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현 칼럼]금융소비자 보호의 핵심을 바로알자

머니투데이 안동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2010.08.2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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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보호법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입법화된 음식 및 의약품 보호법과 정육감시법안을 효시로 들 수 있다. 당시 이러한 법안이 만들어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 저널리스트, 업튼 싱클레어다.

루스벨트에 의해 '사회고발자(muckraker)'란 신조어로 명명된 그는, 1906년에 발표한 '정글'이란 책에서 시카고 지역 육가공업체들의 비위생성에 대해 기술했다. 그는 "수천마리의 쥐들이 들끓고 독약을 놓아 죽은 쥐들과 배설물들이 고기와 함께 소시지의 원료가 된다"고 폭로했다.



이 책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실제로 이들 업체의 실태가 싱클레어가 기술한 바와 같은지 조사를 지시했다. 조사 결과는 싱클레어가 기술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으로 판명됐다. 같은 해 루스벨트는 하원에 의뢰해 상기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소비자보호의 목적은 생산자가 소비자잉여를 생산자잉여로 이전해 소비자에게 부당한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근절하는 데 있다. 일반 상품의 경우 이러한 행위는 위험성이 있거나 비위생적인 상품의 판매 및 부당이득까지 다양하지만 오랜 역사를 통해 감독 및 관련 법안 역시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이에 반해 금융소비자의 권익보호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우리나라에는 덜 알려져 있지만 최근 미국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 전 발행한 ELS상품의 판매사인 UBS를 대상으로 개인투자자들이 제기한 소송이다.

리만은 과거 대표적인 채권하우스로 유동성이 취약한 신용상품 재고량이 가장 많은 증권회사였다. 이러다 보니 2008년 3월 베어스턴스의 부도사태 이후 리만은 심각한 유동성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주식이나 회사채를 통한 자금조달이 용이하지 않자 리만은 일반투자자들을 대상으로 3월부터 8월까지 ELS를 집중적으로 발행했다.

이렇게 유입된 자금의 대부분이 리만의 단기부채를 막는데 소진됐다고 한다. 순진한 일반투자자들은 리만이 안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지 못했다. 더불어 ELS와 펀드의 차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자신들의 투자금액이 펀드와 마찬가지로 구분계리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ELS는 발행사가 채무자인 무담보 회사채로 발행사 파산 시 부도위험에 노출되는 상품이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미 파산한 리만을 상대로 소송을 해 봐야 별 소득이 있을 수 없기에 판매사인 UBS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금융소비자 보호가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에서도 금융소비자 보호는 도덕적해이가 가장 심한 보험 산업의 분쟁해소에 초점을 맞춰왔다. 비 보험 분야에서는 1934년에 제정된 증권거래법과 40년에 제정된 투자회사법(Investment Company Act)을 중심으로 주로 자산 운용업에서 투자자 보호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일반투자자들에게 판매되는 상품들이 복잡 다기화되면서 정보의 비대칭성에 따른 금융소비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리만문제 역시 하나의 사례다. 이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관련 법안에 대대적인 수술을 하고 있다.

금융소비자보호의 방향은 상품의 종류를 제한하는 영국식과 고위험 상품이 특정소비자에게 판매되는 걸 제한하는 미국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소송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법적 인프라가 잘 구축된 미국의 경우 사전적 규제인 상품규제보다는 투자자제한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금융소비자보호가 이슈화되면서 현재 금융감독원이 갖고 있는 감독 권한을 어떻게 재편성할 지가 관심의 대상이다. 여기에 관련기관의 이해가 개입된 것으로 보여 한편으론 씁쓸하다.

중요한 건 누가 감독권한을 가지느냐는 것보다 감독방향을 어느 쪽으로 설정할 것이냐다. 상대적으로 법적소송이 용이하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 영국식으로 상품을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도한 상품규제는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기에 신중을 요한다. 결국 정부, 국회, 금융기관과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이슈는 '누가'보다는 '어떻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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