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커지는 거품불안, 투자고민"

머니투데이 김태은 기자 2010.11.08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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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유동성에 부작용 우려..2012년 경기 하기 대비, 자산 매각 서두르는 기업도

대기업들이 물가 성장 등 경제 거시지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근 긴장감마저 엿보인다. 지표 속에 숨어있는 불안정성의 불씨를 찾아내 어떻게 대처할지를 지금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씨가 밖으로 터져 나온 뒤 대응하면 이미 늦다.

거시지표에 대해 대기업과 정부의 시각차가 있다. 경제성장률 전망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정부는 올 하반기 4.5%대를 기록한데 이어 내년에도 4%대의 견조한 성장을 보일 것이라며 비교적 낙관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의 내년 전망치는 모두 3%대이다. 정부는 내년 '견조 성장'을, 대기업들은 '경기 둔화'를 예상하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들의 눈은 '버블'로 쏠려있다. 4%대의 분홍빛 거시지표가 시중에 풀려있는 돈의 힘, 즉 유동성에 떠받쳐져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과잉 유동성으로 인해 자산시장의 거품(버블)이 커질 경우 오히려 2012년부터 버블 붕괴의 후유증을 겪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회복과 수출호조로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대기업들이 투자에 주저하고 심지어 자산 매각을 고려하는 이유다.

"내년 보다 2년 후 경기하강에 대비해야 한다."



A 기업은 최근 5년 단위로 세우는 중기 경영계획에 오는 2012년에 경기가 꺾일 수 있다는 점을 가정해 사업계획을 짰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글로벌 경기가 이중침체(더블딥)에 빠질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내다봤지만 잠시 경기가 하강국면을 겪고 재상승하는 'N'자형을 그릴 것으로 전망했다고 한다. 이를 감안해 투자에도 보다 신중을 기할 방침이다.

B 기업은 매각을 염두에 두고 있는 일부 계열사의 처리를 내년까지 서두른다는 계획이다. 현재 자산 가격이 버블 조짐을 보이고 있을 때 매각을 완료하는 것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C 기업은 회사를 방문하는 투자자들이 보다 적극적인 투자를 요청하고 있지만 선뜻 호응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남부럽지 않은 실적 성장세를 달성했지만 투자 규모를 확대해 나가는 것은 부정적이다. 경기 불확실성을 고려해 건전한 재무구조를 가져가는 것이 더 중요한 시기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자산시장 버블에 우려가 커지고 있는 셈이다. 이미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로 인해 상품시장까지 들썩이며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는 내년 이후 사실상 총선과 대통령 선거 등 선거 국면으로 들어간다는 점도 부담이다. '선거 분위기'에서 섣불리 긴축 정책을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내 수출기업에겐 순풍이었던 엔화 절상 추세도 최근 멈춰 선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버블이 붕괴돼 경기가 급속히 얼어붙게 되는 비관적 시나리오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게 기업들의 최근 움직임이다.

주식시장이 코스피 지수 2000선 돌파를 바라보는 등 랠리를 계속하고 있고, 미국 정부가 추가로 양적 완화 조치(달러 공급 통한 경기 부양)를 내놓은 것도 '버블 이후'에 대한 기업들의 고민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 대기업의 경영진은 "금리 인상 시점이 늦어지면서 물가 등 거시지표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며 "내년부터는 선거 분위기가 시작되면서 긴축으로 돌아서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 어느 때보다 거시 지표를 중요하게 봐야 할 시기"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대기업의 경영진은 "투자확대로 성장을 통한 주주가치 증대도 중요하지만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외부 환경의 급변에도 충격을 덜 받도록 유지해 나가는 것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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