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에세이]당신은 인생 몇단? (1)

머니투데이 김영권 머니위크 편집국장 2010.10.14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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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데 인생낭비 하지 말자

바둑이나 태권도 같은 데만 단수가 있겠나. 내가 보기에는 인생에도 단수가 있다. 강호의 인생 고수를 만나면 짜릿한 단수가 느껴진다. 인생 9단 중의 9단이 입신의 경지인 부처님이나 예수님 아니겠나.

고수는 고수끼리 알아본다는데 나는 얼마나 알아보는지 모르겠다. 고수를 알아 볼 수 있어야 잘 알아 모실 것이고, 어떻게든 한 수 배울 수 있을 텐데 큰 일 났다. 하긴 예수님도 당대에 메시아로 알아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멀쩡하게 두 눈 뜨고 필생의 사부님을 놓치지 않으려면 인생 단수 읽는 법부터 잘 공부해둬야겠다.



우선 몸풀기 연습 문제. 예수님이 제시하신 기준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할 정도의 단수라면 틀림없이 9단 중의 9단이다. 사실 이 정도 단수면 애초부터 원수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원수가 있을 리 없다. 혹시 이런 고수를 원수 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다. 나는 원수는 없지만,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엄두가 나지 않으니 아직 멀고 멀었다.

내친 김에 예수님이 즐겨 쓰시는 기준을 한가지 더 살펴보자.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남에게 베풀되 댓가를 바라지 말고 무심한 마음으로 하라는 뜻이렸다. 아무 생각없이 한쪽 눈을 깜박이는 것처럼, 다른 쪽 눈이 그걸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그냥 베풀라는 뜻이렸다.



이 정도 수준에 이르려면 우선 베푸는 사랑이 ▶머리의 생각 단계와 ▶마음의 공감 단계를 거쳐 ▶손발의 행위 단계로 가야 한다. 그런데 이 손발의 행위가 몸에 배고 또 배어 마치 눈꺼풀을 깜박이는 것처럼 무조건적이 돼야 한다. 머리로 생각할 것도, 마음으로 공감할 틈도 없이 저절로 몸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아득히 멀었다. 베풀겠다는 생각은 뜸하고, 베풀 때는 은연중 대가를 바란다. 내가 베풀었는데 저쪽이 시큰둥하거나 감사를 표하지 않으면 무례함에 화가 난다. 마음은 옹졸하고, 몸으로 베푸는 것은 거의 없으니 인생 단수로 치면 하급중의 하급이다.

연습문제가 '최고수용'이어서 오히려 맥이 탁 풀린다. 갈 길이 막막해 어디서부터 발걸음을 떼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제 조금 쉬운 것으로 해보자. 그래야 나도 얼른 파란띠, 빨깐띠 따고 마침내 검은띠 승단시험에 도전하겠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 같다.


세번째 연습문제는 입신의 경지보다는 단수가 조금 낮은 듯한 공자님의 기준이다. 이것도 학교에서 배우고 수시로 써먹는 것이니 익숙할 것이다. 공자 왈 "15세에 학문에 뜻을 뒀고(志學), 30세에 학문의 기초를 세웠으며(而立), 40세엔 미혹되지 않았다(不惑). 50세엔 천명(知天命)을 알았고, 60세엔 귀가 순해졌으며(耳順), 70세엔 마음을 따라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더라(從心)".

여기서 인생 단수는 이립-불혹-지천명-이순-종심 순인데 나는 과연 내 나이에 맞는 단수에 이르렀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40을 넘었지만 의심이 많고, 작은 유혹에 갈대처럼 흔들린다. 50이 다 됐지만 하늘의 명을 모르겠다. 다만 요즘 들어 내가 진짜 나를 몰랐고, 겉멋에 홀려 헛것만 좇아왔다는 깨우침이 있는데 이게 천명을 알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헤아려 본다.

후하게 쳐서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정말 잘 살아야겠다. 엉뚱한데서 헤매며 인생 낭비하면 안되겠다. 나를 알고, 소신껏 내 천성에 맞는 꽃을 피워야겠다. 귀를 열고, 마음을 다스리는데 정진해야겠다. 아! 아무리 그래도 가야 할 길은 꿈같이 멀구나. 마음을 따라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는 '인생 9단'의 경지여.

  ☞웰빙노트

육체적이든, 감정적이든, 정신적이든, 심리적이든, 당신이 얻은 가르침은 두 가지 길 중 하나로 방향을 잡게 된다. 한 가지는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깨달음과 받아들임, 용서의 길이며, 다른 한 가지는 성인이 되어서도 분노하고 남들과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길이다. <데니스 마릭, 샤론 쿼트, THE KEYS>

깨달음은 때가 되면 스스로 찾아온다. 단지 그대가 할 일은 깨달음이 오도록 길을 트는 것뿐이다. 깨달음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보석 감별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순간이 왔을 때 알 수 있다. 깨달음을 강요하거나 조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강제로 깨달음이 일어나게 할 수 없다. 하지만 깨달음이 오면 그것을 의식할 수는 있다. 명상을 멈추면 의식의 능력도 상실한다. 그러니 명상을 게을리 하지 말라. <오쇼 라즈니쉬, 틈>

그대는 과연 얼마나 그릇이 넓어졌는가. 잡다한 세속적 욕망과 집착 때문에 오히려 날이 갈수록 그릇이 좁아지지는 않았는가. 그대가 불행을 느낄 때 더 큰 불행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대가 고통을 느낄 때 더 큰 고통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라. 그러면 절로 그대 마음의 그릇이 넓어지고 그대 마음의 그릇이 넓어진 자리에 그대 전체가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 오리라. <이외수, 청춘불패>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게다가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 부리는 걸 그만두지 않으면 영혼의 마음으로 가는 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비로서 이해라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영혼의 마음도 더 커진다. <포리스트 카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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