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도는 옷의 인생

머니투데이 아이스타일24 제공 2010.11.0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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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이 경기도에 위치한 최대 규모 아울렛에서 B사의 가방을 신제품이라며 보여줬다. 어라, 내가 공항 면세점에서 산 가방이랑 똑같은 게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얼마에 샀냐고 물었더니, 내가 산 것보다 무려 3배는 더 주고 샀다고 했다. 아울렛 맞니? 충동구매로 지른 C브랜드의 체크 셔츠. 얼마 후, 할인매장에서 70% 세일에 판매되는 걸 발견한 순간 배신감에 휩싸였다. 정가 다 주고 산 게 후회스러울 따름이다. 같은 옷인데도 가격이 천차만별 틀린 이유는 무엇일까?

돌고 도는 옷의 인생


유독 짧은 패션



S/S과 F/W시즌에 걸쳐 일 년에 두 차례 신상품을 내놓는 패션은 그 생명력이 길어야 6개월, 보통은 3개월 정도로 상당히 짧다. 매번 신상품을 보여줘야 하는 의무가 있는 패션은 한번이라도 똑같은 제품을 선보였다가는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하기 쉽다. 물론, 잘 나가는 디자인의 옷들은 스테디셀러라는 이름으로 선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단추하나, 지퍼하나라도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게 패션계의 보이지 않는 원칙이다.

일반적으로 옷은 브랜드 제품과 시장 제품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브랜드 제품은 일관되게 적용되는 브랜드 성격이 디자인에 녹아있어 상표만 봐도 어떤 스타일의 옷일지 알 수 있다. 브랜드 제품은 계절이 바꾸기 1-2달 전, 시즌을 맞이하기 전에 신상품이 출시된다.



예를 들면, 가을이 오기 전 8월에 재킷이나 트렌치코트를 선보이거나 한창 추운 1월에 봄 상품을 출시하는 경우다. 브랜드에서 신상품이 출시되면, 자신들이 운영하는 백화점 매장이나 플래그십 스토어에 가장 먼저 선보인다. 디자이너와 MD가 선정한 메인 제품과 기획 상품 중에서 소비자의 반응에 따라 물량을 공급한다. 옷에도 성적순이 존재한다. 잘 팔리지 않는 옷은 생산을 중단하고, 세일기간에 맞춰 20~50% 가량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된다.
그래도 안 팔리는 옷들은 브랜드가 운영하는 문정동이나 구로 등에 위치한 상설할인매장이나 인터넷 쇼핑몰로 옮겨진다. 이때까지는 브랜드가 직접 관리한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안 나가는 옷들은 대량 사입자들에게 팔려지고, 80~90% 이상이라는 파격적인 할인가로 다양한 브랜드 옷을 파는 대형 아울렛으로 옮겨가는 신세가 된다. 브랜드가 대량사입자에게 물건을 넘긴 순간, 가격은 그야말로 중구난방이 돼버린다.

사입자들 마음대로 가격이 달라진다. 불과 얼마 안돼는 시간인데, 이월상품으로 불려지는 옷들이 싸게 팔려지는 건 ‘보관’에 따른 문제 때문이다. 옷을 생산하는 기본적인 물량이 있는데, 이게 물건을 판매하는 기간이 상당히 짧은 나머지 소비자의 반응에 따라 순식간에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옷을 판매하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새로운 신상품은 하루가 멀다하고 들어온다. 보관하는 창고임대 비용도 만만치 않다보니, 대량판매로 이어지게 된다. 처음 원가와 90%이상 할인의 가격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신상품과 이월상품, 스테디 제품이냐 아니냐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약간의 시간적 차이만 빼면 가격의 갭은 상당하다.
보세 옷이라고 불리는 시장 제품은 그에 비해 단순한 편이다. 생산자가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면 도매상이 대량으로 물건을 사들인다. (이때 도매상이 공장을 함께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도매상에서 옷가게나 인터넷 쇼핑몰 같은 소매상이 물건을 사들이고, 이것을 소비자가 구입하게 되는 것. 시장제품은 소매상에 따라 가격이 틀려진다. 같은 옷이 압구정과 지방의 차이가 나는 건, 사입자의 계산에 따라서다. 이게 일반적인 국내에서 생산하는 옷의 생성과정이었다. 하지만, 외국의 패스트 패션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일대 혼란이 시작되었다.

