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축구 경기로 보는 법

머니투데이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장 2011.06.0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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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에세이] 내 인생의 하프타임

내 인생의 전반전이 끝났다. 나는 지난 3월말 22년 2개월의 기자 생활을 마감했다. 전반전에는 나름 열심히 뛰었다. 승리를 위해 분주했다. 몸도 바쁘고, 마음도 바빴다. 정신없었다. 그래도 성적은 별로다. 게임을 지배하지 못했다. 창의성이 없었다.

지금은 하프타임이다. 쉬고 있다. 전반전을 돌아보고 있다. 후반전을 준비 중이다. 후반전은 작전이 완전히 다를 것이다. 큰 원칙은 즐기기다. 어슬렁거리기다. 나를 위한 신화다. 이기기가 아니다. 뛰기가 아니다. 세상을 위한 역사가 아니다.



하프타임에 할 일 : 후반전은 전반전과 다르다

인생 전체를 축구 경기로 보니 평생이 한 시야에 들어와서 좋다. 노년이 길어져서 이제 은퇴 후 삶은 인저리 타임이 아니다. 그것은 정말 인생 2막이다. 제2의 삶이다. 내 경우 서른 즈음에 본 경기에 나서 바로 얼마 전 전반전을 마쳤다. 아까 말한대로 22년 2개월 만이다. 아마 후반전도 그만큼은 될 것이다. 축구는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에 하프타임이 있다. 연극도 1막과 2막 사이에 짬이 있다. 인생에도 이런 하프타임이 필요하다. 그래야 한 숨 돌릴 수 있다. 새로운 작전을 짤 수 있다. 나에게 하프타임은 1년이다. 나의 후반전은 내년 봄에 시작될 것이다.



전반전을 마치자마자 쉬지도 않고 후반전으로 달려들면 곤란하다. 후반전은 전반전과 다르다. 우선 체력이 달린다. 전반전 뛰듯 하다간 쓰러진다. 다리가 풀려 흐느적거리다 말 수 있다. 막판에 게임을 포기할 지도 모른다. 시야는 좁아진다. 집중력도 떨어져 경기의 흐름을 놓치기 쉽다. 우왕좌왕하다 끝날 수 있다. 실속 없이 몸과 마음만 바쁘기 십상이다. 그러니 전반전에도 후반전을 염두에 두고 경기해야 한다. 그렇지 못했다면 후반전 작전을 다시 짜야 한다. 후반전까지 망치면 더 이상 만회할 틈은 없다.

나에게 후반전은 극적인 반전이다. 전반전은 많이 벌고 많이 쓰는 작전이었다. 그래도 통장 잔고는 조금씩 늘었다. 후반전은 조금 벌고 조금 쓰는 작전이다. 이제부터는 잔고가 계속 줄어들 것이다. 후반전이 끝날 즈음에는 잔고가 '제로'에 가까워질 것이다. 잘못하면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까 겁도 난다.

그래서 나는 하프타임에 할 일이 많다. 우선 생활 리듬을 짧은 호흡에서 긴 호흡으로 바꾸는 연습을 해야 한다. 경제 리듬은 확대 지향에서 축소 지향으로 바꿔야 한다.


이기기 말고 즐기기 : 선수 싫으면 관객을 하라

그런데 나는 반드시 축구 선수를 해야 하나? 죽을 때까지 운동장을 뛰어 다녀야 하나? 한번 더 생각하니 이런 의문이 든다. 여기 제3의 답이 있다. 이른바 '이외수식 솔루션'이다. 선수 말고 관객을 하는 것이다. 이외수는 묻고 답한다. "축구에 선수만 있나? 감독도 있고 코치도 있다. 물론 관객도 있다." 그러니 선수가 싫으면 관객이 되는 것이다. 선수야 나 말고도 수두룩하다. 젊고 패기 있는 신예들이 줄을 서 있다. 그렇다면 나까지 허둥지둥 뛰지 말고, 아둥바둥 이기려 하지 말고, 승패에 목숨 걸지 않는 게 어떨까? 그라운드에서 관중석으로 옮겨 앉아 경기를 즐기는 건 어떨까? 응원하고 격려도 하면서 노닥거리면 어떨까?

원래 내가 세운 후반전 작전의 대원칙이 '이기기 말고 즐기기', '뛰기 말고 어슬렁거리기' 였으니 어쩌면 선수보다 관객이 딱 맞는 것 같다. 나는 후반전에 골을 넣는데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선수는 당연히 경기장에서 나와야 한다. 내가 나와도 경기는 계속된다. 내 삶의 게임도 계속된다. 나는 후반전에 특별히 무엇인가를 '도모'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이런 뜻이다. 어떤 결과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되기 위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을 만들면서 사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사는 것이다. 의도를 빼고 그때그때 몸과 마음과 가슴이 원하는 것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할 것이다.

사실 그것은 누구나의 로망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즉각 경제적 압박이 다가 온다. 항상 무엇인가 일을 해야 한다는 뿌리 깊은 강박관념이 마음을 짓누른다. 일을 해야 늙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에 겁도 난다. 그러나 일도 잘 해야 늙지 않는다. 일이든 놀이든 마음 편히 즐겨야 늙지 않는다. 그래야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과정을 즐기는 삶이 열린다. 즐기면서 해야 결과도 더 좋다. 물론 나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무슨 문제인가. 나는 항상 즐기면서 살고 있는데.

나는 그렇고 당신은 지금 전반전의 어느 국면을 뛰고 있는가? 아직 전반전이 많이 남았는가? 아닐 것이다. 후반전은 생각보다 멀지 않고, 또 생각만큼 짧지 않을 것이다. 게임은 후반전까지다. 후반전 휘슬이 울릴 때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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