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길은 동강 길이었다. 오랫동안 벼르다가 추석 연휴에 달려간 정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에 차를 세우고 걸었다. 동강 진탄나루에서 문희마을까지 이어지는 4km 강변 샛길, 동강의 심장 같은 곳을 왕복해서 걸었다. 며칠 내린 비로 강에는 물이 가득했다. 하늘에 구름이 피어나고, 땅엔 햇살이 눈부시게 번졌다. 나는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길과 어울려 행복했다.
그 다음 아름다운 길은 변산 마실길. 늦가을 정취 가득한 10월 말, 아들과 함께 그 길을 걸었다. 새벽같이 달려 정오쯤 새만금방조제 홍보관에 차를 댔다. 그곳에서 채석강까지 16km를 타박타박 걸었다. 바다와 갯벌과 해안이 어우러진 황홀한 길이었다. 텅 빈 하늘과 먼 수평선을 바라보니 가슴이 뻥 뚫렸다. 격포 해수욕장 즈음에서 해가 지고 노을이 졌다. 그 노을을 넋 없이 바라보며 아버지와 아들은 붉게 물이 들었다. 나는 잊지 못할 행복한 여행에 감사했다. 행복할 때마다 감사했다.
정선의 강변길과 변산의 바닷길, 그리고 용소골의 산길. 워낙 유명하고 빼어난 길이니 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길들을 한발 한발 걸으며 가슴에 담았다. 하지만 내가 '올해의 길'로 꼽고 싶은 길은 이 길들이 아니다. 나에게는 올해 이보다 더 감동적인 두 개의 길이 있다. 그 길은 내가 직접 발굴하고, 코스를 그린 나만의 길이다. 언제라도 짬을 내면 갈 수 있는 다정한 길이다.
어느 화창한 봄날 '신발주머니회'의 열성 멤버인 후배 기자와 함께 우연찮게 이 길을 발견하고는 너무 좋아서 펄쩍 뛰었다. 남산길과 분위기는 비슷한데 더 조용하고 더 트였다. 그건 그렇고 신발주머니회는 뭐냐고? 그건 회사내 걷기 마니아들의 모임이다. 회칙은 하나다. 신발만 있으면 된다. 회칙 간단하고, 회비도 없으니 회원이 적지 않다. 자칭 머니투데이 최대의 이너서클이다. "정말 최대냐"고 묻지는 마시라.
올해의 길 두번째는 북촌 골목탐험길이다. 전통 한옥의 정수가 보존된 북촌길은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터라 나만의 길이라 하기에 은밀함이 부족하다. 그래서 별도로 개척한 코스가 북촌 탐험길이다. 이 길은 정독도서관에서 시작해 삼청동 뒷동네 언덕길을 타고 북촌으로 올라가 골목골목을 이리저리 휘젓다가 가회동 쪽으로 빠져나온다. 여기까지가 1부다. 2부는 가회동에서 원서동 쪽으로 방향을 틀어 중앙고 주변 골목을 누빈 다음 창덕궁 돌담길을 만나 그 길을 타고 계동으로 빠져 나온다. 이 코스 역시 나와 신발주머니회 열성 멤버 둘이서 올해 신나게 누볐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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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들이 있어 나는 올해 행복했다. 2010년 나는 그 길 위에서 시름을 덜어 내고 행복을 더했다.
☞웰빙노트 마음을 모으는 숨 쉬기로, 마음과 함께 내딛는 걸음으로, 그리고 마음을 일으켜 머무르는 현재 이 순간으로 모든 것이 채워진다. <틱낫한, 우리가 머무는 세상> 인생이란 죽을 힘을 다해 쫓아간다면 결국엔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가기 마련이다. 강도를 쫓듯이 시간을 쫓는다면, 시간 역시 강도처럼 교묘히 빠져나갈 것이다.<엘리자베스 길버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스승이 따로 없이 살아 온 나는 오로지 '길'과 '책'에서 세상의 이치를 배웠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나의 스승은 자연이고 책이었다. <신정일, 느리게 걷는 사람> 내일을 생각하지 말고 자유롭게 흘러라. 느긋한 마음으로 혼돈을 즐겨라. 이것이야 말로 인간이 되는 법이다. 그대가 변화를 받아들이면, 매순간 그대에게 새로운 세계, 새로운 삶이 찾아올 것이다. 그대는 매순간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오쇼 라즈니쉬, 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