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3년

머니투데이 황인선 KT&G 미래팀장 2011.01.1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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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톡톡]실수를 두려워 말자

잃어버린 3년


안철수 교수가 인터뷰에서 '잃어버린 3년'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2004년 페이스북, 2007년 아이폰과 소셜게임업체 징가, 2008년 소셜커머스 그루폰, 2009년 위치기반 서비스업체 포스퀘어가 등장하면서 아이폰으로 촉발된 스마트폰이 세계를 뒤엎었는데 IT 강국이라는 우리 한국은 그 흐름을 주도적으로 끌고가지 못하고 정부는 IT 컨트롤타워를 해체해버렸고 거대담론들만 얘기하면서 세월을 까먹고 있다는 것이죠. 진정한 창업가정신은 실종된 것 같다면서 답답하고 분노가 치미는 심정도 내비쳤습니다.

IT업계만이 아닙니다. 마케팅업계, 사회도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몇년 동안 유니크하거나 굵직한 마케팅 사례가 별로 안보입니다.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한 '꽃보다 남자'나 '미녀는 과로워', 아이폰4와 앱스토어 열풍, '슈퍼스타K2'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가 눈에 띄지만 우리 스토리, 독자모델은 아니죠. 기아차 K시리즈나 갤럭시탭 정도가 시장에서 반응을 이끌어냈다면 이끌었는데 태풍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영화는 반짝하는 것 같더니 2010년엔 핏빛 잔혹 무비들이 이어지면서 한국영화를 무섭게 만들었습니다. 그나마 소녀시대나 카라 등 걸그룹이 한류바람을 다시 지핀 것과 감동스토리가 좀 늘어난 게 위안을 줍니다. '경청'이나 '배려' 등 사회적 웰빙책들의 선전, 6·2지방선거에 등장한 트위터선거와 극적인 반전, '슈퍼스타K'의 허각이나 '남자의 자격'의 박칼린 감독…. 다문화가정에 대한 관심 증대와 착한 소비 등은 좋았습니다.



사회는 여전히 시끄러웠습니다. 2008년 광우병 파동부터 세종시 이전, 4대강 사업…. 미국발 금융위기, 미디어법, 신종플루, 구제역 파장과 한돚미 FTA, 북한, 오만해진 중국 등으로 한달이 멀다하고 사건이 터져 아드레날린 팍팍 돋는 몇년이었습니다. 김연아의 금메달과 스피드스케이팅부문의 성과, 여자축구, 수출규모 1조달러로 세계 7위와 삼성 현대차 LG 등 대기업의 선전, 원전플랜트 수출과 G20회의 서울 개최, 코스피 약진 등의 가시적 성과는 고무적이지만 체감효과가 낮았습니다. 실업난과 소득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중산층의 위기의식이 높아졌고 정신사회의 바로미터인 출판·공연문화계는 침체고 고질적인 악플문화 등으로 사회적 스트레스는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사람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증강현실, 시크릿가든의 세계로 숨어듭니다.

최근 경력직을 뽑느라고 면접들을 해보니 이런 사회적 분위기나 기업체 현황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는데 나름 좋은 회사에 다니는 대리·과장급들이 자신들 회사가 비전이 없고 산업기회는 점점 줄고 경영진이 옛날 관행대로 결정하는 문화가 싫어서 옮기고 싶다고 합니다. 스마트사회, 감성사회, 하이터치시대라고 하는데 우리 사회의 창조적 분위기가 약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창조교육은 늘고 누구나 창조를 말하지만 창조는 교육이나 말로 되는 게 아닙니다. 실수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올해 미래팀의 부서 슬로건을 '신속한 의사결정과 창조적 실행'으로 잡았습니다. 누가 미래에 대해 실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석학 임어당이 오래전에 미국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답니다. "산에 터널을 뚫을 때 미국사람은 양쪽에서 정확하게 측량해서 하나의 터널을 뚫지만 중국인은 측량술이 약해서 뚫다보면 2개의 터널을 뚫습니다."

전에 콜라보레이션을 하려고 왕자웨이 김독을 만나 에피소드를 들었는데 다른 영화를 만들다가 시간이 남아 심심해서 만든 게 '중경삼림'이라고 하더군요. MIT 창업자 니컬러스 니그로폰테는 "창조는 원래 비효율적인 것"이라고 했죠. 공장에서 기계로 생산하는 것과 수십 장의 원고를 썼다 지우고 그림을 찢어던지고 실수투성이 공연을 비교해보면 알 겁니다. 효율의 잣대를 너무 들이대지 마십시오. 실수와 실패는 베테랑에게 붙는 또하나의 훈장입니다. 베테랑의 가슴에 훈장만 보지 말고 얼굴과 몸에 난 상처투성이도 보아야 합니다. 그 실수들의 결과가 베테랑인 겁니다.

실수하는 도전에서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스토리가 많은 기업이 결국 베테랑 기업이 됩니다. 2개의 터널을 만드는 창조적 실수. 잃어버린 3년이 그런 실수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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