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와 활동적 은퇴기

머니투데이 황인선 KT&G 부장 2010.07.1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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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톡톡]"언력에 주목하라"

오디세이와 활동적 은퇴기


2∼3년 전부터 눈앞에 숟가락이 올라오면 갑자기 밥알이 안보이고 책을 보면 초점 맞추느라 여간 피곤한 게 아닙니다. 안과에 가니 윽, 노안이랍니다. 남자들은 42세 전후로 온다나요. 수천 만원짜리 차도 7년 타면 덜덜거리니 육신원가 몇 푼 안되는 몸뚱아리를 40년 이상 굴렸으면 당연히 덜덜거리겠지 하면서도 기분은 영 아닙니다. 아는 선배에게 자못 시크릿하게 말했더니 "그건 약과야. You know 슈퍼 노안?" 고약한 선배는 후배도 노안대열에 동참하는 게 쌤통인지 대놓고 좋아합니다.

그때부터 노안 위로의 글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눈이 갔습니다. '가까운 것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멀리 보라는 뜻이고 기억력이 나빠지는 것은 불필요한 기억은 다 없애란 뜻이고… 어쩌고' 이런 거 말이죠. 그러다보니 오기가 납니다. '그럼 굳이 노안이라고 할 필요가 뭐있지? 기왕이면 혜안이라고 하지.' 말이라도 인심 쓰면 누가 압니까? 그전엔 어리석게 늙었더라도 이후엔 혜안을 키우려고 노력할지. 그 사람이 변하지 않을 땐 이렇게 욕하면 됩니다. "혜안까지 되신 분이…"라고. 그게 말의 힘이고 그 힘은 생각보다 큽니다.



말은 본질을 왜곡하기도 하고 고양하기도 합니다. 개념(Concept)이 뼈라면 말은 살과 같습니다. 요즘 교육계 갈등의 핵심인 일제고사, 무상급식은 일제시대와 토지무상분배를 떠올리는 표현들이라 보수진영을 자극했죠. 개념이란 뼈는 하난 데 말의 살이 달라지니 반응이 달라집니다.

기업에는 콘셉트의 힘을 적절한 말과 연결해 성공한 사례가 많습니다. 90년대 들어 보험아줌마를 '생활설계사'(Life Planner)라고 하니 많은 젊은 여성층이 몰려들었고 실제로 그녀들은 라이프플래너가 되었습니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아직도 그대로인데 만일 모닝케어리스트라고 했다면 아침 건강전문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90년대 대학교들이 무역학과를 '국제경제학과', 아동소비학과를 '가정경제학과'라고 하니 경쟁률이 높아지고 인적 자질이 달라지고 자부심(?)이 달라졌습니다. 변소-해우소-화장실 진화 이야기도 그런 건데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의 언어적 넛지(Nudge: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힘)죠.



'보보스' 개념을 만든 뉴욕타임스의 인기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2007년에 인생 4단계가 6단계로 바뀌었다고 썼습니다. 기존이 아동기-청년기-성년기-노년기였다면 이제는 아동기와 청년기 사이에 '오디세이기'를 넣고 성년기와 노년기 사이에 '활동적 은퇴기'를 설정해야 한다는 거죠. 오디세이기(期)는 목표를 찾아가는 창조적 방황기란 뜻인데 그 말을 백수한테 해주니 눈에 힘이 쫘악 들어갑니다. 40대들에게 활동적 은퇴기란 표현은 어땠을까? 쩝. 수심이 역력합니다. 활동은 안들리고 은퇴기만 들리는지. 필자도 덩달아 기분이 안 좋아집니다. '괘씸한 데이비드 브룩스! 기왕이면 오디세이 같은 용어를 붙일 것이지. 자기는 칼럼니스트라 은퇴기가 없다 이건가?'

황혼 불륜을 로맨스그레이라고 했던 멋스러움, 아줌마보다는 미시, 돈 잘 버는 노처녀를 골드미스라니 그들 인생이 얼마나 다르게 보입니까. 활동적 은퇴기 대신 '제2 오디세이'나 '노청년기'(Senior-Boy)라면 힘이 다시 불끈 솟지 않았을까요. 콘셉트와 말 하나로 수백 만명의 인생이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니 콘셉트와 말의 힘에 주목해봅시다. '철의 장막'이란 처칠의 한마디에 서방은 단결했고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로 무명에서 일약 대통령이 된 클린턴과 '변화' 한마디로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된 오바마, '나쁜 사람' 그 한마디로 상대를 몰아세우는 박근혜 전 대표가 언력입니다. 경영의 1분 경영, 1분 보고도 그것에서 착안한 겁니다.


우리 사회의 언어능력, 심각하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마침 그 좋은 실습 미디어가 나왔습니다. 140자 트위터나 모바일 문자 말입니다. 그를 활용해서 자기 생각을 촌철살인 핵심어로 옮길 수 있는 언력을 1∼2년 트레이닝 해봅시다. 단순한 감정 폭출(暴出)과 자잘한 일상나부랭이 수다, 선전과 비방으로만 쓰지 말고. 언어는 엄청난 사회적 자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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