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손실 집단소송 결국은…"

머니투데이 김만배 기자, 배혜림 기자 2010.06.22 09:23
글자크기

[법조계 고수를 찾아서]법무법인 지평지성 김지홍 변호사


- 손실 원칙적 투자자 책임, 소비자 부추겨 소송남발
- 결국은 투자자 부담증가, 법원도 금융 전문성 필요


↑법무법인 지평지성 김지홍 변호사 ⓒ이동훈 기자↑법무법인 지평지성 김지홍 변호사 ⓒ이동훈 기자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 금융상품 투자 손실을 보상해달라는 소송이 집단화하는 추세다. 집단소송은 고객보호에 소홀한 금융회사로부터 손실을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소액투자자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법. 소송의 남발은 금융회사의 운용비용 증가와 금융상품의 가격인상으로 이어져 결국 다수의 투자자가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는 원치 않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도 크다.

법무법인 지평지성의 김지홍(38·사진) 금융소송 전문 변호사는 집단소송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감정적 대응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일부 금융 전문가들이 집단소송을 부추기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당장은 소비자를 도와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소송에 따른 직간접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법원, 금융 전문성 키워야"= 법원 역시 집단소송에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고 말했다. 법원이 약자의 편에 선다는 생각으로 투자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놓을 경우 소송 남발의 한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김 변호사는 특히 법원이 빠르게 발전하는 금융 분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변호사가 아직도 재판부에 금융상품의 구조를 이해시키는 데 변론의 대부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이 금융소송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는 A생명이 투자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사업 관련 소송을 일례로 들었다. 부동산 PF 대출은 시공사의 책임준공에 대한 약속을 전제로 이뤄진다. 그런데 해당 사업에 참여한 시공사가 책임준공의 의무를 다하지 않자 A생명은 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하지만 1·2심 법원은 시공사가 시행사로부터 공사대금을 제때에 지급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준공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이 소송은 대법원에서 "시공사는 천재지변이 없는 한 무조건 약속기한 내에 준공해야 한다"는 취지로 파기 환송돼 고등법원에 계류 중이다.

김 변호사는 "하급심 재판부가 PF의 특수성을 오해해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어진 경우"라며 "금융은 경제사회에 윤활유를 제공하는 분야인 만큼 법조계 역시 새로운 금융상품의 개발과 거래, 이행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분쟁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 전산착오 책임인정 판결 이끌어= 김 변호사는 2005년 '주가지수옵션 거래에서 단순한 전산입력 실수로 손실이 발생했다면 해당 증권사가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판례를 이끌어내면서 금융소송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과거 전산입력 착오로 인한 증권사 간 분쟁은 대개 실수한 측에서 적정가에 역 매수하는 방식으로 조정이나 합의가 이뤄져 온 것이 관행이었다.

그는 주가지수옵션거래에서 직원이 실수로 코드번호를 잘못 입력해 70억여원을 손해 본 B증권사가 "착오로 인한 불공정한 법률행위이므로 취소해야 한다"며 C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C증권을 대리했다.

당시 재판부는 "C증권이 B증권의 착오를 고의로 이용해 이익을 취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거래만을 부당이득으로 판단해 반환하라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는 현물시장과 긴밀하게 연동되는 파생상품 거래에서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증권사에 경각심을 준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이동훈 기자ⓒ이동훈 기자
2008년 수 조원 이상 판매됐던 모 펀드의 손실 논란 당시에는 해당 펀드를 개발.판매한 D사를 자문, 금융감독원 산하 금융분쟁조정위원회 단계에서 집단소송 움직임을 미리 차단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D사와 투자자 간 의견 대립이 첨예해 전문가들도 D사의 과실이 없다고 선뜻 주장하기 힘든 상황이었다"며 "하지만 법령이나 약관 위반이 없다는 점을 납득시켜 소송으로 비화하기 전에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간첩단 누명 재심서 무죄 판결…공익활동 잊지 않아= 김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임관성적 4등으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수재다.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려면 우선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선배의 조언에 따라 로펌에서 법조계 첫 발을 내딛었지만 업무 외에도 여러 가지 공익활동을 하는 등 사회적인 임무를 잊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1980년대 최대 간첩단으로 불렸던 이른바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의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30년 동안 간첩 누명을 쓰고 살아왔던 피해자들에게 명예를 회복시켜 준 것이다. 김 변호사는 "금융에 대한 전문성을 갖춤과 동시에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며 "전체 업무의 극히 일부지만 재판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의 뿌듯함은 다른 어떤 사건 못지않다"고 말했다.

◇펀드손실은 '투자자 자기책임'= "펀드 손실의 책임을 둘러싼 분쟁은 여전히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소비자들은 손실을 조금이라도 보전하겠다는 생각에 펀드 판매사의 설명의무 소홀 책임을 묻는 소송을 계속 내는 거죠. 하지만 법원은 '펀드가입 서류에 자필 서명했다면 펀드 손실 책임은 투자자에게 귀속 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투자에는 높은 수익의 가능성만큼 높은 손실의 가능성도 따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처럼 '펀드 손실은 원칙적으로 투자자 자기책임'이라는 사실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김 변호사는 말한다. 펀드 판매사도 직원들에게 투자 위험성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하고 관련 서류를 꼼꼼히 챙겨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또한 금융시장이 효율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법조계가 규범과 가치를 제공하는 정책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금융상품과 시장은 급속도로 변화하는 반면 민법과 상법의 법리는 그에 따라오지 못해 새로운 법리 개발과 해석이 절실하다"며 "학계와 실무계, 법원이 금융시장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금융거래를 정착시킬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