패스트 패션의 영향으로 달라지는 패션계의 지각변동


돌고 도는 옷의 인생
공식적으로 일 년에 두 번 신상품을 선보이면 됐던 브랜드들이 이제는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H&M, 자라, 포에버 21같은 패스트 패션의 등살에 자구책을 마련하느라 정신없다. 트렌드에 민감하면서도 품질도 어엿한 이들에게 소비자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가격도 합리적이다.

이 같은 시스템은 우리나라에선 쉽게 접근하기 힘든 생산방식이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원단에 있다. 옷을 만들 때 기본이 되는 원단은 대량으로 구입하느냐, 소량으로 구입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가격차이가 있다. 게다가 소량으로는 취급을 안 하는 원단회사들이 대부분이라, 필요한 양이 적어도 어쩔 수 없이 대량으로 원단을 구입해야 한다. 하지만, 패스트 패션은 그 부분의 거품을 싹 걷었다. 다품종 생산이 원칙인 패스트 패션은 구입한 원단만큼 디자인을 하고, 판매되면 리오더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그때 사지 않으면 다시는 구입할 수 없다. 노동 착취와 환경오염처럼 패스트 패션에도 분명 문제가 없진 않지만, 효율성의 면으로만 보면 나쁘다고만 할 순 없다. 소비자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패스트 패션에 열광하자, 국내 패션브랜드들도 이 같은 시스템을 적용하려고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좀처럼 쉽지 않는 모양이다.

이유는 바로 그 놈의 유통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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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품에는 고유의 유통과정이 존재한다. 얼마 전, 금배추라는 수식어까지 붙은 배추파동만 해도 그렇다. 판매자의 10배가 넘는 가격으로 거래되는 통에 피해를 보는 건 소비자였다. 바로 복잡한 유통구조 때문에 발생한 일. 자급자족에서 사회에선 물건을 생산하는 사람과 사는 사람, 이렇게 심플하게 이루어졌던 관계가 점점 사이에 끼어드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서로들 이윤을 남기려고 하다 보니, 복잡해 진 게 한 두개가 아니다.

유독 가격차이가 많이 나는 명품 브랜드를 살펴보자. 면세점에서 사는 게 국내의 아울렛보다 사는 것보다 휠씬 저렴한 건, 물건에 붙는 관세의 영향이 크다. 유럽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장벽이 사라지면, 명품가격이 줄어 들것이라고 한다지만 중국에서 생산한 제품은 제외한다면 판매가격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가격을 제외하더라도, 원가와 비교하면 여전히 상당한 차이가 있는 건 국내에 들어오면서 붙는 로얄티와 마케팅 비용들이 소비자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오기 때문이다.

예외는 있지만 일반적인 옷의 주기는 이와 같이 움직인다. 품질 좋은 옷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사는 것, 가장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옷의 특성(트렌드가 빠르게 움직인다)상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기에는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어떤 상품이건 간에 부정확한 예상량으로 대량생산이 이루어지고, 남아도는 상품은 떨이 취급을 받는 이해할 수 없는 구조가 되어버린 지 오래.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소비자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무조건 싸니까 사고 보자는 식이 아니라, 진짜 필요한 옷 몇 가지를 잘 구입해야한다. 이미 우리의 옷장에는 입지 않는 옷들이 수두룩한 걸 생각해보라.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하는 90% 세일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충동구매는 언제나 후회를 부르기 마련이다. 갖고 있는 예산에서 필요한 옷만 구입하는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돌고 도는 옷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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