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거리는 '공공관리제'…꽉막힌 서울 재개발·재건축

머니투데이 서동욱 기자 2010.10.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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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업체 선정놓고 구청-조합 갈등 첨예..곳곳 사업추진 난항

편집자주 서울지역의 재개발·재건축사업장 상당수가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들 정비사업의 투명성을 강화한다며 서울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공공관리제'가 시행 초기부터 갖가지 문제점을 드러내서다. 정비업체 선정을 놓고 구청과 조합 추진위원회가 갈등을 빚는가하면 추진위는 구청장이 선정한 정비업체를 승계하는 대신 새로운 정비업체를 뽑는 등 '공공의 관여'를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조합 관계자들은 대체로 공공관리제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복잡한 정비사업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실무 공무원들의 전문성 부족으로 업무 추진에 걸림돌이 많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재개발·재건축사업이 원활히 추진되지 못하면 가뜩이나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서울지역 아파트시장의 수급불균형 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량 일반분양하는 신규아파트를 지을 땅이 없는 서울의 경우 신규주택 공급의 상당수를 재개발·재건축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공이 하면 싫다?" 정비업체 재선정 잇따라
지구 전체가 '공공관리 시범지구'로 지정된 한남뉴타운(재정비촉진지구)의 한 조합추진위 사무실. 26일 오전 추진위 사무실은 이날 오후 3시까지가 입찰 마감시한인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정비업체) 선정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 7월16일 본격적으로 시행된 공공관리제에 따라 이 구역은 구청장이 정비업체를 선정했지만 추진위 측에서 새로운 업체를 선정하는 것이다. 정비업체는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에서 추진위나 조합을 대신해 △정비사업 동의서 접수 △조합설립인가 신청 △사업계획 작성 등의 업무를 대행하는 업체를 말한다.

정비업체 승계문제는 서울시가 공공관리제 도입 당시 강제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공공관리제의 핵심사안이다. 시는 줄곧 "정비업체를 그대로 승계하면 사업비 절감 및 사업기간 단축 등의 효과가 있다"고 강조해왔다. 한남뉴타운 내 다른 추진위 역시 구청장이 선정한 업체를 승계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추진위 측은 '정당한 재산권 행사'라는 입장이다. 추진위 관계자는 "정비업체 선정에 공공이 관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공공이 조합원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재개발사업을 하는 대부분 추진위는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청이 추진위 고발까지…
한남지구에서는 정비업체 선정을 둘러싸고 구청이 추진위를 검찰에 고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지난 6월 용산구로부터 추진위원회 구성을 승인받은 구역이 정비업체 후보를 정했지만 공공관리제 시행일인 7월16일까지 총회에서 업체를 결정하지 못했다. 이후 추진위가 한 업체를 지난달 최종 선정하자 구청은 "선정기준을 위반했다"며 추진위를 고발했다.

검찰 수사와 법원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추진위 업무가 사실상 정지되기 때문에 사업 차질이 불가피하다. 시 관계자는 "여러 차례 공문을 보내 총회를 열지 말라고 촉구했지만 추진위가 정비업체를 결정해 규정에 따라 검찰에 고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추진위 측은 사업시행을 위해 주민동의서를 받는 과정에서 구청장이 선정한 정비업체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재개발사업의 첫 단추인 주민동의서를 받는데 정비업체 대신 추진위 관계자들이 나서야 했다는 것이다.

추진위 관계자는 "주민들이 지역실정을 잘 모르는 정비업체 직원들에게 동의서를 써주지 않는 바람에 추진위 측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며 "가까스로 추진위 승인에 필요한 동의율 54%를 채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공이 선정한 업체가 과연 투명한지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고 서울시가 공언한 대로 사업기간 단축과 비용절감 효과가 있을지도 두고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 주도로 정비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심교언 교수는 "수많은 정비사업의 특성을 무시하고 하나의 잣대로 관 주도의 사업을 벌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공공관리제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제도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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