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OL 열쇠 쥔 '허핑턴'은 누구..

머니투데이 송선옥 기자 2011.02.0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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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미디어 블로그 성공신화이끈 '이카루스의 후예' 아리아나 허핑턴

미 인터넷 기업 아메리카 온라인(AOL)이 미디어 블로그 허핑턴포스트(이하 허포)를
3억1500만달러에 인수키로 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글로벌 IT붐 '1세대'인 AOL이 잇단 좌절을 딛고 재기의 승부수를 띄웠다는 것이 일단 뉴스이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은 창간 6년만에 기존 언론의 제왕인 뉴욕타임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최고의 '몸값'을 올린 온라인 매체 허포와 허포의 성공 스토리를 엮어낸 여성 창업주 아리아나 허핑턴에 더 쏠린다.



AOL의 인수 소식이 알려지자 허포 사이트에는 ‘이제 즐겨찾기에서 허포를 삭제할 때가 된 것 같다’ ‘너무 실망스럽다’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바로 이것이 AOL이 주목한 허포의 힘이라 할 수 있다.

◇월 독자 2500만명, 가장 영향력 큰 블로그= 2005년 창업된 허핑턴포스트는 2009년 타임과
AOL 열쇠 쥔 '허핑턴'은 누구..


옵서버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블로그 사이트다. 월간 고정독자만 현재 2500만명으로 계속 늘고있는 추세이다.



양방향 정보전달이라는 온라인 매체의 특성을 잘 살려 독자들은 뉴스에 대해 댓글을 달기도 하고 블로그에 본인들의 글을 직접 올려 다양한 스펙트럼을 제시한다.

하지만 허포의 공식 스태프는 100여명뿐이다. 배달망 등 거대한 하부조직이 딸린 뉴욕타임스의 1/10에 불과한 숫자이다.

이를 뒷심으로 허포는 창사 5년만인 지난해 흑자로 전환했다. 주로 광고매출인 수익은 3000만달러를 기록했다. 허포는 트래픽수가 늘고 있고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어 올해에는 3배이상의 신장을 자신한 바 있다.


현재 방문자가 3500만명인 AOL은 허포와의 합병 시너지로 미국에서 월간 1억1700만명, 전세계에서 2억7000만명이 보는 거대 미디어 그룹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미디어모프의 컨설턴트 샤히드 칸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뜻이 통했다”며 “AOL은 이제 깊이있는 뉴스와 정치 사이트를 제공할 것이며 특히 교육수준이 높고 젊은 독자층을 만족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존 메이저 언론매체들이 허포를 보는 눈은 아직도 차갑다. 대부분이 자신들이 힘들게 작성한 뉴스콘텐츠를 가져다가 살짝 '재포장'해 판매하는 '언론의 기생충'이라는 시각이다.

CBS라디오의 전 최고경영자(CEO)인 조엘 홀랜더는 “이번 인수는 많은 콘텐츠를 모으는데 한방이 될 것”이라며 “하지만 아직도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평가했다.

◇ ‘이카루스의 후예’ 아리아나 허핑턴=허포의 성공과 함께 공동창업주인
AOL 열쇠 쥔 '허핑턴'은 누구..
아리아나 허핑턴(사진)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전 공화당 상원의원의 부인이자 진보성향의 정치평론가, 작가, 라디오쇼 진행자, 가십 칼럼리스트 등 화려한 백그라운드를 배경으로 오늘의 허포를 키운 주역이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허핑턴을 ‘(날개를 발명한) 이카루스 이후 가장 상승 지향의 그리스인’으로 묘사된다고 표현했다.

허핑턴은 1950년 그리스 아테네 태생이다. 그의 부친은 2차 세계대전 독일나치 점령 치하에서 레지스탕스(저항) 신문을 펴낸 언론인 출신이다. 16세때 영국으로 건너가 캠브리지대 거튼칼리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캠브리지대 학생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허핑턴은 21세때 21살 연상이던 더 타임스 칼럼니스트 버나드 레빈을 만나며 인생에 전환을 맞았다. 2004년 레빈이 사망했을 때 허핑턴은 그에 대해 ‘작가로서 멘토였으며 사상가로서 롤모델이었다’고 회고했다.

레빈을 만나 세상에 눈이 뜬 허핑턴은 23세때 여성 해방운동을 주장한 저매니 그리어의 책 ‘여성 내시(The female Eunuch)’에 반박하기 위해 ‘여성 여자(The Female Woman)’란 책을 쓰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어 1985년 영화 제작자이자 공화당 정치인이던 마이클 허핑턴을 만나 이듬해 결혼하며 현재의 허핑턴이란 성을 따왔다. 당시 결혼식에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비롯한 사회저명인사 500인이 참석하고 유명 앵커 바바라 월터스가 신부 들러리를 섰다.

남편 마이클은 1994년 상원의원에 당선됐으나 둘의 가정생활은 이후 3년만에 파경을 맞았다. 둘사이에는 크리스티나와 이사벨라 두 딸을 뒀다. 허핑턴은 결별 이유를 ‘마이클은 유럽으로 떠나 배나 타며 즐기고 싶어 했지만 나는 내 인생을 더욱 상승시키고 글쓰기를 계속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이클의 선거참모를 지낸 에드 롤링스는 아리아나 허핑턴을 ‘내가 국내 정치에서 30년간 만난 인물중 가장 무례하고 거만했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 자신이 야망이 컸던 허핑턴은 이후 직접 주정부 선출직에 출마도 했었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에 100만달러를 들고 시작한 사업이 허핑턴포스트이다.

하지만 허포의 출발은 사실 미미했다. 미디어 블로그의 효시격이던 드러지 리포트를 벤치마킹한 정도이다. 다만 보수성향인 드러지 리포트와는 대척점에 서서 진보성향을 표방했다. 또 클린턴 대통령과 인턴 르윈스키의 '지퍼게이트'를 터뜨리며 주가를 올렸던 드러지 리포트에 반해 독설과 해학을 배제한 정통 논단을 추구했다.

여기에 차별화를 더한 것은 허핑턴의 네트워크와 능력이다. 그의 오지랖 넓은 인맥은 월터 크롱카이트 등 당대의 쟁쟁한 논객들이 '무료봉사'로 글을 올리게 만들며 오늘날 기념비적인 온라인 매체로 성공할 수 있었다.

아리아나 허핑턴은 합병회사인 허핑턴포스트 미디어 그룹에서 회장 겸 편집장을 계속 맡을 예정이다.

그는 이번 인수와 관련한 논평에서 “허포의 노선을 완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여전히 같은 목표를 향해 같은 사람들과 여행중이다”라고 썼다.

◇AOL의 M&A 실험=AOL의 이번 인수가 주목받는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는 AOL이 이어온 실패의 인수합병(M&A) 역사 때문이다.

AOL은 지난해 단문 메시징 서비스업체인 ICQ를 1억8750만달러에 매각했다. 이는 1998년 인수가격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었다. AOL은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 베보 매각으로 큰 손실을 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최악의 M&A는 타임워너와의 만남이었다. IT버블이 정점에 달했던 2001년 당시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AOL은 종합미디어업체 타임워너와 합병했다. 양사간 M&A규모만 1640억달러에 달하는 '세기의 결혼'으로 일컬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타임워너-AOL은 2002년 회계연도에 무려 990억 달러의 매출 손실을 내는 등 기대했던 시너지는 내지 못하고 IT버블 붕괴에 속수무책 내리막을 달렸다. 결국 AOL은 지난해 타임워너로부터 '쫓겨나다시피' 분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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