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 현정은 회장, 벼랑 끝 전술 통했다

머니투데이 기성훈 기자 2010.11.1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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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성+경영권 안정'의 일석이조 효과…일각에선 인수자금 마련에 우려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사진)의 '벼랑 끝 전술'이 통했다. 현대그룹의 모태이자 고 정몽헌 회장(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남편)이 지키려고 애썼던 현대건설을 9년 만에 다시 품에 안게 됐다. 이날 현대그룹의 한 임원은 "현 회장이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현 회장 뚝심 통했다
'뚝심' 현정은 회장, 벼랑 끝 전술 통했다


"마지막 힘을 모아 보자. 그리고 우리도 '미시온 쿰플리다(임무완수)'를 외쳐 보자." 지난달 21일 취임 7주년을 맞아 현 회장이 전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현대건설 인수에 대한 강한 인수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그로부터 약 25일 뒤, 현 회장의 바람은 '거짓말'처럼 현실이 됐다. 현대그룹 스스로 밝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이 이긴 것이다.



현대그룹은 지난 2006년 꾸준히 현대건설 인수의지를 밝히고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현대상선 (15,080원 ▲230 +1.55%) 등 주력 계열사들은 인수자금을 쌓았고 그룹 전략기획본부를 중심으로 각 계열사들이 힘을 합쳐 인수 전략을 철저하게 세웠다. 현 회장도 매년 신년사에서 현대건설 인수를 최우선 과제로 꼽아왔다. 현대건설이 현대그룹의 모태이자 고 정몽헌 회장의 분신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 등 대북 사업이 중단된 상황에서 재무구조개선 약정 대상으로 선정되는 등 대내외 상황은 현대그룹을 외면하는 듯 했다. 게다가 시숙인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이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엎친 데 덮친 격'인 상황이 연출됐다. 현 회장도 취임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는 것이 그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현 회장은 담담했다. 그룹 임직원들을 다독이는 것과 동시에 금융권의 손에서 현대건설을 되찾기 위해 채권단과의 법적 공방에서도 판정승을 거뒀다. 현대건설 인수전에서는 '명분 싸움'에서도 압승을 거뒀다. 현 회장은 인수전이 시작되면서 방송과 신문에 정통성을 강조하는 광고를 집중적으로 선보이면서 '명분'을 내세웠다.

상대적 열세였던 자금력 확보를 위해 각 계열사를 통한 회사채와 기업어음, 자산 매각과 함께 재무적 투자자 영입 등을 통해 우려를 불식시켰다. 특히 막판 전략적 투자자였던 독일 M+W가 불참키로 하자 동양종금증권과 프랑스 나르시스 은행을 급히 재무적 투자자로 유치하는 등 발 빠르게 대처했다.

◇정통성에 경영권 안정까지 확보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로 정통성 확보와 함께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잠재우게 됐다.


이미 현 회장은 2003년 취임이후 두 번의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막내 동생인 정상영 명예회장이 이끌고 있는 KCC는 2003~2004년 현정은 회장에게서 정씨의 현대를 되찾아오겠다며 지분 전쟁을 치른 바 있다. 현대중공업도 2006년 현대상선의 주식을 집중 매입하면서 현대그룹과 갈등을 빚은 전례가 있다.

현 회장은 사활을 걸고 현대건설 인수전에 나서는 이유 중 하나가 현대건설이 가진 현대상선 지분 8.3%(우선주 포함) 때문이었다.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이 범현대가로 넘어간다면 현대그룹으로선 그룹 경영권 확보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현대그룹 측은 현재 현대상선 지분을 총 40.24%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현대건설을 인수하면서 현대건설 지분을 추가 확보하면 총 지분율은 48.5%로 늘어나게 됐다. 전략적 우호관계의 외국계 투자사들이 보유한 지분까지 포함할 경우 50%가 넘는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현대중공업그룹 측은 총 25.4%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현대중공업 측도 "이번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를 통해 경영권 분쟁 논란도 종식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 7년 동안 현 회장이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그룹을 이끌어왔지만 이번 인수전 결과에 따라 자칫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서 "현대건설 인수와 함께 현 회장은 안정된 경영권을 확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는 경영에 전념
지난 2003년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의 부재 속에 회장에 취임한 현 회장은 수많은 바람과 파도 속에 '현대호'를 지켜냈다. 왕자의 난, 대북사업 풍파, 유동성 위기로 엉망이 된 조직을 추스리기도 힘든 상황에서 많은 시련을 이겨냈다.

하지만 현대건설을 인수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재계 21위인 현대그룹은 재도약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이미 현 회장은 현재의 해운·인프라·증권업 위주에서 △글로벌 인프라 △통합물류 △종합금융 △공간이동 △관광유통교육 등의 5개 사업부문으로 확대하는 '비전 2020'을 제시한 상태다.

특히 독점사업권을 가지고 있는 대북사업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현대아산은 북한의 전력, 통신, 철도, 비행장 등 대형 SOC사업을 포함한 7대 남북경협사업권을 가지고 있다. 남북 관계가 정상화된다면 현대건설은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단 현대건설 인수를 최종 마무리 짓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현대그룹이 과연 인수자금을 계획대로 조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현대그룹은 이번 인수전에서 최대 5조5000억원을 베팅한 것으로 추정된다.

각 계열사를 통해 자금을 총 동원한데다 FI들과의 계약 관계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대증권 등 노조의 반대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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