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 위에 내려앉은 왕가의 정원 속으로~"

머니투데이 연천(경기)=이용빈 기자 2011.06.1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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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낭만·여유…황실 고택에서의 특별한 하룻밤

편집자주 과하게 꾸미지도, 과하게 방치하지도 않은 고택의 자연스러움이 연륜 있는 아낙의 품처럼 푸근하면서도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새색시처럼 단아하게 대비된다. 수령 10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고목들과 세월의 흔적을 베어 문 고색창연한 건축물은 눈길 주는 곳마다 그림이다. 꽃 한 송이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어느 것 하나 정성어린 손길이 안 미친 곳이 없다. 경기도 연천에 있는 전통 한옥호텔 '조선왕가'. 고운 자태와 유연한 옛 선을 한껏 뽐내고 있는 이곳 왕가의 정원은 전통과 낭만, 여유를 머금고 있다. 새소리, 바람소리를 벗 삼아 자연과 호흡하면서 오감을 만끽했던 황실 고택에서의 특별한 하룻밤.

경기도 연천에 위치한 전통 한옥호텔 조선왕가 염근당. 수령 10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고목들과 세월의 흔적을 베어 문 고색창연한 건축물은 눈길 주는 곳마다 그림이다.<br>
경기도 연천에 위치한 전통 한옥호텔 조선왕가 염근당. 수령 10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고목들과 세월의 흔적을 베어 문 고색창연한 건축물은 눈길 주는 곳마다 그림이다.


◇조선 황족 '이근'의 고택, 전통호텔로 새 단장

조선왕가 '염근당'은 고종황제의 아들인 의친왕의 장남 '이 근'(李芹)의 고택을 서울 명륜동에서 옮겨와 복원하면서 태어난 전통 한옥호텔이다. 1800년대에 지어 1935년에 99칸으로 중수된 황실가의 전통한옥은 이제 누구나 머물 수 있는 휴식처로 거듭났다.

"신록 위에 내려앉은 왕가의 정원 속으로~"
이 뜻 깊은 한옥을 이전 복원하는 데는 무형문화재인 도편수 최명렬 선생과 무형문화재 와공(瓦工) 이도경 선생이 참여했다. 대들보와 서까래 기둥·주춧돌·기단석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번호를 기록하며 원형의 모습에 어긋남이 없도록 지어냈다.



조선왕가 염근당 숙박동과 대청마루. 조선왕가 염근당 숙박동과 대청마루.
'추운 겨울을 이겨내며 자라는 미나리의 기상을 생각하는 집'이라는 뜻을 품은 염근당은 조선왕가의 백미다. 한옥 정취는 그대로 간직하면서 현대적인 호텔 서비스를 접목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각 숙박동은 마사토가 깔린 마당을 가로질러 시원하게 'ㄷ' 형태로 열려 지어져 있다.

염근당에서 바라본 자은정.염근당에서 바라본 자은정.
후원에는 명륜동에 있을 당시 고 박정희 전 대통력이 자주 찾았던 곳으로 유명한 '자은정'(紫恩亭)이 제 모습 그대로 옮겨졌다. '황제의 은혜로 지은 집'이란 뜻의 자은정은 유려한 풍채만큼이나 범상치 않은 기운을 발산한다.



주변을 구경하다보면 곳곳에 식재된 소나무와 뒤편 자은산의 초록이 쉴 새 없이 내뿜는 피톤치드 덕분에 몸이 한결 가뿐해진다.

'이 근'은 조선조 역대왕의 종묘제례를 관장했던 황족. 그가 생전 살았던 염근당은 이건(移建)을 위한 해체과정에서 붉은 비단에 싸여진 상량문이 발견됐다. 붉은 비단은 왕실의 상징. 홍문관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무정(茂亭) 정만조(鄭萬調) 선생이 지은 이 상량문에는 염근당의 자연친화 정신이 잘 함축돼 있다.

'一華石必使愼守芬擇永存'. '꽃 한 송이 돌 하나라도 반드시 신중히 지키시어 아름답고 향기로운 은택이 영원히 보존되게 해 주소서'라는 마지막 문장에서 잘 드러난다.


"신록 위에 내려앉은 왕가의 정원 속으로~"
염근당 이건(移建) 당시 발견된 붉은 비단 상량문(위). 남권희 이사장이 왕가의 증표인 상량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아래)<br>
염근당 이건(移建) 당시 발견된 붉은 비단 상량문(위). 남권희 이사장이 왕가의 증표인 상량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아래)
◇200년 전통, 왕실의 증표에서는 역사의 향기가

붉은 비단 상량문은 이곳이 왕손의 집이라는 증표를 보여주지만 염근당의 진짜 매력은 다른데 있다. 200년 전통이 스며있는 고택의 대들보와 서까래에서는 선조의 향기가 묻어나고 기와지붕에 내려앉은 이끼와 잡초는 역사의 점철을 보여준다. 200년 전 조선 사람들이 경외심으로 드나들던 그때도 이 황택의 정취가 그랬을까.

조선왕가 이건 당시의 모습. 조선왕가 이건 당시의 모습.
무려 5개월간의 해체작업을 거쳐 트럭 300대를 동원해 3년 가까이 진행한 복원공사는 조선왕가의 전통 건축양식을 그대로 따랐다. 자재 하나하나를 본래의 모습 그대로 재현했고 벽체와 바닥은 황토를 썼다.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기가 충만할 것 같다. 방안은 전통한지 장판과 닥나무 창호지를 사용해 옛 방식 그대로 살렸다.

"신록 위에 내려앉은 왕가의 정원 속으로~"
왕가의 적통을 상징하듯 거대한 춘향 목(木) 대들보가 가로 지르는 대청마루도 꽤 인상적이다.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사랑채, 누마루로 통하는 문을 모두 열어 놓으면 집안은 하나의 기다란 응접실이 된다.

