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에세이]My Way 2010

머니투데이 김영권 머니위크 편집국장 2010.12.16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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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시름을 덜고 행복을 더하다

올해도 열심히 걸었다. 틈만 나면 걸었다. 평일은 회사 근처에서, 휴일은 동네에서, 휴가 때는 산이나 강이나 바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은 동강 길이었다. 오랫동안 벼르다가 추석 연휴에 달려간 정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에 차를 세우고 걸었다. 동강 진탄나루에서 문희마을까지 이어지는 4km 강변 샛길, 동강의 심장 같은 곳을 왕복해서 걸었다. 며칠 내린 비로 강에는 물이 가득했다. 하늘에 구름이 피어나고, 땅엔 햇살이 눈부시게 번졌다. 나는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길과 어울려 행복했다.

그 다음 아름다운 길은 변산 마실길. 늦가을 정취 가득한 10월 말, 아들과 함께 그 길을 걸었다. 새벽같이 달려 정오쯤 새만금방조제 홍보관에 차를 댔다. 그곳에서 채석강까지 16km를 타박타박 걸었다. 바다와 갯벌과 해안이 어우러진 황홀한 길이었다. 텅 빈 하늘과 먼 수평선을 바라보니 가슴이 뻥 뚫렸다. 격포 해수욕장 즈음에서 해가 지고 노을이 졌다. 그 노을을 넋 없이 바라보며 아버지와 아들은 붉게 물이 들었다. 나는 잊지 못할 행복한 여행에 감사했다. 행복할 때마다 감사했다.



그 다음 아름다운 길은 삼척 덕풍계곡 용소골. 여름 휴가때 찾아간 응봉산 북서쪽 골짜기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만나는 신령한 곳, 깎아지른 협곡 사잇길을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대자연이 연출하는 스펙타클에 경탄했다. 그날 밤, 수직으로 도열한 산봉우리에 갇힌 하늘 호수에 무수한 별무리가 돋아났다. 나는 넋을 잃었다. 지구에서 은하를 바라보는 것인지, 은하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것인지 헷갈렸다. 나와 은하는 그날 같은 우주에서 하나로 어울렸으므로 어느 쪽이든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

정선의 강변길과 변산의 바닷길, 그리고 용소골의 산길. 워낙 유명하고 빼어난 길이니 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길들을 한발 한발 걸으며 가슴에 담았다. 하지만 내가 '올해의 길'로 꼽고 싶은 길은 이 길들이 아니다. 나에게는 올해 이보다 더 감동적인 두 개의 길이 있다. 그 길은 내가 직접 발굴하고, 코스를 그린 나만의 길이다. 언제라도 짬을 내면 갈 수 있는 다정한 길이다.



첫번째는 인왕산 허릿길. 이 길은 청와대에서 세검정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즉 창의문에서 시작한다. 창의문 오른 쪽은 서울성곽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길이다. 왼쪽은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다. 바로 여기에서 출발해 인왕산을 끼고 걷는 호젓한 오솔길이 나에게는 '올해의 길'이다. 그 길을 따라 중간에 사직공원 쪽으로 빠지거나 조금 더 가서 성곽을 타고 서울시 교육청 쪽으로 내려오면 된다.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고 창의문에 내려 걷기 시작하면 풀코스 1시간이면 충분하다.

어느 화창한 봄날 '신발주머니회'의 열성 멤버인 후배 기자와 함께 우연찮게 이 길을 발견하고는 너무 좋아서 펄쩍 뛰었다. 남산길과 분위기는 비슷한데 더 조용하고 더 트였다. 그건 그렇고 신발주머니회는 뭐냐고? 그건 회사내 걷기 마니아들의 모임이다. 회칙은 하나다. 신발만 있으면 된다. 회칙 간단하고, 회비도 없으니 회원이 적지 않다. 자칭 머니투데이 최대의 이너서클이다. "정말 최대냐"고 묻지는 마시라.

올해의 길 두번째는 북촌 골목탐험길이다. 전통 한옥의 정수가 보존된 북촌길은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터라 나만의 길이라 하기에 은밀함이 부족하다. 그래서 별도로 개척한 코스가 북촌 탐험길이다. 이 길은 정독도서관에서 시작해 삼청동 뒷동네 언덕길을 타고 북촌으로 올라가 골목골목을 이리저리 휘젓다가 가회동 쪽으로 빠져나온다. 여기까지가 1부다. 2부는 가회동에서 원서동 쪽으로 방향을 틀어 중앙고 주변 골목을 누빈 다음 창덕궁 돌담길을 만나 그 길을 타고 계동으로 빠져 나온다. 이 코스 역시 나와 신발주머니회 열성 멤버 둘이서 올해 신나게 누볐던 길이다.


이 길들이 있어 나는 올해 행복했다. 2010년 나는 그 길 위에서 시름을 덜어 내고 행복을 더했다.

  ☞웰빙노트

마음을 모으는 숨 쉬기로, 마음과 함께 내딛는 걸음으로, 그리고 마음을 일으켜 머무르는 현재 이 순간으로 모든 것이 채워진다. <틱낫한, 우리가 머무는 세상>

인생이란 죽을 힘을 다해 쫓아간다면 결국엔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가기 마련이다. 강도를 쫓듯이 시간을 쫓는다면, 시간 역시 강도처럼 교묘히 빠져나갈 것이다.<엘리자베스 길버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스승이 따로 없이 살아 온 나는 오로지 '길'과 '책'에서 세상의 이치를 배웠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나의 스승은 자연이고 책이었다. <신정일, 느리게 걷는 사람>

내일을 생각하지 말고 자유롭게 흘러라. 느긋한 마음으로 혼돈을 즐겨라. 이것이야 말로 인간이 되는 법이다. 그대가 변화를 받아들이면, 매순간 그대에게 새로운 세계, 새로운 삶이 찾아올 것이다. 그대는 매순간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오쇼 라즈니쉬,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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