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에르메스 "됐거든"…'신개념 명품' 시대

머니투데이 이명진 김유림 기자 2010.10.0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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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 2만불 시대…개성추구 차별화된 명품시장 형성

-국민소득 2만불 시대…마트서도 명품 팔 정도로 대중화
-나만의 개성 추구하는 수요가 차별화된 명품 시장 형성


편집숍 '10꼬르소 꼬모'편집숍 '10꼬르소 꼬모'


#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자리 잡은 명품 편집숍 '분더샵'. 잘 모르는 사람은 그냥 갤러리로 착각할 만한 곳이다. 실제로 이 건물은 세계적인 건축가 귀도 스테파니가 설계했다. 2~4층까지 널찍하고 현대적으로 디자인된 공간에서 세계 유명 디자이너의 의류가 판매되고 있다. 건물 자체가 손님이 몰려도 동선이 어긋나게끔 설계돼 복잡한 백화점과 느낌이 다르다.



브랜드와 가격대는 매우 다양하다. 눈에 들어온 '필립림'의 퍼(fur)가 가미된 트렌치코트는 175만원, 최근 각광받고 있는 국내 디자이너 김재현의 브랜드 '쟈뎅 드 슈에뜨'의 털 목도리는 59만원이다. '낸시 곤잘레스'의 클러치백(560만원)이나 '크리스찬 루부땅'의 송치 부츠(220만원) 같이 고가 제품이 즐비하지만 스커트와 니트류는 국내 브랜드와 비슷한 100만원대 미만 제품도 많다.

몇 개 건물을 사이에 두고 같은 청담동 골목에 있는 '10 꼬르소 꼬모'에서 판매되는 브랜드는 더 생소하다. 튀니지 출신 프랑스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의 브랜드 '알라이아'의 송치 코트는 무려 2350만원. 원피스도 445만원이다. 하지만 비싼 가격의 제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해외 디자이너들의 개성 있는 의류가 10만원대부터 몇 천만원대를 호가하는 제품까지 다양하다.



편집숍 '꼼데가르송'편집숍 '꼼데가르송'
제일모직 (0원 %)이 최근 이태원에 문을 연 일본 디자이너들의 브랜드 '꼼데가르송'은 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디자인의 옷들이 많다.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준야 와타나베'의 울 롱코트를 입어 보니 “올 FW(가울겨울) 시즌 제품으로 280만원입니다. 국내에 한 점 들여온 제품이에요”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2층부터 5층까지 둘러보는 동안 한 명의 판매원이 곁에서 고르는 옷마다 상세한 설명을 곁들인다. 깍듯한 대접은 이곳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접어들면서 국내 명품시장에도 변화의 흐름이 감지된다. 명품이 대중화되면서 '남들이 안 입는 차별화된 명품', '로고가 드러나지 않는 개성있는 명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편집숍 '분더샵' 입구편집숍 '분더샵' 입구
편집숍 '분더샵'편집숍 '분더샵'
◇ "명품이 목적 아니라 개성 표현이 우선" = 90년대 부유층은 '프라다'와 '페라가모', '버버리' 등으로 치장한 '청담동 며느리룩'으로 명품 소비 시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들과 차별화됐거나 '아는 사람만 아는' 명품을 찾고 있다.


이 시장은 외국에서 디자이너 브랜드 제품을 소량 수입 판매하는 이른바 '명품 편집숍'들이 주도한다. 명품 편집숍은 말 그대로 여러 브랜드의 명품을 모아 파는 곳이다. 현재 파리나 뉴욕에서도 판매되고 있는 제품들이기 때문에 들르기만 하면 세계 패션 트렌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분더샵을 운영하는 신세계 (173,000원 ▲200 +0.12%)인터내셔널 관계자는 "이 곳에서 판매되는 의류는 파리와 뉴욕, 런던, 밀라노에서 컬렉션을 여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제품들로 제품 당 거의 한 두 점씩만 수입할 정도로 희소성이 높다"며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소득, 소비 수준 격차가 좁혀지면서 트렌드의 격차도 어느 정도 좁혀졌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명품업체 오스캔들 김정숙 대표는 "부유층 패셔니스타들은 '루이비통', '프라다'는 물론 '샤넬'이나 '에르메스'도 식상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무조건 비싼 것보다는 개성 있는 명품을 소비하려는 차별화 욕구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명품편집숍이 전체 명품시장에서 차지하는 절대 비중은 아직 크지 않으나 꾸준하게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널 관계자는 "고가여서 일부 소비층에 집중돼 매출 성장률이 크지는 않지만 해를 거듭할 수록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10꼬르소꼬모 매장 직원은 "주중에는 100명 정도 방문하는데 주말에는 좀 더 많이 온다"며 "부산 등 지방분들도 자주 방문하고 특이한 제품을 찾는 고객이 많다"고 귀띔했다. 주 고객층은 전반적으로 소비 여력이 높은 부유층들이고 연예인과 고소득 전문직, 패션업계 종사자 등이라는 게 업체들의 설명이다.

이런 편집숍에는 남성 제품도 다양한 브랜드가 판매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널 관계자는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분기점으로 소비 트렌드가 많이 바뀌는데 남성 명품 시장이 활성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도 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홈플러스 명품관 '오를루체'홈플러스 명품관 '오를루체'
◇ 대중화된 명품, '매스티지'의 범람 =국내 명품 시장은 경제위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매년 꾸준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롯데·신세계·현대 등 백화점 3사의 명품부문 매출액은 총 1조1390억300만원으로 같은 기간 전체 매출액(11조1592억8400만원)의 10.2%에 달한다.

루이비통 같이 이미 많이 알려지고 소비된 브랜드 제품은 명품 중고시장에서도 매매 가격이 내려가는 분위기다.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부근 중고 명품샵 관계자는 "루이비통 제품은 공급이 많다 보니 가격이 내려가는 추세"라고 전했다.

최근에는 '코치', 'MCM'이나 명품 브랜드의 '세컨드 라인' 등 이른바 '매스티지(대중적 명품) ' 브랜드들이 대학생은 물론 중고등학생들에까지 소비될 정도로 수요층이 확대됐다. 갤러리아 명품 매장 직원은 "예전에는 30~50대 주고객층이 주류를 이뤘지만 요즘은 20대 고객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홈플러스나 롯데마트 등 심지어 대형 마트에서도 명품을 판매하고 나섰다. 대형마트인 홈플러스 명품 편집숍 '오르루체' 관계자는 "장을 보다가 들러 제품을 구입하는 고객들도 많고 싼 가격에 명품을 구입하기 위해 지방에서 버스를 대절해 방문하는 고객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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