삐걱대는 나무 대문소리. 드넓은 연천평야에서 귓전을 간질이는 개구리소리. 잔잔하게 흐르는 새소리와 전통 음악. 눈보다 귀가 염근당을 먼저 느낀다. 이번엔 눈이다. 전통기와 담장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누마루. 부채 모양의 부언(婦言) 서까래. 하나같이 곡선의 연속이다.

조선왕가 홍자은 미술관이 있는 아트센터와 야외 카페 테라스. 조선왕가 홍자은 미술관이 있는 아트센터와 야외 카페 테라스.
염근당 앞쪽에는 약 1만㎡(3000평) 규모의 야외 캠프장이 있는데 잔디정원으로 매끈하게 단장돼 있다. 건너편 2층 하얀 외벽의 단아한 아트센터도 눈길을 끈다. 문화재급의 고택과 현대 건축물의 조합이 묘한 앙상블을 연출한다. 이런 엇박자가 오히려 멋을 더해준다. 이곳 조선왕가 홍자은 미술관에서는 '생명과 자연'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연중 열린다.

◇왕가 비책으로 건강을 챙긴다!…약선 자연식
약선 한방백숙. 약선 한방백숙.
조선왕가에서는 왕가에서 먹던 균형 잡힌 자연식 식단의 약선 자연식 요리도 만날 수 있다. 로하스 연천의 유기농 농법으로 생산된 재료만 엄선했다. △약선 한방비빔밥 △약선 한방연잎밥 △약선 한방연잎수육 △약선 한방백숙 △약선 한방도토리묵 등 다양하다. 호텔 내에 있는 카페테리아 '왕가의 아침'에서는 100% 천연발효숙성 차, 와인 등을 맛볼 수 있다.

조선왕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아직 극복할 거리를 남기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유일무이하게 왕가 고택을 대중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시도했다는 점에서 분명 새로운 성취를 보여준다.

남권희 조선왕가 이사장이 전통 한옥호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남권희 조선왕가 이사장이 전통 한옥호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남권희 조선왕가 이사장은 "자연을 품고 자연 속에 안긴 조선왕가는 단순하게 전통을 재현한 일반적 한옥 건축물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단순한 호텔 영업이 아니라 문화와 가치를 판매한다는 소신으로 한옥의 자연적·문화적 매력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설정한 최종 목표는 한옥에서 보편적 창의성을 찾아 국내외에 널리 전파하는 것이다. 대중이 한옥을 더 이상 낯선 것으로 여기지 않을 때 새로운 한옥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게 남 이사장의 소신이다.

◇고택 운치만 즐긴다? 승마·공연 '재미'도 있다!

조선왕가 '염근당'과 '자은정'의 소유주 남권희 이사장(51)은 개성인삼영농법인 사장이다. 그는 2008년 6월 성균관대로부터 염근당을 사들인 뒤 해체·이전·복원작업에 나섰다.

이어 1년10개월에 걸친 복원공사 끝에 조선왕가는 지난해 9월7일 완공됐다. 해체하고 다시 짓는데 3년이 걸렸지만 남 이사장이 그간 꾸준히 소나무·돌 등을 구입해 조경에 투자하고 계획해온 기간을 포함하면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왕가의 비방인 한약 훈욕 테라피에 쓰이는 약재. 왕가의 비방인 한약 훈욕 테라피에 쓰이는 약재.
선조의 과학적 건축기술이 응축된 조선왕가는 2인실 13개, 4인실 1개, 6인실 1개, '스위트룸' 격인 별채 자은정까지 모두 16개 객실이 있다. 가격은 부가세(VAT)를 포함해 27만원부터. 4인가족이 전통왕가에서 하룻밤 추억을 만들기엔 부담이 없어 보이는 가격이다.

승마체험과 사상체질 전문가 임동구 박사의 건강캠프, 왕가의 비방인 한약재 훈욕테라피, 한방에스테틱 등이 무료 또는 실비로 포함돼 있다.

조선왕가는 개장과 동시에 다양한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전통'이라는 하드웨어에 정과 풍류·공연·체험프로그램 등의 아날로그적 콘텐츠를 꾸준히 발굴해 담아낸다는 계획이다.

승마체험을 비롯해 △아침트레킹 △건강세미나 △외국인 건강관광 프로그램 △음악회 △공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해뒀다. 오는 7월22일에는 '2011 청소년 전통문화 국제캠프' 1차 행사가 열린다.

2박3일 일정으로 50명씩 총 4차에 걸쳐 200명을 모집한다. 문의 조선왕가(www.royalresidence.kr), 경기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 420-1번지.
조선왕가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는 한탄강 물길이 유장하게 흐른다.  조선왕가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는 한탄강 물길이 유장하게 흐른다.
◇여행수첩
▷교통=자유로를 타고 문산-당동IC에서 37번국도를 이용해 전곡 방향으로 가다 3번국도로 갈아타고 연천방향-통현리에서 재인폭포 방향 우회전 3㎞ 지점.

▷전철=지하철 1호선 소요산역에서 하차. 조선왕가 셔틀버스 이용(8명 이상)

▷주변여행지=조선왕가가 위치한 연천에는 적지 않은 즐길거리와 여행포인트가 있다. 30분 이내 거리에 티클라우드CC·아도니스CC·몽베르CC와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연천승마공원이 있다. 옥색 물빛으로 유명한 재인폭포가 가깝고, 한탄강 래프팅코스·베어스타운스키장·신북온천·허브빌리지·파주명품아울렛과도 멀지 않아 휴식과 레저·쇼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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