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협, 나티시스 1.2조 증빙 두고 격론

더벨 박준식 기자 2010.11.1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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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M&A 뒷얘기… 승부 바뀔만한 단초, 현대그룹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더벨|이 기사는 11월18일(15:04)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현대건설 (35,600원 ▲350 +0.99%)의 옛 채권단으로 구성된 주주협의회와 메릴린치 등 매각 자문사들이 지난 16일 새벽까지 현대그룹이 제시한 나티시스(Natixis) 은행의 1조2000억원 규모 자금증빙을 두고 격론을 벌였다.



이 증빙의 인정 여부가 우선협상자 선정 결과를 뒤바꿀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이기 때문에 이를 두고 매각 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나뉘었다는 설명이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경영권 지분 33.4%에 대한 인수 가격으로 총 5조5100억 원을 제시했고 이 중 1조2000억 원의 증빙을 나티시스 은행의 예금 잔고로 대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예금의 증빙 적격성 여부를 두고 주주협 관계자와 자문사 실무진 등 30여 명 사이의 의견이 상이하게 엇갈렸다.



매각 측은 가격 제안서를 개봉하고서 처음 자금력이 달릴 것으로 예상됐던 현대그룹이 5조5100억 원을 제시한 것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당초 3000억 원 수준으로 평가되던 나티시스의 지원 규모가 1조2000억 원으로 크게 늘어난 것에 더 당황했다는 전언이다.

특히 나티시스의 증빙으로 인해 5조1000억 원의 가격을 제시한 현대차는 비가격부문에서 우위를 보였지만 가격 면에서의 차이로 인해 총점에서 패하게 된 상황이었다.

문제는 현대상선 (15,800원 ▲490 +3.20%) 프랑스 법인 소유의 잔고로 증빙된 이 자금의 출처를 두고 매각 측 위원들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나타났다.


현대상선의 해외 거점인 프랑스 법인이 1조 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예금은 조건부 날인증서(Escrow) 형태로 보관돼 있었고 특별한 계약조건을 만족할 때에만 인출이 가능한 상태였다는 설명이다. 현대상선의 예금을 조건부로 풀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출처를 의심케 했다.

매각 측은 새벽 4시까지 격론을 벌인 끝에 자금 출처를 조사하지 않고 증빙을 인정하기로 했다. 은행에 잔고 증명서로 제출된 자금을 매각 측이 굳이 추궁하는 게 적합하지 않다는 외환은행 측의 주장이 협의회 내에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 논쟁은 매각 측의 평가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단초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상당한 후폭풍의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먼저 이 예금의 성격이 현대상선의 실제 예치금이라면 더 이상의 문제가 없다. 하지만 현대상선이 100% 출자한 프랑스 법인은 총자산이 지난해 기준 215만8000 유로(약 25억 원)인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하다. 현대상선 본사가 담보를 제공하거나 지급보증을 하지 않는 한 1조 원 이상의 거액을 조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기에 지난 상반기까지 현금 유동성이 부족해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 약정(MOU)을 맺어야 했던 현대그룹이 해외 법인 명의로 1조 원이 넘는 자금을 갖고 있었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이 자금이 이번 인수전을 계기로 긴급히 조달한 것이라는 데 의견이 쏠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만약 1조2000억 원이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나티시스의 지원액이라면 그 성격에 관심이 집중된다. 분류는 크게 2가지다. 담보대출이거나 M&A 차입인수(LBO) 금융일 가능성이다. 담보대출의 경우 적절한 담보가 제공됐고 그에 따른 자금증빙이 이뤄졌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 자금이 에스크로에 묶여있고 담보물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현대그룹은 나티시스를 접촉하기 이전에 이번 인수전을 대비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자산의 유동화를 진행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동양종금증권 등에 7000억 원 가량의 담보대출을 의뢰하면서 연지동 사옥(2000억 원)과 현대상선 해외물류센터(2500억 원), 오너 일가 지분(3000억 원) 등을 제안한 상황이다.

나티시스가 담보대출로 1조2000억 원을 차용해 주기로 했다면 목적물이 특정되거나 국내외 공시 등을 통해 내역이 드러나야 한다. 하지만 프랑스 및 국내 확인 결과 이런 내역은 발견되지 않았고 현대그룹도 이를 밝히지 않고 있다. 특히 현대그룹에 동양종금에 제공할 담보 외에 1조2000억 원을 차용할 담보가 남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상황을 종합해 보면 차입 인수금융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다. 나티시스와 현대그룹이 계약을 맺고 우선협상자 선정 이후 취득할 현대건설 지분을 담보로 자금증빙을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티시스는 사모펀드 KKR의 오비(OB)맥주 차입인수와 하이트홀딩스의 진로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에 이 같은 구조로 제안을 했던 금융사라는 게 정황 추론의 사실 가능성을 높인다.

만약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지분을 일부 내어주기로 하고 자금증빙을 얻었을 경우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 경우 매각 측이 당초 제시한 차입인수 구조 금지와 자회사 매각 2년 금지 등 기존 입찰 가이드라인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현대그룹과 나티시스의 계약 내용에 이 내용이 포함돼 있다면 큰 폭의 감점이나 실격 사유가 될 수도 있다.

나티시스와 현대그룹이 계약을 맺고 단기 콜 자금을 받아 증빙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현대건설 지분을 레버리지로 삼는 것은 현대그룹 입장에서도 큰 위험이기 때문에 당장 차입인수로 돈을 끌어들이진 않았을 거란 예상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단기 콜 자금이 증빙 효력을 갖는지는 의문이다. 매각 측에서 증빙 미달로 배점에서 감점해야 할 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을 가격 면의 우위를 통해 근소한 차이로 제쳤다는 게 매각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현대그룹의 나티시스 자금증빙 출처를 매각 측이 규명하지 않은 것에 대해 주주협 내부에서도 우려 섞인 시각이 나오고 있다.

주주협 관계자는 "사실상 이 (나티시스) 문제는 우선협상자 선정 점수를 뒤집을 사안이었지만 현대그룹의 제안가격이 4100억 원이나 높았기 때문에 논란이 있었다"며 현금 잔고라는 사실만으로 이를 그대로 인정하자고 했던 외환은행과 메릴린치의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에 일부 관계자들은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하종선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은 18일 "나티시스 은행 잔금 금액은 맞다.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며 "주식매매 계약서(SPA) 사인 이후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금강산 관광 12주년을 기념해 현정은 회장, 그룹 사장단 및 임원과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에 있는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의 선영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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