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거꾸로 가는 현대그룹 채권단

머니투데이 기성훈 기자 2010.07.2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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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여신 중단에 이어 대출 만기연장 중단 검토..'기업 죽이기' 우려

외환은행 등 13개 은행으로 이뤄진 현대그룹 채권은행협의회(채권단)가 현대그룹에 대해 신규여신 중단에 이어 대출 만기연장 중단여부를 검토하면서 재계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출 만기연장 불가 조치가 재무구조개선약정(재무약정) 체결 지연으로 인한 일종의 '패널티'지만 해당 회사의 입장에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29일 "재무약정문제로 불거진 현대그룹과 채권단의 '힘겨루기'가 대출 만기연장 중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치닫고 있다"면서 "대출 만기연장 중단 조치가 실제 이뤄지면 관치금융의 절정이었던 5공 시절 국제그룹 해체 이후 처음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그룹 해체는 한국경제사에 관치금융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국제그룹은 '프로스펙스'를 생산하는 국제상사의 전신으로, 2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리며 1970년대 재계 랭킹 7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전두환 정부 들어 부실기업으로 낙인 찍혀 그룹을 해체 당했다. 당시 주채권은행인 제일은행은 만기가 돌아온 국제그룹의 어음 432억원을 부도처리했고, 이를 계기로 국제그룹의 신용도는 급속히 추락하면서 1985년 한순간에 몰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현대그룹의 상황도 지금 현대그룹 처지와 유사하다. 지난 92년 12월 당시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대선에 출마해 낙선하자 현대그룹은 3년여 가까이 고강도 금융제재를 당했다. 외환은행 (0원 %)은 당시 현대건설 등 11개 계열사 주거래은행으로서 현대 측에 압박을 가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다만 계열사별로 주채권은행이 달라 신규여신 중단 조치만 취해졌을 뿐 전면적인 대출 만기연장 불가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지금의 현대그룹 채권단은 과거보다 더 심한 규제를 진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별 은행이나 주채권 은행이 아닌 '전체 채권은행 협의회' 결의를 통해 은행신규여신 중단은 물론 대출 만기연장 중단까지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탓이다.

현대그룹은 주채권은행이 아닌 채권단이 제재를 하는 것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재무약정은 주채권은행과 해당기업 간 자율적으로 체결되는 협약인데도 약정을 맺지 않았다고 금융제재를 하는 것은 심한 조치"라며 "재무약정을 맺지 않은 것이 대출 만기연장 불가라는 조치를 받을 만큼 큰 잘못인지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선 현대그룹과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이 서로 거래의 상대방인데, 한 쪽이 다른 한쪽을 평가하고 더구나 제재하는 게 법리상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특히 재무약정 제도는 외환위기로 어려움에 빠진 '기업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이번 현대그룹의 경우 오히려 '기업을 죽게 만들고 있다'는 시각도 적잖다.

실제 현대의 주력 계열이자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현대상선 (16,180원 ▼340 -2.06%)은 해운 시황이 살아나고 있지만 재무약정 체결 소식에 신규 투자는 물론 영업에도 지장을 받고 있다. 김성만 현대상선 사장은 얼마전 기자들과 만나 "재무약정 관련 보도가 나간 직후, 해외 선주들로부터 (현대상선)컨테이너에 물건을 실어도 되느냐고 문의해 혼이 났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는 재무약정 제도를 운영하는 채권단이 기업의 산업적 특성, 미래의 경쟁력, 업종의 향후 전망 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자본 회수에만 매달려 글로벌 해운사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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