를 갖고 있다. PPR그룹은 이브생로랑, 보테가 베네타, 구찌, 발렌시아가, 알렉산더 맥퀸 등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규모가 제일 작은 프라다그룹은 미우미우, 프라다 등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들은 이들 4개 그룹 소유다.

개별 명품 브랜드 대부분은 예전의 장인정신과 전통에 입각한 가족경영에서 기업경영으로 바뀐 지 오래다. '패션 1세대'인 19세기에는 개인공방을 중심으로 가족들이 경영을 맡았다. 이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총괄하던 20세기 '패션 2세대'를 지나 현재는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맡는 '패션 3세대'로 진입한 상황이다.

특히 주요 명품패션 그룹들은 대부분 상장기업이 됐다. 이에 따라 수익 증대를 요구하는 주주들에게 분기별 매출을 보고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이들은 '장인정신과 전통' 대신에 '원가절감과 가격인상' 카드를 꺼내 들었다.

명품업계 전문가들은 "명품브랜드들이 기업공개(IPO) 이후 주주에게 시달리면서 품질보다는 매출 증대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며 "원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제3국 제작을 늘리면서 동시에 가격은 올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유럽 아닌 제3국 생산 대부분… 품질 저하 지적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명품 브랜드들의 공장이전은 2000년 후반 들어 심화됐고 현재는 70~80%의 명품브랜드들이 자국 대신 제3국가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대중적인 저가 제품군은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터키, 모로코, 중국, 멕시코, 마다가스카르, 모리셔스 등서 생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명품업계 한 전문가는 "구찌 기성복라인은 동구권에서, 일부 운동화는 세르비아에서 생산된다"며 "프라다의 구두는 슬로바키아에서, 발렌티노 남성 정장은 이집트 카이로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극단적인 경우엔 프라다, 구찌. 페라가모 브랜드가 한 공장에서 생산돼 나올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명품업체 다른 전문가는 "영국브랜드 버버리의 경우 대부분 제품을 중국에서 제작하고 있으며 고가라인인 버버리프로섬만 영국에서 디자인과 제작 등을 진행하고 있다"며 "버버리가 웨일즈에서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려 할 때 영국 국민들 뿐 아니라 영국 왕실까지 나서서 반대해 이를 무마하기 위해 버버리프로섬 라인을 보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버버리는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제조비용을 50%나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명품 브랜드 제품이 제3국에서 생산됐다 해도 소비자가 원산지를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다른 명품업계 전문가는 "유럽의 경우 제품 생산지를 명시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며 "라벨링에 관한 법이 불투명해 국내 수입될 때 생산지 태그가 빠져 있는 경우가 잦다"라고 말했다.

◇브랜드만 보고 명품 사는 시대 지났다

전문가들은 "명품 브랜드들이 전통의 수작업에서 조립공정 생산방식으로 전환하고 기계식 대량생산을 늘리면서 일부 브랜드들은 품질이 낮은 소재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귀뜸했다. 이렇다 보니 패션·유통업계에서는 "명품 브랜드들이 가격만 올릴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브랜드 관리'가 필요하다"며 "이와 함께 품질이 예전만 못해도 명품소비를 늘리는 소비자의 행태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명품은 단순히 가격만 비싸서 명품이 된 것이 아니다. 세월에 의해 형성된 장인 정신, 희소성의 가치로 인정받는 것"이라며 "중국 등 제3국에서 생산되고 원가절감을 위해 품질이 낮은 소재를 사용한다면 명품 브랜드 고유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명품도 브랜드만 보고 무작정 고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일반 제품을 고르듯 꼼꼼하게 품질과 디자인 등을 살피고 비교해 구매하는 현명한 소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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