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재계 "배출권 거래제 조기도입은 자승자박"

머니투데이 성연광 기자 2011.02.0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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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앞서서 자승자박할 필요까지야 없지 않겠습니까"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조기도입에 반대하는 공동 건의문을 국무총리실에 제출한 경제계를 대표해 7일 대한상의 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의 하소연이다.

녹색성장위원회가 작년 11월 입법예고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기업마다 온실가스 배출 할당량을 정해놓는 제도다. 가령, 할당량을 초과해 온실가스를 더 내보내야하는 기업은 초과한 양만큼 배출권을 사야하고, 덜 내보내면 돈으로 보상 받게된다.



이 제도를 통해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도입 취지다. 여기에는 우리나라가 친환경 제도를 선제 도입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이니셔티브를 확보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유발되는 녹색사업을 차세대 성장 동력화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도 깔려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009년에 "202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중기 감축목표를 2005년 대비(배출전망치) 30%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도입 취지에 대해 경제계도 일정부분 수긍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계는 물론 지식경제부조차 누차 반대 입장을 표명한데는 단기적으로 산업에 미치는 악영향이 큰 상황에서 오지랖 넓게 앞서갈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이유에서다. 시기상조론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다.

이동근 부회장은 "지난해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으로 미국은 20%, 중국은 21%, 일본은 5% 비중을 차지해 이들 3개국이 거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1.7%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배출권 거래제를 약속했던 일본은 지난해 12월 각료회의에서 결국 제도 도입 자체를 무기한 연기했다. 미국 역시 작년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함에 따라 배출권거래제 도입이 사실상 어렵게 됐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한다고 지구환경이 좋아지겠느냐"라며 "G20 주요 선진 경쟁국들과 보조를 맞춰하는 것이 중요하지 먼저 앞서 나간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반대로 이 부회장은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되면 매년 5조6000억~14조원대의 추가비용이 발생될 것"이라며 "이는 철강, 정유, 발전 산업부문 기업들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는 연간 영업이익이 3조1000억원인 국내 대표 철강사를 예로 들며 이 회사가 배출권 구입으로 많게는 2조3000원까지의 비용이 수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18개 경제단체는 주요 경쟁국들의 동향을 고려해 도입 논의 시점을 2015년 이후로 연기하거나 철회해 줄 것을 요구하는 공동 건의문을 국무총리실에 제출했다.

배출권거래제 입법예고안이 오는 10일 마지막 관문인 규제개혁위원회 상정을 앞두고 있다. 이에 앞서 가급적 산업계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시킨다는 것이 경제계의 바람이다.

다행히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이르면 2013년부터 시행키로 했던 당초 원안에서 상당부분 수정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7일 오전 제58차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산업계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적절한 시점에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겠다"며 기존 조기 도입 방침에서 한발 물러섰다. 이 대통령은 "정부는 국제동향과 산업경쟁력을 감안해 유연하게 추진해 나갈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오는 9일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배출권 거래제 도입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관련법 제정안을 마련하기 위한 조율 작업을 벌일 예정이어서 그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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