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쌓기' 없앴더니…사교육비 진짜 줄어들었죠?"

머니투데이 최은혜 기자 2010.12.10 08:29
글자크기

[이주호 교과부 장관 좌담회]'교육정책과 시장, 어디로 가고 있나'

지난해 11월 머니투데이는 이주호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과 증권사 교육담당 애널리스트들의 만남을 주선했다. 앞으로 사교육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정부와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애널리스트들 사이의 인식 차를 좁혀보기 위해서였다. 생소한 만남이었기에 서로 두려움과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분석과 전망, 논리에 있어서는 서로 자신이 있는 터라 간담회 시작 10분도 지나지 않아 대화는 깊이 있게 진행됐다. 간담회 말미에 이 차관은 시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고, 애널리스트들은 정부 정책에 대해 색안경을 좀 벗게 됐다며 서로 의미를 부여했다.

1년여가 지나 머니투데이는 다시 자리를 마련했다. 작년에 가졌던 각자의 시각들이 서로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형식적으로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이 차관이 장관이 됐고 간담회 장소가 머니투데이 편집국에서 장관실로 바뀐 것 외에는.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좀 더 깊은 공감이 오갔다. 이 장관은 사교육비가 줄어들고 있다는 최근 통계와 특목고 경쟁률 하락을 언급하며 학력 중심의 교육과 창의력 중심의 교육이 서로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고 애널리스트들도 큰 틀에서는 공감을 표시했다. 다만 이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금씩 견해가 달랐다. 이 장관은 "1년 뒤에 다시 한 번 만나 토론해 보자"고 선뜻 제안했다.



◆간담회 참석자 =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강희영(하나대투증권), 김미연(유진투자증권), 유정현(대우증권), 이다솔(한화증권) ◆사회 = 최중혁 머니투데이 기자, 정리 = 최은혜 머니투데이 기자

▶사회 = 현 정권의 임기가 절반 이상 지났습니다. 장관께서는 정부가 공언한 사교육비 절감 부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스펙쌓기' 없앴더니…사교육비 진짜 줄어들었죠?"


▶이 장관 = 전반적으로 사교육비가 줄고 있다는 건 여러 지표들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올해 3월부터 학원매출액이 전년동기대비 감소 추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올 3분기 가계 내 학생학원교육비도 4년만에 처음으로 감소했어요. 정부에서 추진한 공교육 강화 정책이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엔 더 뚜렷해질 거라고 보고요.

고교 입학전형에 자기주도학습 전형을 도입해 인증시험이나 경시대회 성적이 반영되지 않도록 한 것이 가장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대입에서도 계속해서 입학사정관제를 정착시키면 사교육시장이 축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스펙쌓기' 없앴더니…사교육비 진짜 줄어들었죠?"
▶이다솔 = 정부가 기본적으로 사교육업체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공교육이 제 역할을 못하는 건데 책임을 사교육에만 돌리는 건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이 장관 = 사교육이라고 무조건 배척하는 건 아닙니다. 학생들 수준에 맞는 맞춤형 교육으로 학습능력 향상에 도움을 주거나 예술·체육 등 공교육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방향의 사교육은 긍정적으로 봅니다. 공교육과 상생할 수 있는 사교육인지가 중요한 거죠. 정부의 사교육 시장 관련 정책은 무조건적인 '규제'가 아닌 사교육 시장의 건전화·투명화를 목표로 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학원법도 개정하려고 합니다. 학원비 정보공개, 학원교습비 영수증 발급 의무화 같은 게 주요 내용입니다. 또 민간부문의 우수한 강사·프로그램이 방과후학교에 활발히 참여할 수 있게 하고 EBS 수능강의에 스타강사를 영입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사교육시장의 우수한 자원은 활용하도록 해야죠.

"'스펙쌓기' 없앴더니…사교육비 진짜 줄어들었죠?"
▶김미연 = 이번 정부가 출범할 때 획일화된 교육에서 벗어나 수월성을 인정하는 교육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외고 입시 제도의 개편 등 억제 정책을 펴는 건 반대 방향 아닌가요.

▶이 장관 = 외고 입시를 바꾼 건 암기 위주의 지식교육, 사교육에 의한 '스펙' 쌓기를 없애기 위해서였습니다. 외고와 국제고는 영어, 과고는 수학·과학 내신 성적을 반영하되 독서활동과 봉사·체험활동을 중심으로 평가하게 한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이런 게 결국 학생 개개인의 창의성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수월성이냐 평준화냐' 하는 식의 이분법은 안 된다고 봅니다. 다양한 학생들이 서로 어우러지는 가운데 모두를 위한 창의성 교육을 하는 게 바로 수월성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학생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고 말이죠.

"'스펙쌓기' 없앴더니…사교육비 진짜 줄어들었죠?"
▶강희영 = 최근 외고·자율고의 경쟁률이 매우 저조하게 나타났습니다. 자율고의 경우 올해 일부 미달되는 학교도 있었고요. 교육 수요자에게 자율고라는 상품이 매력이 없었던 것 아닌가 합니다.

