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된 한전, 'KPS 매각' 호미로 막을 일을...

더벨 이재영 기자 2011.02.22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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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 매각 고수하다 발목...공기업 딜 실패의 전형 지적

더벨|이 기사는 02월17일(17:33)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한국전력공사 (19,990원 ▼10 -0.05%)의 KPS 지분 매각 과정을 두고 '공기업 거래 실패의 전형'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당초 설정한 할인율을 고수하다 딜이 틀어졌고 이젠 더 손해를 보고 팔아야하는 상황이란 지적이다.



한전의 KPS 지분 매각은 3년이나 묵은 숙제다. 2009년 매각 절차를 시작한 이후 공개 입찰을 2번, 대량매매(블록세일)를 1번 진행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한전은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따라 2012년까지 KPS 지분을 60%로 줄여야 한다.

거래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한전의 경직성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지난해 10월 진행한 블록세일의 실패가 단적인 사례다.



당시 한전KPS (36,150원 ▼150 -0.41%) 주가는 6만5000~6만8000원 내외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한전은 6만8300원을 기준 주가로 설정하고 여기에 할인율 2%를 적용한 6만6940원을 블록세일 매각가로 내걸었다.

한전이 처음 지분 매각 절차에 들어간 2009년(3만원)보다는 주가가 2배 이상 높았지만 실적 리스크가 부각되며 고점(7만7500원)에서 내리막을 타는 추세였다. 한전이 해외 원자력발전소 수주에 잇따라 실패하며 한전KPS도 기대됐던 해외 정비 물량 수주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었던 점이 작용했다.

KPS 주가의 하락 추세를 우려한 기관투자가들은 할인율이 4~5%정도는 돼야 투자 매력이 생긴다는 입장을 보였다. 6만5000원대 아래에서라면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내하고 인수에 나설 수 있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한전은 할인율 2%를 고수했다. 불과 2개월 전 하이닉스반도체가 할인율 제로 블록세일에 성공해 할인율을 높이는 데 부담을 느꼈을 거라는 분석도 있다.

결국 가격차로 인해 블록세일은 실패했다. 이후 실적 리스크가 현실화되며 한전KPS 주가는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해 말 5만원대 초반으로 급락했고 원전 테마 열기마저 식으며 17일 종가 기준으론 4만1900원까지 밀렸다.

대규모 해외 원전 수주 같은 이벤트가 없다면 한전KPS의 주가가 단기에 급등하길 바라는 건 무리라는 지적이다. 만약 현 주가 수준에서 블록세일이 이뤄진다면 한전이 보유한 KPS 지분 15%(675만주)의 가치는 2800억여원에 머문다.

지난해 10월 팔았다면 지분 15%의 가치는 4300억원에 달했다. 블록딜 할인율 3%를 아끼려다 30% 이상 손해를 볼 수도 있게 된 것이다.

한전은 블록세일 전 공개 입찰을 진행했을 때에도 경직된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5월 쯤 주가가 4만원 후반에서 움직이고 있었음에도 5만원 이상을 희망하다 2차례의 입찰이 모두 유찰됐다. 입찰엔 하나UBS자산운용 등이 참여했지만 모두 한전이 제시한 최저매각가격(MRP)를 넘기지 못했다.

투자자들로서는 시장에서 직접 매수해도 5만원 아래에서 살 수 있는 지분을 굳이 입찰비용까지 치르면서 비싸게 살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이 같은 모습은 그랜드코리아레저(GKL) 지분 19%를 매각한 한국관광공사와 대비되는 것이다. 관광공사는 지난해 11월 지분 공개 입찰을 진행했다 실패하자 블록세일로 방향을 선회, 시장 친화적인 방식으로 매각에 성공했다.

당초 주당 2만원 이상의 매각 가격을 원했던 관광공사는 입찰 실패 뒤 비공개 방식의 블록세일로 바꾸고 눈높이를 낮췄다. 주당 2만원 이상에 매각하겠다는 고집을 버리고 시장에서 제시하는 할인율을 참고했다.

내부적으로 할인율을 5%로 설정하고 마케팅에 나서자 예상보다 많은 투자가 몰렸다. 기관 사이에 물량 확보 경쟁이 일어나며 할인율은 4.1%로 줄었다. 결국 주당 1만8700원에 잔여 지분 전량 매각에 성공했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한전의 경우 공기업이라 자산 매각에 규제가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매각 시점이나 가격 결정 과정에서 시장 의견 수렴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최근 KPS 주가가 많이 내려온 상황이라 장기적인 호흡으로 주가가 어느 정도 회복된 후 다시 매각에 나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한전은 최근 한전KPS 지분 매각 공고를 내고 주관사 선정 절차에 들어갔다. 제안서 평가를 통해 복수의 협상적격자를 선정한 뒤 고득점자 순서에 따라 협상을 통해 이달 중 주관사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3월 중 본 계약 체결 후 블록세일을 위한 본격적인 시장 수요조사가 시작될 전망이다.

한국전력 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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