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4대강 테마주'는 양반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11.03.03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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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회사 대표가 ○○○ 정치인 후원회 소속이라는 게 맞긴 맞습니까?"

전화기 속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영남지역 중견 건설업체의 대표가 차기 유력 대권주자의 후원회 회원이라는 보도를 보고 투자했다 손해를 봤다는 얘기였다.

해당 기업은 지난해 말 증권가에 소문이 돌면서 닷새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600원 수준이었던 주가는 2000원 넘게 올랐다가 최근 1000원대 초반으로 다시 곤두박질쳤다.



고점 부근에서 들어갔다는 이 투자자는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5년마다 찾아오는 대선은 아직 한참이나 멀었는데 증시에선 벌써부터 투자자들의 '정치병'이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말부터 바람을 타기 시작한 '정치인 테마주'는 20여개에 달한다. 각 정치인들이 내세우고 있는 저출산 대책, 노인복지, 물 관련, 세종 과학벨트 등 정책 수혜주가 '테마주'의 주류를 이룬다.



이들 테마주는 두달 남짓 동안 많게는 330%까지 올랐다. 지금은 다소 진정된 상태지만 한창 투자자가 몰릴 땐 거래소의 투자경고종목 지정예고에도 열기가 꺾이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7년 대선 직전 대운하 공약을 내놓은 뒤 재미를 봤던 4대강주의 '추억' 때문이다.

테마주가 실질적으로 수혜를 볼 수 있느냐에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는 고개를 젓는다. 유력 대권주자의 파워에 기댄 '베팅'이지만 대선까지 2년여가 남았고 결과 역시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래도 정책 수혜주는 나은 편이다. 유력 대권주자가 거론할 정도의 테마라면 당선 여부를 떠나 정책 차원에서 다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 큰 우려는 '인맥 수혜주'다.


이번 정책 수혜주가 뜨면서 이들 정치인의 친인척이나 관련 인사와 연줄이 있는 상장사의 주가가 들썩였다. 단지 동생이나 동생의 부인이 주주라는 이유로 실적과 상관없이 매수 주문이 집중됐다. 앞서 예로 든 투자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인맥으로 떠오른 종목은 관련된 사람이 떠나는 순간 추락"이라며 "그런 사례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증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한다. 과거의 실적보다는 미래의 성장성에 투자한다는 것이다. 정치인 테마주에 대한 베팅도 이를 따른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성장성이 '연줄'이나 '인맥'이라면 번지수가 한참 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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