▶이 장관 = 학교가 다양해지면 한 쪽으로만 학생이 몰리는 현상도 사라지는 게 당연합니다. 경쟁률의 균등화가 곧 평준화를 의미하는 건 아니지요. 자율성·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정부의 기조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고교 다양화 정책도 앞으로 무리 없이 실현될 걸로 보입니다.

▶강희영 = 입시에서는 계속해서 지필고사를 지양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요. 반면 초·중·고교에서 학력평가는 여전히 치르고 있어요.

▶이 장관 = 학력평가는 학생이 아니라 학교를 평가하는 시험입니다. 학생들의 기초학력에 대해 학교가 어느 정도 책임을 지자는 거죠. 시험이라고 해서 무조건 없애는 게 아니라 창의력 교육과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게 중요하겠죠.

▶이다솔 = 제 동생이 이번에 수능 시험을 치른 수험생입니다. 옆에서 살펴보니 올해 수능에서는 대교협의 활동이 눈에 띄더군요. 가채점 결과 분석도 하고 입시설명회를 열기도 하는 등 변화가 엿보였습니다. 상당히 새로운 시도던데요.

▶이 장관 = 최근 대교협에서 소위 '배치표'를 만들어 배포한다고 해서 논란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배치표가 아닌 '상담 프로그램'이에요. 학교 현장에서 진학 담당 교사들이 학생 상담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사교육업체의 배치표는 대학과 학과를 서열화하는 형태지만 대교협의 상담 프로그램은 조금 달라요. 학생의 점수를 입력하면 그 학생이 대학에 지원할 때 유·불리를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주는 방식입니다.

"'스펙쌓기' 없앴더니…사교육비 진짜 줄어들었죠?"
▶유정현 = 하지만 일부에선 사교육업체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비교했을 때 아무래도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대교협이 꼭 그런 것까지 해야 하느냐는 얘기도 있어요.

▶이 장관 = 사실 대입과 관련된 정보는 누구보다 대학들이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정보가 학생·학부모에게 잘 전달되지 않으니 그 틈새를 사교육이 파고든 거죠. 대교협이 대학과 학생·학부모를 연결해준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보 제공 활동을 사교육업체와의 '경쟁'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강희영 = 올해는 수능-EBS 연계율에 대한 관심도 상당히 높았습니다. 수능시험과 EBS의 연계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지요. EBS 연계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이 장관 = EBS 연계 정책은 EBS 수능 강의가 공교육을 보완하고 사교육을 대체하게끔 하기 위한 겁니다. 현재 대입에서 수능 시험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니까 수험생들은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 사교육을 받고 있죠. 현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정책이에요. 올해 수능의 EBS 연계 문항에 대해선 평가원과 EBS가 공동으로 분석해 보완책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사회 = 올해 수능이 어려웠다는 학생들 불평이 많습니다. 수능 난이도 조절은 예술에 가까운 일이란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 장관 = 시험의 난이도를 적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전체 수험생의 평균과 표준편차를 활용해 점수를 산출하는 '표준점수' 체제에서는 시험이 쉽다고 점수가 높게 나오고 어려운 시험이라고 해서 점수가 낮은 것이 아닙니다.

▶유정현 = 교과부가 수능을 1년에 두 번 실시한다는 내용의 수능 체제 개편안을 준비 중인데요. 수험생의 부담이 커지고 혼란이 생기지 않을까요.

▶이 장관 = 한 번의 수능으로 인생이 결정된다는 게 수험생들에겐 큰 부담입니다. 질병이나 사고 때문에 시험에 응시하지 못했거나 시험 당일 실수가 생긴 경우에도 다시 시험을 보려면 다음해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수능을 두 번 치르는 게 공급자 입장에서 보면 시험 관리 비용이 늘어나는 등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도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출제 방식은 동일한 출제진이 두 번의 시험 모두 출제하는 방법, 두 그룹의 출제진을 운영하되 핵심인력은 양쪽에 모두 참여하도록 하는 방법 등 다양한 방안을 연구 중입니다.

▶김미연 = 정부에서 입학사정관제를 확대하고 있는데 공정성이나 입학사정관의 자질 등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개선할 계획이신지요.

▶이 장관 = 입학사정관 제도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몇 가지 과제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필요한 시스템이기에 여러 가지 방법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입학사정관 자격제도 같은 거죠. 현재는 교과부와 대교협이 입학사정관 전문 양성·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교협 차원에서도 전임사정관에게 연간 120시간의 교육을 받도록 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공정성 문제에도 각별히 신경을 쓸 겁니다. 현행 입학사정관 전형도 다수의 사정관이 한 학생을 평가하고 평가점수에 차이가 있는 경우 재검증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사정관이 자의적 판단으로 합격·불합격을 결정할 수 없는 거죠. 사정관 윤리 강령 운영, 이의신청 절차와 감사절차 같은 제도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입학사정관제 비리 문제에는 엄정히 대처하려고 합니다. 내년 1월까지 대교협에서 '현장점검 및 컨설팅'이란 걸 하는데 각 대학의 입학사정관제 운영 실태를 점검하는 거예요. 비리 의혹이 제기되면 교과부 차원에서 철저히 감사를 할 생각입니다.

"'스펙쌓기' 없앴더니…사교육비 진짜 줄어들었죠?"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