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버티기' 정연주 삼성물산 사장의 선택은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2010.07.2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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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CEO In & Out]

지난 7월5일 허준영 코레일 사장은 정연주 삼성물산 사장에게 공문을 보냈다. 16일까지 토지 중도금 납부방안을 제출하라는 통보였다.

용산 사업 부지를 제공한 코레일은 건설 개발 컨소시엄의 대표사인 삼성물산에 2차 토지대금 6437억원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돈을 갚으라고 압박했다. 삼성물산은 최근 용산개발사업을 위해 17개사가 뭉친 건설컨소시엄의 대표 주간사다. 용산국제업무지구를 개발하는 전체 25개 회사가 속한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회사(이하 드림허브PFV) 가운데 이 건설 투자자 모임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물산은 코레일의 이 같은 압박에 드림허브PFV에 대한 삼성물산의 지분은 불과 6.4%인 반면, 코레일의 지분은 25%라며 코레일의 고지일인 16일까지 무대응으로 맞섰다.

코레일은 최종계약 유효일(8월20일)까지 삼성물산이 계속 꿈쩍하지 않는다면 ‘계약해지, 소송불사’까지 염두에 둔 상황이다. 코레일이 삼성물산에 중도금 독촉 공문을 보낸 이날은 마침 정연주 삼성물산 사장(60)이 선임된 지 250일째 되는 날이다. 정 사장은 지난해 12월15일 삼성그룹의 대규모 인사이동에서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에서 삼성물산 사장으로 올라선 바 있다.




다행히도 22일 개발사업 공동 출자자인 롯데관광개발, KB자산운용, 푸르덴셜 등 3개사가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중재에 나섰다.

이들 이사회는 ▲2조원에 이르는 건설 컨소시엄의 지급보증액을 9500억원으로 줄여주고 나머지 금액은 다른 투자자가 부담하면서 ▲출자 지분별 3000억원의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자산유동화증권 발행을 위해 최대지분투자자인 코레일이 담보를 제공해 줄 것을 요구했다. 코레일이 이를 일부 수용함에 따라 삼성물산은 앞으로의 협상에서 지급보증규모를 적어도 절반 이상 줄이는 성과를 얻었다. 삼성물산의 모르쇠식 ‘버티기 전략’이 먹힌 셈이다.

베일에 가려진 경영진단


삼성물산 (48,100원 ▲2,300 +5.0%)의 ‘모르쇠 전략’은 거의 전면적이다. 삼성물산 관계자에게 정 사장의 최근 지시사항이나 경영성과와 관련된 질문을 하면 “사장님께서 아직 업무파악이 끝나지 않았다. 물산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성과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는 말로 대신한다. 취임 7개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상황파악 중이라는 것이다.

특히 지난 4월부터 50일간은 2001년 이후 처음으로 경영진단이 이루어진 시기다. 경영진단 결과는 향후 10년간 삼성물산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갈지에 대한 판단자료다.

삼성물산은 이미 5월 말에 “자체경영진단이 마무리됐으며 각 팀별 결과를 취합해 CEO에게 보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 사장은 경영진단 결과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경영진단은 2002년부터 CEO를 맡았던 이상대 부회장 기간동안 한번도 없다가 9년 만에 이뤄졌다. 즉 전임 CEO에 대한 평가도 녹아있는 셈이다. 정 사장의 입이 무거워지는 이유 중 하나다.

정 사장은 22일 경영진단 결과에 따른 인력감축 계획 소문에 대해 직접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최근 사설정보지에 대규모 구조조정설 등 각종 소문에 대해 정 사장이 ‘구애받지 말라’, ‘사실이 아니다’ 식으로 해명했다”고 전했다.

경영진단 이후 삼성물산이 용산개발사업에 대한 버티기 전략을 더 강화했다는 시각도 있다. 진단 결과 순조로운 사업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한 삼성물산이 유리한 협상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31조원의 국책사업이 좌초되면 36만명의 고용창출 효과와 67조원의 생산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날아갈 것’ 등 여론몰이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한편 삼성물산은 용산개발사업에 대한 경영진단 보고서에 대한 자문을 세계적인 회계 컨설팅 기업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에 맡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엇갈리는 국내외 실적, 용산 프로젝트 잘 풀까

정 사장은 삼성엔지니어링에서 연평균 30%의 성장을 일궈낸 성과를 바탕으로 삼성물산으로 이동한 엘리트다. 2003년 엔지니어링 사장으로 부임한 뒤 1조1300억원의 매출을 지난해 4조원까지 끌어올렸다. 엔지니어링은 해외 수주에 강한 분야다. 엔지니어링에서 해외 수주로 90억달러의 실적을 올리며 업계 1위를 주도했다. 삼성물산의 해외 플랜트 사업에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사장의 전공분야에 대한 자신감은 직원들에게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정 사장 취임 이후 삼성물산에 때 아닌 영어공부 바람이 분 것이다. 정 사장은 5월 사내 영어 프리젠테이션에서 심사위원으로 참가해 직원들의 영어실력을 직접 평가한 바 있다.

반면 국내 공공사업에 대한 인식이나 지명도는 약한 편이다. 올 상반기 국내 턴키 사업에서 전무하다시피 한 수주 현황이 이를 증명한다.

주택 분양도 침통하다. 아무리 주택경기가 나쁘다고는 해도 GS건설과 함께 분양한 철산래미안자이 185가구를 제외한 올해 상반기 일반분양 아파트는 역삼동 진달래2차 재건축의 일반분양분 24가구가 전부다.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7% 감소한 567억원에 그친 것도 국내 사업이 만족스럽지 못한 까닭이다.

상반기 잠정 영업실적을 통해 살펴보면 상당부분 1분기 부진을 만회할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국내 영업은 불안하기만다. 31조원에 이르는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 협상이 삼성물산의 신뢰도에 줄 영향을 고려하면 소송만큼은 피해야 한다. 정 사장의 판단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약력
1950년 대구 출생
동국대 경영학과
1976년 삼성그룹 입사
1996년 삼성건설 경영지원담당 이사
2002년 삼성SDI 경영지원실 부사장
2003년 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장
2009년 삼성물산 대표이사 사장 겸 건설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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