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현칼럼]한강을 건너며

머니투데이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11.01.12 14:00
글자크기
필자의 집이 용산이다보니 싫든 좋든 하루에 2번은 한강대교를 건너게 된다. 중·고등학교 때는 반대로 집이 한강 남쪽이고 학교가 용산 쪽이어서 6년 동안 한강대교를 지나다녔다. 10여년이 넘게 한강대교를 지나다녔으니 얼추 6000여회를 건넜다는 계산이 선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한강대교를 건너며 창 밖을 본다. 바다를 꿈꾸는 강의 숙명처럼 강기슭을 핥던 파도는 포말로 부서지기 전 겨울을 피해 동면에 들어있다. 하얀 눈을 모포처럼 두르고. 이렇게 자연은 계절의 변화에 순응할 줄 안다.



필자가 중학생일 무렵 한강의 수계는 지금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잠수교 부근은 특히 얕아서 반포 쪽은 장마철을 제외하면 강이라기보다 몇십 개의 웅덩이로 고립돼 있었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투망질로 붕어도 잡고 어머니 손에 이끌려 북쪽 깊은 강줄기까지 가서 자라를 방생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한강대교를 건너는 것 자체가 고역이 됐다. 한강대교 북단은 동부이촌동과 서부이촌동, 강변북로 진입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설치된 고가도로가 2년 전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철거된 후 용산역 앞 중앙차선제 전환과 맞물려 최악의 교통난이 일어나고 있다. 출퇴근시간이면 남단에서 북단으로 도강하는데 적게는 20분에서 1시간까지 걸리기도 한다.



더불어 필자가 중학생일 때 붕어를 잡던 반포대교 옆에는 인공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도시건축학에 문외한인 필자의 입장에서 인공섬이 한강의 경관을 아름답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인공적 요소돴가 이미 충분히 '인공적인' 한강에 꼭 필요한 건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반포대교 밑 잠수교를 보면 왕복 4차선을 2차선으로 줄이고 자전거 전용도로를 차선보다 더 넓게 만들더니 아예 남단 초입은 우회하도록 화단까지 조성해 두었다. 그러고보니 광진교도 비슷하게 만들어 놓았다. 모두 한강르네상스라는 거창한 명칭 아래 진행되는 개발의 일환이다. (그런데 한강이 중세의 암흑기를 겪은 적이 있던가?)

이런 개발에 대해 필자는 자연인으로서나 경제학자로서 공히 공감키 어렵다. 자연인으로서 필자가 바라는 한강은 인공의 세련미보다 자연의 투박함이 살아있는 강이다. 과거는 지울 부분이 있고 보존·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 오늘 개발의 결과물인 세련된 건축물이 몇십 년이 흐른 뒤 철거돼야 할 또다른 '과거'로 퇴색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세련됨은 트렌드에 의해 정의되고 시간에 따른 가변함수다. 시간에 관계없이 공감할 수 있는 디자인은 인간이 아닌 자연의 몫이다. 진정 한강르네상스라면 한강을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경제학자로서 필자가 그리는 한강은 부의 편중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는 자연체다. 강변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드리워진 고가 아파트들은 한강르네상스 기대감으로 지난 3년 간 진행된 부동산 침체기에도 상대적으로 선전했다. 부동산을 위험자산으로 볼 때 서울시의 인위적 개발로 인해 가격변동을 유발하는 '정책위험'은 최소화돼야 한다. 더욱이 개발로 인한 수혜자가 상대적으로 부유층이라는 측면에서 주의를 요한다.


지난 정부의 세종시사업으로 인해 토지보상금으로 풀린 자금이 정권말기 부동산 가격폭등의 원인 중 하나가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4대강사업으로 인해 또다른 대규모 토목공사가 진행 중이며 여기에 한강르네상스까지 더해 부의 편중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을까? 더불어 미적 경관을 우선시하다 한강대교 고가도로 철거의 예처럼 도시기능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는가?

장마철이 오면 한강이 범람해 휴교라도 하지 않을까 기대하던 철없던 중학생은 어느덧 50을 목전에 둔 중년이 됐다. 오늘 한강을 건너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듯 35년 후 필자가 살아 있다면 한강을 건너며 오늘을 그리워할 것 같다. 인간의 손을 조금이나마 덜 탔던 한강을.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