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고 닦고 버리고… 명절 잊은 피해복구 현장

머니투데이 서울=뉴시스 2010.09.2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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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서울 강서구 공항동 홍경택씨(56)의 반지하방은 입구부터 악취가 진동했다. 장판까지 뜯어낸 거실과 안방, 작은 방은 텅 비어 있었고, 장롱과 냉장고 등 가재도구는 집 앞 도로에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같은 시간 안씨의 집 인근 양윤미씨(46·여)의 3층 다세대주택 반지하방도 상황은 마찬가지. 3일째 명절을 반납하고 방 안 가득 고인 물을 퍼내고 있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벽지와 장판을 새로 깔고 전기공사를 다시 해야 한다'고 힘없이 말하는 양씨의 뒷모습이 무거워 보였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이날 서울 서남부 지역 곳곳은 폭우 피해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지난 21일 서울과 수도권 지역을 강타한 '물폭탄'으로 피해를 입은 강서구 일대 주민들은 방바닥을 닦고, 축축한 살림살이를 말리며, 못 쓰는 물건들을 분리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말리고 닦고 버리고… 명절 잊은 피해복구 현장


특히 빗물펌프장과 가까워 피해가 심각한 강서구 공항동 일대는 이른 아침부터 피해복구에 힘쓰는 주민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곳곳에는 담장 마다 널린 젖은 이불과 옷가지들이 눈에 띄었고, 햇볕이 내리쬐는 집 앞 도로는 냉장고와 장롱 등 젖은 가재도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물폭탄'을 맞은 방 안 벽지에 남은 얼룩은 비 피해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대변했다.

이틀째 계속된 피해복구 작업에 지쳐 앉아 있는 남성, 손도 대지 못한 채 멍하니 먼 곳만 바라보고 있는 여성, 얼룩진 옷을 입고 뛰어다니는 아이 등 주민들의 모습은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대부분 주민들은 추석 명절도 반납한 채 연휴를 온전히 피해복구 작업에만 매진했다.


양윤미씨는 "세입자들이 명절을 쇠러 간 동안 비가 쏟아져 난리가 났다"며 "다시 사람이 들어와 살려면 시간과 돈이 많이 소요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홍경택씨는 "이 집에서만 5년째 거주 중인데 올해 같은 경우는 처음"이라며 "장남인데 집안 꼴이 이 모양이라 차례도 못 지내고 부모님 뵐 면목이 없다"고 허탈해했다.

또 다른 주민 안동렬씨(56)는 "1층인데 물이 발목까지 차올라 물건들이 모두 못 쓸 지경이 됐다"며 "밖이 온통 물바다라 퍼낼 엄두도 못 내고 물이 빠지기만 넋 놓고 기다렸다"고 털어놨다.

피해복구 작업과 함께 이날 공항동 주민센터에는 피해신고를 접수하러 온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하지만 대다수 주민들은 해당 공무원들의 대응과 지원 대책에 불만을 드러냈다.

주민 최재동씨(34)는 "아침 일찍 주민센터를 찾았지만 해당 공무원이 주거지에 대한 보상만 이뤄진다고 해서 피해 신고도 못했다"며 언성을 높였다.

양윤미씨는 "정부의 피해보상은 집에 사는 세대주별로 파악해 지원되는 것으로 안다"며 "세입자들도 피해가 크지만 집주인도 금전적으로 손해가 큰데 이에 대한 지원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주민센터 관계자는 "오늘 오전까지 500여건의 피해가 접수됐다"며 "갑작스런 비로 피해가 컸지만 인력과 장비가 부족해 복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피해복구 작업 지원을 나온 한국전기안전공사 관계자는 "3일 내내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피해현장을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다"며 "현재로서는 물이 다 마를 때까지 응급으로 전구하나 달아주는 것 외에는 손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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