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찍힌 지존, 김일구 애널리스트의 변명

더벨 한희연 머니투데이, 김익환 머니투데이 2010.08.0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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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동결 전망 보기좋게 빗나가…그래도 "본격적인 인상 사이클 아니다"

더벨|이 기사는 08월04일(16:20)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돌아온 지존' 김일구 애널리스트가 제대로 찍혔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독야청청(?) "연내 기준금리 인상은 없다"고 전망한 그는 7월 금통위가 금리를 인상하는 바람에 2년만의 복귀 신고식을 톡톡히 치렀다.



김일구가 누구인가. 세계 경제와 금융의 큰 흐름을 한 눈에 꿰뚫어 보는 통찰력으로 당대 최고라는 칭송을 받았던 수많은 현역 애널리스트들의 우상이 아닌가.

그에게 공개적인 변명의 기회를 주기로 했다. '혜안이 흐려진 것 아닐까' 은근한 의심을 품고 만난 그는 "일찌감치 틀릴 것을 알았지만 수정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틀리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애널리스트에게 중요한 것은 당장의 전망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큰 흐름을 만드는 변수와 그 변수들 간의 역학관계를 깨닫게 하는 것. 이것이 김일구의 생각인 것 같았다.

◇ 연내 동결론, 그가 바라봤던 세상은

낙인찍힌 지존, 김일구 애널리스트의 변명


김일구 대우증권 채권전략부장은 "어쨌든 그날(7월 금통위) 확실하게 낙인이 찍혔다"고 말했다.


하필이면 증권가 정보지(일명 찌라시)에 '김일구 애널리스트의 독야청청(?)'이란 제목으로 다른 애널리스트들은 모두 금리인상으로 돌아섰는데 혼자만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내용이 실리는 바람에 낙인은 더 뚜렷하게 찍혔다. 김일구가 틀릴 것인가, 다른 모든 애널리스트가 틀릴 것인가의 구도가 돼 버렸으니...

그 역시 틀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피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자신의 주장에 논리가 결여될 것을 더 경계한다. 그가 틀릴 줄 알면서 전망을 수정할 수 없었던 이유다.

김부장은 지난 6월 토론토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정상회의 전 미국은 추가 경기 부양에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6월5일 부산에서 열린 중앙은행-재무장관 회의를 마치고 돌아간 EU 각국은 곧바로 긴축을 결의했다. 미국의 부양과 유럽의 긴축이 정면으로 충돌한 상황에서 열린 토론토 G20정상회의는 그래서 중요했다.

유럽의 주장은 단기적인 경기부양은 부채를 늘리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경제를 망가뜨리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차라리 정부 지출을 줄이면 세금이 줄 것이고 국민들이 세금감소를 기대해 지출을 늘리면 장기적으로 경기가 살아난다는 것이었다.

유럽은 미국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토론토 정상회의 합의문에는 미국의 긴축 동의 내용이 포함됐다. 2013년까지 재정 적자를 절반 수준으로 낮추고 2016년부터는 정부부채를 줄이는 재정건전화에 합의했다. 당연히 부양을 택할 줄 알았던 미국이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는 평가다. 김부장은 이를 '역사적으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실험'이라고 했다.

세계 경제의 절반이 재정긴축에 들어간다면 한국은 어떤 스탠스를 취할 것인가.

김부장은 "시장은 한 번도 이런 세상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다"며 "올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는 '정말로' 조심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은은 금리를 올렸다. 세계가 재정적으로 긴축을 하면서 금리를 올리지 않고 시장을 달래고 있는 추세인데 한국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는 설명이다.

◇ 6월의 변화 심상치 않았지만..."7월에 기회 주실 줄 알았죠"

6월 금통위를 전후해 정책의 변화를 느꼈다. 지방선거 이후 전반적으로 금리인상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되면서 전망을 바꿀까 유혹을 받았다.

미국의 금융개혁법, 중국의 부동산 규제와 더불어 한국도 예대율 규제 등 정부가 힘을 갖고 시장을 통제했다. 그러나 지방선거 이후 정부 스스로도 규제를 부담스러워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매크로적으로 경기 상승이 지속되는 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은행이 금리인상을 서두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시장을 다그치던 정부가 역할을 바꾸고 싶어 한다면 시장을 달래던 중앙은행이 시장을 다스려야 할 때였다.

김부장은 "6월 금통위 성명서에 '금융완화기조를 유지하면서'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걸 그냥 두고 바로 금리를 올리는 것은 모양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7월에 그 표현을 빼는 것으로 명백한 시그널을 주면 그에 순응해 금리인상으로 전망을 바꿀 생각이었는데 그런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며 웃었다.

해외자금 유입으로 통화정책이 무력화 될 수 있다는 것,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좀 더 세계의 눈치를 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그가 입장을 바꾸지 못한 이유다.

