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건설사 꼬리 자르기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11.03.2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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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선례가 됐다"

21일 LIG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을 접한 뒤 금융당국 관계자가 한 말이다. 그만큼 금융당국이나 채권단이 느끼는 당혹스러움은 크다. 파장에 대한 걱정도 깊다.

물론 대기업 그룹 계열 건설사의 꼬리 자르기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한솔그룹은 한솔건설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효성그룹은 진흥기업을 법정관리에 넣으려고 했다가 자율 워크아웃으로 방향을 돌렸다. LIG건설은 세 번째인데 바로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강수를 뒀다.



무엇보다 이 흐름이 계속되고 있는 게 문제다. 제도적으로 보면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사라진 게 주된 이유다. 기촉법이 있었다면 채권금융기관의 75%(신용공여액 기준)의 동의로도 워크아웃 개시가 가능하다. 게다가 채권기관협의회를 소집하는 순간부터 채권 회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채권단의 일관된 대응도 쉽다.

반면 기촉법이 없는 상황에서 워크아웃을 개시하려면 채권단 '전체'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최근 들어 은행권 여신 외 저축은행 등 2금융권 여신이 많아진 터라 '전체' 동의는 어려운 과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LIG건설의 경우 어차피 워크아웃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바로 법정관리로 향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게 곧 LIG건설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촉법이 없는 상황에서 자금 압박을 받는 회사가 선택할 길은 많지 않다. 대그룹 관계자는 "은행 여신이 집중된 구조라면 워크아웃도 가능하겠지만 현재 상황에선 법정관리가 유일한 답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다. 기촉법 부활을 위해 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채권단과 금융당국은 이와 별개로 그룹사의 '뒤통수 때리기'가 못마땅한 눈치다. 사전 협의나 통지는커녕 사후 통보조차 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하곤 두 손을 드는 경우가 다반사다. LIG건설의 경우 금융당국이나 채권단에 아예 알리지도 않았다. 역학관계가 역전된 것도 영향을 준다. 회사 주인이 회사를 살려달라고 채권단에 읍소하는 게 일반적인데 최근엔 반대가 됐다. 주인은 버리겠다고 하고 채권단은 어떻게든 살려보자고 달래는 게 대부분이다.


진흥기업 워크아웃을 두고 효성그룹과 채권단이 벌인 힘겨루기가 한 예다. 채권단 관계자는 "그룹을 믿고 등급 평정 때 후한 점수를 주고 유동성을 지원해 왔다"며 "그룹이 유동성 지원에 난색을 표하면 채권단 입장에선 난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과거 힘들 땐 그룹을 내세워 금융권의 지원을 바라더니 이젠 나 몰라라 한다는 게 금융당국의 인식이다.

또 그룹사들이 당장 법정관리행을 막을 방도가 없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는 게 채권단의 인식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기촉법이 사라진 허점을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룹사의 계열사 꼬리자르기가 계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LIG건설의 사례는)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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