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에세이]깊숙히 들어오세요

머니투데이 김영권 머니위크 편집국장 2010.09.02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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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 디엠'을 위하여-2 / 이 순간을 만나는 법

지금 이 순간은 깊다. 그 곳에 진짜 행복이 있다면 그 깊은 곳으로 가보자. 수직으로 내려가 보자. 삶의 중심으로 들어가 보자.

첫째, 깊이 숨쉬기. 숨이 수직으로 깊이 내려간다. 코에서 목으로, 목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배로 내려간다. 하늘의 기운이 내 안 깊숙히 들어온다. 몸이 편안해진다. 머리가 가벼워진다. 마음도 편해진다.



태아는 엄마 뱃속에서 복식호흡을 한다. 아기도 처음에는 복식호흡을 한다. 그래서 숨 쉴 때마다 아랫배가 들락날락한다. 그 숨이 자꾸 위로 올라와 보통은 가슴으로 숨을 쉰다. 그 숨이 더 올라오면 목숨이고, 목숨을 넘기면 숨이 끊인다. 아랫배까지 수직으로 깊이 내리는 숨은 친 생명적이다. 그렇게 숨을 쉬면 생명이 기뻐한다.

둘째, 단전 연결하기. 정수리 상단전과 가슴의 중단전, 배꼽 아래의 하단전을 수직으로 연결한다. 하늘의 기운이 수직으로 연결된 단전 줄을 타고 내 안 깊숙히 들어온다. 몸과 마음이 편해진다. 머리가 가벼워진다. 가만히 앉아서 허리를 곧게 펴고 상단전-중단전-하단전이 통하는 수직 통로를 연상한다. 통로가 떠오르고 기운 같은 것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단전이 연결된 것이다.



셋째, 십자가 그리기. 눈을 감고 천천히 십자가를 그린다. 한 손을 들어 먼저 수평을 긋고, 다음으로 수직을 긋는다. 수평은 시공간의 길이고, 수직은 시공간을 넘어 이 순간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수평과 수직이 만나는 곳이 지금 이 순간이고 그 밑으로 내려가는 선이 이 순간의 깊은 곳을 향한다. 그 선은 상단전-중단전-하단전을 연결하는 선과 같다.

넷째, 천천히 걷기. 걷는 것은 수평의 대지 위에 나를 수직으로 세우는 것이다. 달릴 때는 수평 감각이 강하다. 반면 걸을 때는 수직 감각이 더 강하다. 천천히 걸으면 한걸음 한걸음마다 땅에 닫는 이 순간을 느낄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걸으면 매 발걸음이 이 순간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어디로 가겠다는 시공간의 욕심에 마음이 사로잡히면 시간과 거리에 쫓겨 이 순간을 놓친다.

다섯째, 기도하기. 기도는 두 손을 수직으로 모아 염원하는 것이다. 간절하게 기도하면 세상의 기운이 두 손에 모여 수직으로 내 안으로 들어온다.


여섯째, 절하기. 내 몸을 바닥에 수직으로 곧게 세운 다음 두 손을 모은다. 천천히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굽히고, 머리를 내린다. 나는 제자리에서 아래로 내려간다. 하늘의 기운을 땅의 기운과 합친다.

마지막 일곱째는 연상 훈련이다. 내 몸에서 시작해 수직의 이미지로 이 순간으로 들어가는 문을 찾으면 막연하지 않아서 좋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강력한 연상 효과를 더해보자. 바다와 파도를 이용한 비주얼 연상이다.

나는 바다다. 넓고 깊은 바다다. 나의 하루는 파도와 같다. 파도처럼 출렁인다. 오락가락한다. 부숴지고 또 부숴진다. 생각의 파도가 치고, 감정의 물결이 일렁인다. 욕망의 파도가 꿈틀거린다. 때로는 성난 해일처럼, 때로는 잔잔한 호수처럼 변화무쌍하다. 그것은 내 삶의 무늬들이다. 그 무상한 무늬 위에 금을 긋고, 둑을 쌓고, 물을 가두고, 다투느라 고단하기만 하다. 고해(苦海)다.

하지만 깊은 바닷속은 그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곳엔 금이 없다. 둑도 없다. 갇힌 것도 없다. 모든 걸 포용하고, 고요히 침묵한다. 청정하다. 평화롭다. 나는 그곳으로 내려간다. 수직으로 깊이깊이 내려간다. 깊이 내려갈수록 나는 파도가 아니다. 부숴지지 않는다. 오락가락하지 않는다. 휩쓸리지 않는다. 나는 거기서 행복한 이 순간을 만난다.

  ☞웰빙노트

내면에 무엇인가 차 있다는 느낌을 가지려면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이 우주와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다. 이때 그대는 내면의 충만함을 느낀다. 세상의 온갖 꽃들과 하늘의 별들, 이 우주 전체가 바깥 세상 뿐만 아니라 그대 안에도 존재한다. 이것이 참된 충만감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 못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이 온갖 쓰레기로 그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이다. <오쇼 라즈니쉬, 이해의 서>

침묵 속에서 묵상 속에서 자기 자신과 얘기하고, 하느님과 얘기하는 것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작가가 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설 속 인물들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그것도 너무도 빨리 삶이 쓰이는 것 같지요!
참된 삶은 자기 자신을 대면하는 것,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 우리 안에 있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하나의 악보와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악보를 해독해야 하고 거기에 가사를 붙여야 합니다. <엠마뉘엘 수녀, 나는 100살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

호흡을 자각하는 일은 당신을 지금 이 순간 속으로 데려온다. 모든 내적 변화의 열쇠가 그것에 있다. 호흡을 의식할 때마다 당신은 절대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 있게 된다. 호흡을 자각하는 일과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호흡에 의식을 집중하면 그 순간 마음의 활동이 정지된다. 하지만 이것은 최면에 걸리거나 반쯤 조는 상태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 당신은 활짝 깨어 있고 고도로 민감하다. 당신은 생각들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위로 올라간다. <에크하르트 톨레,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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