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것' 많은 글로벌 금융시장..亞서 '첫 술' 뜬다

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2011.05.1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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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금융강국코리아]<1> 은행, 새 먹을거리 찾아 해외로

편집자주 금융에서는 왜 세계 1등이 없을까. 머니투데이는 이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국내 금융사의 해외진출에 초점을 맞춰 전략과 방안을 모색하는 '금융강국코리아'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머니투데이는 금융의 경쟁력을 높여 강한 한국으로 키우자는 '금융강국코리아' 기획을 2003년부터 해왔습니다. 머니투데이는 직접 해외 금융현장을 누비며 현지의 눈으로 보고 방안을 모색하려 합니다

# "국내 금융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은행들이 해외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달 26일 오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18개 국내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당부한 말이다. 이날 모임의 화두는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문제와 은행권의 과당경쟁 움직임.

은행 해외 진출을 독려하는 권 원장의 발언은 출혈 경쟁을 지적하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나왔다. 성장세가 정체된 국내 시장에만 안주하다 보니 은행들이 제살깎기식 경쟁 행태를 재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장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문 안에서 우리끼리 치고받다간 공멸할 수 있다. 눈을 대문 밖(해외)으로 돌려야 한다"(A은행장).



은행 해외 진출은 '선택'이 아닌 '당위'다. 국내 시장이 이미 '레드오션'이 된 지 오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물론 은행 등 금융회사들도 글로벌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새 먹거리를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은행들이 너도나도 매년 "올해를 글로벌화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공언했지만 별 의미없이 십수년이 흘렀다. 여전히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금융은 '초등학생' 수준이다. 은행들이 올해 신발 끈을 다시 고쳐 멘 이유다.

◇금융업 '물반 고기반' 시대 '옛말'= 은행업은 기본적으로 공급자 우선 시장이었다. 그래서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란 말이 통용됐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은행들은 고객이 돈을 맡기는 대가로 이자를 건넨다. 거기에 수익으로 남길 이자를 다시 더해 대출한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예대마진을 얻는 구조다. 특히 개발금융 시대를 거치며 국내 은행들은 기업과 개인 고객들에게 '갑'으로 군림했다. 금융 수요자들이 넘쳐난 덕택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이런 구조가 지속됐다. 그러나 국내 금융시장이 '물반 고기반'이던 시대는 완전히 지났다. 우리 경제의 저성장 고착과 은행권 과당경쟁으로 은행들의 자산 성장성은 둔화되고 수익성은 악화됐다. 숫자로도 확인된다. 하나금융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은행들의 총자산 증가율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10%를 넘었다. 2008년엔 20%를 웃돌았다. 부동산경기 전성기인 2005~2006년 가계대출, 2007~2008년 중소기업 대출 전쟁을 벌인 결과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말 특수은행을 제외한 국내 은행의 총자산은 542조5528억이었다. 2008년 말엔 1306조2146억원으로 141%(763조6618억원)나 증가했다. 그러나 2009년 말 기준 은행 총자산은 1249조6546억원으로 줄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탓도 있지만 국내 시장이 성숙 단계를 넘어 포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반증이다.

은행 수익성과 이익창출 능력도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국내은행의 총자산이익률(ROA)은 2005년 말 1.11%를 기록한 이후 계속 떨어져 2009년 말 0.38%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핵심이익률(이자이익+수수료 이익/총자산)도 2004년 말 2.71%에서 2009년 말 2.10%로 악화됐다. 2005년 2.81%였던 국내 시중은행 순이자마진(NIM) 역시 2009년 1.98%로 하락했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금융시장은 우리 경제의 성장률 정체, 외국계은행 국내시장 진입, 은행간 과당경쟁 등에 따른 포화 현상으로 성장 한계에 다다랐다"며 "해외 진출만이 살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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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銀, 해외 현지화 점수 '낙제점'= 은행들도 생존을 위해선 글로벌화의 성공이 긴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해외에 진출한 국내은행 점포의 현지화 성적표는 아직 초라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해 말 기준 국내은행 해외 점포의 현지화 지표 평가등급은 2008년과 2009년에 이어 3년째 3등급에 그쳤다.

현지고객 비율과 현지직원 비율(2등급) 등은 양호했지만 현지자금 운용비율(4등급)과 초국적화지수(5등급)는 전년 말과 동일하게 저조했다. 특히 국제화 정도를 알 수 있는 척도인 초국적화지수(TNI·Transnationality Index)는 전년 말 2.7에서 3.6으로 다소 상승했지만 HSBC(64.7)나 크레디트 아그리콜(37.4) 등 글로벌 은행들에 비해선 현격히 낮은 수준에 그치고 있다.

국내 은행 해외 점포의 자산비중도 글로벌 금융회사들과 견줘 현저히 낮다. 국내 은행 해외 점포 자산 비중은 지난 해 6월 말 현재 3.5%에 머무르고 있지만 HSBC와 씨티은행은 각각 68.4%, 44.5%에 달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국내은행의 현지화 지표가 낮은 건 차별화된 해외 진출 전략이 부재하고 현지화나 글로벌 경영능력이 부족한 때문"이라며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해외 진출 성공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먹을것' 많은 글로벌 금융시장..亞서 '첫 술' 뜬다
◇'베이비스텝', 아시아부터 뚫어라= 전문가들은 단계적인 해외 진출 전략을 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과거처럼 철저한 시장 분석 없이 경쟁은행들을 따라 하는 해외 진출 전략은 버려야 한다는 얘기다. 대신 국내 은행이 비교우위에 있고 특화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을 집중 공략하는 게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이 좋은 사례다. DBS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적으로 동질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철저한 '아시아 전략'을 펼쳤다. 그 결과 아시아 금융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 연구위원은 "스페인 산탄데르나 BBVA가 중남미 시장에서 성공하고 DBS가 아시아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것은 문화적 친밀감을 토대로 선진 금융을 재생산했기 때문"이라며 "해외 금융사들과의 경쟁에서 비교우위가 있는 곳을 선정해 진출 국가를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은행들의 해외 진출 전략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또렷이 감지된다. 주요 타깃은 중국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성장세가 강한 신흥시장이다. 그 중에서도 제1 타깃은 아시아다. 전문가들의 조언대로 진출 가능한 지역부터 공략하는 '베이비스텝'(단계적 접근) 전략을 취하겠단 얘기다.

이순우 우리은행장은 최근 "국내엔 돈 굴릴 데가 없다. 국내에서는 경쟁이 심해 해외로 나가야 한다"며 "선진국 진출엔 아직 한계가 있는 만큼 인도네시아,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의 지역에 나가 현지은행을 인수합병(M&A)하는 등 현지화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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