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에세이]수십년 묵은 습관 버리기

머니투데이 김영권 머니위크 편집국장 2011.01.06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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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을 위해 버려야 할 것들

근래 수십 년 된 습관 몇 가지를 버렸다.

순서대로 얘기하면 첫째는 담배다. 담배는 재작년 초에 끊었으니 이제 만 2년을 넘겼다. 담배는 지금도 냄새가 좋다. 가끔씩 담배 연기 길게 내뿜으며 먼 하늘 바라보고 싶다. 하지만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을 것 같다. 이로써 나는 25년 피운 담배와 이별한다.

돌이켜 보면 담배는 멋있게 보여서 시작했다. '나도 폼 나게 피워볼까!' 그러다가 결국 골초가 되고 사반세기를 끊지 못해 고생했다. 나는 이제 '멋있게 보이려는 마음' 하나를 접는다. 하긴 요즘에는 담배 피우는 것이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



둘째, 넥타이. 이것도 재작년부터 매지 않는다. 목에 졸라매는 넥타이만큼 바보 같은 물건이 어디 있나. 그 넥타이를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줄곧 맸으니 20년 만에 '목줄'을 푼 셈이다.

그동안 넥타이를 맨 이유는 간단하다. 남들이 다 매니까, 안 매면 눈치 보이니까! 하지만 남들이 다 맨다고 나까지 꼭 매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래서 안 매기로 했다. 안 매니 편하다. 나는 이제 '그냥 남들 따라 하는 습관' 하나를 버린다.



셋째, 안경. 안경은 지난해 봄에 벗었다. 시력이 특별히 좋아진 건 아니고, 수술을 받은 것도 아니다. 다만 원시가 오면서 책을 볼 때는 맨 눈이 더 편해 자꾸 안경을 벗고 쓰고 하다 보니 번거로워졌다. 그러다가 안경을 잃어 버렸는데 그 참에 안경을 벗었다.

대신 먼 것은 덜 보이는 대로 살기로 했다. 가까운 것과 먼 것을 다 보려고 애쓰기 보다는 한쪽을 덜 보기로 했다. 안경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끼었다. 그때는 안경이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제 '멋있게 보이려는 마음'을 접는다. 37년 만에 안경을 벗는다. 안경을 벗고 처음에는 적응이 안돼서 힘들었는데 이제는 별 문제 없다. 안경도 상당 부분 습관의 문제다. 덜 보이는데 익숙해지니 그것이 나의 초점이 됐다. 이젠 안경을 잊고 산다.

넷째, 머리카락. 지난해 여름부터는 깎고 싶을 때만 깎기로 했다. 적당히 머리가 길면 깎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기로 했다. 이런 '반란'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머리를 길러보니 곱슬이 심해 바글바글하다. 나도 이 정도일 줄 몰랐다. 내 머리카락의 고유한 선이 드러나기 전에 항상 단정하게 잘랐으니 나도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주변에서도 한마디씩 건넨다. "동남아 공연 다녀오셨나" 하는 사람도 있고, "영화감독 같다"는 사람도 있다. "불량스럽다"는 사람도 있고, "아침에 세수 안 하셨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그거야 보는 사람 마음이지만 나는 재밌다. 나도 다른 사람 머리보고 내 마음대로 생각하니까 따지고 보면 공평하다. '그냥 남들 따라 하는 습관'을 하나 버리니 사는 게 조금 더 재밌어졌다.

그러고 보니 머리 깎는 습관을 버리는 데는 전조가 있었다. 스프레이 안 쓰기. 머리카락이 머리에 꼼짝 말고 잘 붙어 있으라고 매일 아침 스프레이를 뿌린 지도 20년은 된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왜 그래야 하나' 하는 의문이 번쩍 들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무슨 문제가 있나? 사실 문제는 없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게 문제일 뿐이다. 그렇다면 '남에게 멋있게 보이려는 마음'을 접는다. 머리카락에 자유를 준다. 앞으론 머리에 어떤 인공물질도 사용하지 않으리라.

남에게 잘 보이려고 쓸데없이 나를 옥죄는 습관이 이것뿐이랴. 옷 입는 것만 해도 '내가 편한 옷'보다 '멋있게 보이는 옷'이 항상 먼저다. 내가 옷을 입는 것인지 옷이 나를 입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러니 도대체 나는 나의 삶을 사는 것이냐, 타인의 삶을 사는 것이냐. 나의 삶을 살려면 버려야 할 묵은 습관이 아직도 수두룩하리라.


☞웰빙노트

우리가 80년쯤 산다고 치자.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하루 24시간에 비유한다면, 0시에 태어나서 십대가 되면 새벽 3시, 이십대가 되면 아침 6시, 삼십대가 되면 오전 9시, 중년의 40대가 되면 정오, 장년의 오십대가 되면 오후 3시, 회갑이 있는 육십대가 되면 오후 6시, 자꾸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는 칠십대가 되면 밤 9시, 그리고 그 이후는 자정이 다가오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생의 시계는 지금 몇 시를 향해 가고 있는가? 그대의 생의 창가에 벌써 오후의 햇살이 비치고 있지는 않는지.<주말농부 이계진의 산촌일기>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 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도종환 시, 단풍드는 날>

너는 아직도 네가 평범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고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고 했지. 그러면서 너는 왜 네 영혼 속에 있는 최상의 가치를 죽여 없애려는 거냐? 그렇게 한다면, 네가 겁내는 일이 이루어지고 말 것이다. 사람이 왜 평범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건 세상이 명령하는 대로 오늘은 이것에 따르고 내일은 다른 것에 맞추면서, 세상에 결코 반대하지 않고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 때문이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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