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전문가보다 '배우 변호사'가 더 좋아요"

머니투데이 김만배 기자, 배혜림 기자 2011.04.0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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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고수를 찾아서]법무법인 신우 홍승기 변호사

↑법무법인 신우 홍승기 변호사 ⓒ류승희 인턴기자↑법무법인 신우 홍승기 변호사 ⓒ류승희 인턴기자


미국 만화영화 캐릭터 '미키마우스'는 1928년 11월 뉴욕 콜로니극장에서 개봉된 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로 데뷔한 이후 전 세계의 사랑을 받으며 월트디즈니의 성공신화가 됐다. 하지만 미키마우스는 미국 저작권 패권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미국이 1998년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자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한 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 미키마우스의 저작권 보호기간을 늘리려는 월트디즈니사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후문이 전해지면서부터다.

이렇게 해서 이름 붙여진 '미키마우스법'은 국내에서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한·미 양국이 2007년 4월 저작권 보호기간을 20년 연장하는 내용의 FTA에 합의하면서 저작권법 개정을 둘러싸고 정부와 문화계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정부는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이 세계적 추세라는 입장이다. 반면 문화계는 미국에 매년 천문학적인 금액의 로열티를 지불한다면 문화주권을 잃게 될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법무법인 신우의 홍승기(52·사진) 저작권 전문 변호사는 저작권이라는 배타적 권리를 인정해 이용자의 권리를 줄이는 것은 인류문화의 발전을 역행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은 피할 수 없는 세계적 추세라 하더라도, 지식과 정보가 과도하게 긴 기간 소수에게 독점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작가 사후 50년 동안 활용되는 저작물은 2% 미만이고 대부분의 저작권이 창작자가 아닌 문화사업회사에 있다는 점 역시 저작권 강화론자가 내세우는 '창작자 보호' 주장을 달리 해석할 만한 근거다. 홍 변호사는 저작권법 위반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움직임에도 비판적인 의견을 밝혔다.



"저작권 전문가보다 '배우 변호사'가 더 좋아요"
"저작권 의식 고취와 함께 저작권 의식 과잉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저작권은 당사자간의 계약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비범죄화해야 합니다. 저작권 보호는 보상 청구권을 통해 민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형사처벌은 웹하드업체와 같이 저작물 불법 유통을 영업적으로 하는 경우로 국한해야 합니다."

저작권자의 권리를 지키면서 문화의 발전에 역행하지 않는 저작권 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은 홍 변호사의 일관된 견해다. 그는 "노무현 정부는 우호세력인 누리꾼의 눈치를 보느라 이용자 중심의 저작권 정책을 폈고 이명박 정부는 기업 중심의 정책으로 인터넷상의 불법복제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했다"며 "권리 보호와 문화사업 향상이라는 저작권법 제정 목적에 부합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남준아트센터 법률자문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카탈로그 레조네'(작가의 모든 작품과 역사를 기록)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경기 용인의 백남준아트센터. 경기문화재단이 2004년 손학규 도지사 시절 설립을 추진해 지금은 백남준의 예술과 역사를 체계적으로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이 촬영 또는 등장한 비디오테이프 2500개를 디지털로 전환한 비디오아카이브와 회화, 조형물 등 작품 수백점을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소장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백남준 사후 미망인과 조카 사이에 저작권 분쟁이 벌어져 미국 뉴욕의 작업실에 있던 작품을 가져오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

당시 경기문화재단에 법률 자문을 제공해 백남준과의 계약에서 특정된 작품들을 무사히 국내로 들여올 수 있도록 한 인물이 바로 홍 변호사다. 이후 그는 미술관 설계부터 소장품 구입, 외국 큐레이터 채용까지 아트센터에서 발생하는 모든 법률적 문제를 자문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해외 장기투어와 미국 유니버설뮤직과의 음반 발매계약도 홍 변호사의 손을 거쳤다. 홍 변호사는 "우리 예술가들의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률적 분쟁을 해결하는 것은 변호사의 몫"이라며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시장도 확대되고 있는 만큼 법률 전문가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노예계약 없애려면 '매니지먼트사 등록제' 도입해야
홍 변호사는 저작권과 문화, 예술법 이외에도 표현의 자유, 공정거래, 엔터테인먼트사업 등의 분야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3년 전부터는 사단법인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의 회장으로도 재직 중이다.

학회는 연예인 노예계약 등 국내 연예산업의 기형적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국회에서 논의 중인 '연예매니지먼트사업 법안'의 기초를 만들기도 했다. 매니지먼트 회사를 등록하는 데 자격요건을 둬 진입장벽을 만들자는 게 그 골자다. 인적·물적 요건을 갖춘 사람만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등록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 변호사는 "부적격 연예매니지먼트 사업자를 퇴출시킬 규제 수단이 없어 연예인 노예계약이 법정공방으로 비화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연예인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저작권 전문가보다 '배우 변호사'가 더 좋아요"
◇"나는 배우다"
홍 변호사가 변호사이기 이전에 배우라는 사실.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꽤 유명한 얘기다.

1993년 이석기 감독의 영화 '아주 특별한 변신'으로 데뷔해 임권택 감독의 '축제'에서는 주연배우 안성기씨의 친구역으로 등장했다.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다룬 영화 '섹스 볼란티어'에서는 주인공 신부 역할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2003년 배우 박희순, 백종학씨와 함께 연극 '아트'로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서기도 했다.

"현장, 바닥에 가장 가까운 곳, 무대에 선다는 생각을 항상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연극 무대 위에서 객석의 시선과 호응, 열기를 느끼는 때만큼 짜릿한 순간은 없을 겁니다."

홍 변호사는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아역 배우로 무대에 첫 발을 디뎠다. 연극 '따라지 향연'에 이어 '춤추는 벌레'와 '배비장전'에도 출연했다. 연기는 즐거웠지만 성인극단 속 아역 배우의 눈에 배우는 궁핍한 직업이었다.

함께 무대에 오른 성인 배우들의 주머니 속에는 전당표가 가득했고 입 밖으로는 다음날 땔 연탄 걱정이 새어나왔다. 그 때 가난하지 않은 배우가 되려면 먼저 변호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배우를 꿈꾸게 한 곳도, 변호사를 꿈꾸게 한 곳도 모두 극단이었던 것.

홍 변호사는 올해를 연기의 원년으로 삼았다고 한다. 오는 11월 '레미제라블'로 무대에 오를 계획도 가지고 있다. 업무가 많아 연습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무대를 앞둔 배우의 설렘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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