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불법다운로드 막아낸 '숨은 주인공'

머니투데이 김만배 기자, 배혜림 기자 2010.07.06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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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고수를 찾아서]불법다운로드 막아낸 법무법인 화우 김원일 변호사


- 불법시장 규모는 수천억원대, 제작자는 1원도 이득없어서야
- 지적재산권 영역 점점 확대, 정기적인 관리해야 피해 방지


↑법무법인 화우 김원일 변호사 ⓒ유동일 기자↑법무법인 화우 김원일 변호사 ⓒ유동일 기자


몇 년 전만해도 웹하드에서 불법으로 다운로드 받은 최신 영화를 보며 주말을 보내는 네티즌들이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웹하드에서 영화 제목을 입력하면 '금칙어'로 지정돼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개봉 뒤 시간이 흘러 영화 파일이 올라오더라도 DVD 대여료만큼의 돈을 내야 다운로드할 수 있다. 합법적인 다운로드로 편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어 좋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이제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불법 다운로드 문제가 사회적으로 공론화한 것은 2008년부터다. 그 해 한국영화인협의회는 나우콤, 토토디스크 등 대표적 웹하드업체를 상대로 저작권침해금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1년여에 걸친 공방 끝에 법원은 가처분 인용을 결정했고,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저작물 유통시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 법정다툼에서 한국영화인협의회를 대리한 법무법인 화우의 김원일(47·사진)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는 영화파일 다운로드 서비스의 합법화를 이끈 숨은 주역이다.

그는 법정에서 온라인상의 불법 영화시장 규모가 수천억원에 육박하는데도 영화를 만든 저작권자에게는 단 1원도 돌아오지 않는 구조적 문제와 피해 사례를 낱낱이 알렸다. 기술적으로 혹은 현실적으로 저작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다던 웹하드업체의 주장이 힘을 잃었다.

김 변호사는 "웹하드의 불법 영화파일 다운로드 서비스에 제동을 건 그 소송 이후 적어도 주요 웹하드업체들은 합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이제 합법적인 다운로드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영화 '워낭소리', '해운대'와 같은 불법 파일 유출로 인한 피해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동일 기자ⓒ유동일 기자
◇'기저귀 특허' 소송 판결 뒤집어
김 변호사는 지적재산권이 국민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고 말한다. 그는 기저귀와 같은 소모성 생활용품에도 특허권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으로 2000억원대 '기저귀 특허' 소송을 꼽았다.

기저귀 특허 소송은 2008년 미국계 다국적기업 킴벌리클라크가 "용변 샘 방지용 날개(플랩)에 대한 특허를 침해했다"며 LG생활건강 등 국내 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유체투과성'(배설물을 통과시키는 성질)이 없는 킴벌리클라크 플랩의 특허를 침해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국내 업체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국내 업체를 대리한 김 변호사는 법정에서 기저귀를 쌓아놓고 배설물이 통과하는지 여부를 실험해 보였다. 유체투과성 개념의 허구성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항소심 법원은 국내 업체의 손을 들어줬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엑손 모빌의 계열사인 일본 톤넨사가 SK의 리튬이온전지 분리막 생산에 대해 특허침해중지 및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 역시 국내 지적재산권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성공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당시 SK를 대리해 톤넨사의 특허가 무효라는 판결까지 이끌어내며 통쾌한 한판승을 거뒀다.

이처럼 첨단기술에 민감한 지적재산권 전문가로서 잡식성 지식을 갖춘 김 변호사지만 때론 난관을 겪는 경우도 있다. 그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누군지 알지 못하는 다수에게 자신을 얘기하는 게 익숙치 않아서 그는 며칠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누군가가 "자니?"라고 말을 걸어왔고 그는 "말이 무서워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실시간으로 다수와 소통한다.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는 지적으로 게을러져서는 안 됩니다. 모든 새로운 것에 민감하게 반응해야죠. 첨단 기술을 찾아 익숙해지는 일은 실제로 아주 재밌습니다."

◇기업 보유 지적재산권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김 변호사는 사회가 정보화할수록 재화는 무형화하기 때문에 지적재산권의 영역은 점점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지적재산권 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기업이 어떤 종류의 지적재산권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유동일 기자ⓒ유동일 기자
"기술은 끊임없이 개량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회사가 정기적으로 지적재산권을 조사하고 목록화해야 합니다.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권리나 영업비밀로 관리해야 하는 사항을 방치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요."

그는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데 그리 큰 비용이 드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의 특허 등록비용은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영업비밀 기록을 일정한 장소에 보관하거나 영업비밀 서약서를 받는 등의 관리는 조금만 신경 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영업비밀 전직금지 규정 '부작용' 우려도
영업 비밀을 알고 있는 직원의 동종업계 전직 규정도 지적재산권 보호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최근 LG에서 삼성전자로 옮긴 한 임원이 영업비밀 보호를 위한 전직 제한 규정에 걸려 사직서를 제출하는 일이 있었다. 법원은 이 임원이 삼성전자에서 근무할 경우 하루에 200만원씩을 LG 측에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유사 소송에서도 법원은 일관된 판결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해당 규정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부작용을 우려했다. 그는 "근로자가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지 않고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전직을 과도하게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기업이 근로자를 정리해고하면서 전직을 금지하는 것 역시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요즘 영업비밀과 직원의 직업 선택의 자유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전직금지 기간에 보상을 제공하는 방법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며 "법원이 사회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정도의 불이익을 주는 전직계약에 대해서는 무효 판결을 내리는 등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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