김부장은 "한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좋아 원화 절상 기대가 강해질 텐데 금리까지 올려 내외금리차가 커지면 해외자금이 물밀듯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금리인상은 통화증발을 막겠다는 취지인데 해외자금 유입으로 결국 통화량 조절에 실패할 수 있다"고 말했다.

◇ 7월 금리인상, 그가 놓친 것들..."본격적인 인상 사이클 아니다"

김부장이 미처 보지 못한 것도 있었다. 우선 공공요금 인상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 우려다.

그는 "공공요금 인상으로 인한 물가상승 기대심리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그전에 금리 조정이 필요했다는 점은 인정한다"며 "사실 공공요금을 내년에 올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던 것은 못 봤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수출 사이클도 김부장이 간과했다고 자평하는 것이다. 연내 금리동결을 주장한 3월에는 수출증가세가 4월부터 꺾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출은 이후로도 3개월 동안 기세 좋게 밀고 올라갔다. 과소평가한 것이다.

김부장은 한은이 물가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이름으로 금리를 인상했지만 본격적인 인상 사이클이라 보기엔 이르다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내외금리차 확대나 미국이나 유럽의 재 둔화 우려 등을 생각하면, 연속적인 금리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만 공공요금 인상에 따른 물가상승 기대심리를 생각하면 연내 한번 정도, 일회성 추가 인상은 가능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김중수 총재가 7월 금통위에서 "시그널을 미리 주겠다"고 한 것은 위험한 발언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한국처럼 외부요인에 의해 크게 움직이는 나라의 경우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김부장은 "(연속적인 상황 하에서는) 시그널은 계속 줄 필요가 없다"며 "한번 올리면 특별한 일이 없다면 계속 올리고 반대로 낮추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계속 낮추면 된다"고 말했다. 외국 같은 경우도 한번 인상을 시작하면 시그널 없이도 계속 인상 사이클을 유지하는 등 지속성을 가진다는 설명이다.

금통위원에 대한 주문도 있었다. 한 달에 한번 금리를 결정하고, 6주후에 회의록이 공개되니 금통위원의 생각을 시장이 읽을 기회가 너무 없다는 것이다. 금통위원이 자주 시장에 나와 소통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한은 집행부의 의견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통위원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한은 집행부와 금통위를 분리한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 "더블 딥은 옵니다. 하지만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어요"

김부장은 주요국의 더블 딥을 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더블 딥이 온다고 모든 것이 다 나빠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라고 말한다.

"미국이나 유럽 등의 더블 딥 우려가 불거질수록 중국의 주가는 치고 올라오는 현상이 있는데 아세요?"

미국이나 유럽의 경기가 나빠지면 중국 등은 규제를 멈추고 내수부양을 시작할 것이란 기대가 생긴다는 설명. 세계 경제는 어느 한 축이 어려우면 사정이 괜찮은 나라가 좀 더 써주는 식으로 엇박자를 그려가면서 장기적으로 다시 본 궤도를 찾을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이다.

채권을 분석하는 사람들은 비관적이라는 얘기가 있다. 2000년대 초반 채권 애널리스트를 할 당시만 해도 세상은 그에게 참 비관적이었다.

"세상을 논리적으로 보면 나올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다 비관적이에요"

하지만 시장을 떠나있었던 지난 몇 년간 그는 변했다. 다시 채권시장으로 돌아온 김부장은 자신을 '굉장한 낙관론자'라고 칭한다. 비관적인 것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희망적인 무언가는 항상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외환위기 당시 우리 경제를 논리적으로 보면 정말 암담했지만 핸드폰이 무서운 속도로 보급되며 경제의 원동력이 됐다"며 "지나고 나서 보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의 성장도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은 것들이 끌고 갈 것이기 때문에 지금 보이지 않은 것들에 대한 낙관을 놓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몇 년의 공백을 깬 뒤 다시 애널리스트로 돌아온 지금 김부장은 글쓰기가 쉬워졌다고 했다. 이전에는 글을 쓸 때마다 무언가 빠져나간다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이제는 극복했다고 한다.

그는 애널리스트로의 복귀를 결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책을 소개했다. 조셉 M 마셜의 'Keep Going'은 너무 멀리가려 하지 말고 꾸준히 가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Eat, Pray, Love'는 자신에게 맞는 행복을 찾는 과정을 그렸다.

복귀를 결심하고 글을 쓰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겠다는 꿈을 위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그는 지금 행복하다고 했다.

"후배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후배들과 경쟁하기 위해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딱 1년만 한국시장에서 하고픈 얘기를 다 써내고 싶었어요. 그리고 나면 새로운 길을 개척할 거예요 해외 인바운드·아웃바운드 비지니스 등을 준비하고 있죠. 경험 있는 사람이 길을 열어주면 젊은이들은 그 길을 가게 되요. 제가 하고 싶은 게 바로 그거에요"

그는 시장에 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김일구의 최대 약점이라고 언제나 지적됐던 그것, 시장을 너무 사랑한다는 것은 2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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