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 불필요한 진입장벽 없애야"

머니투데이 김만배 기자, 배혜림 기자 2010.06.29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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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고수를 찾아서]법무법인 율촌 한봉희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한봉희 변호사 ⓒ이명근 기자↑법무법인 율촌 한봉희 변호사 ⓒ이명근 기자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던 1차 외환위기 때 해외 투자자들이 군침을 흘리던 투자 1순위 대상은 한국의 부동산이었다. 당시 해외 투자자들은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며 매물로 나온 한국의 업무용 빌딩을 닥치는 대로 사들여 엄청난 차익을 남겼다.

하지만 10여년이 흘러 글로벌 금융 위기를 맞은 최근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 부동산 시장이 잔뜩 움츠러든 데다 가격 거품마저 빠져 기대 수익률이 대폭 낮아지면서 해외 투자자의 발걸음은 거의 끊기다 시피 했다. 국내 부동산 시장도 거래가 실종되면서 국내외 부동산 투자는 빙하기를 맞은 형국이다.



법무법인 율촌의 한봉희(52·사진)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해외 투자자들이 국내 부동산에 눈을 돌릴 수 있도록 분위기를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한다. 부동산에 대한 투자는 외자유입 효과가 클 뿐 아니라 제조업체를 끌어 들이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경험 많은 임차인을 통해 건물을 개발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도 있고 '큰 손'들의 투자기법을 배우는 부수적 효과도 올릴 수 있다.

해외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려면 국내 부동산 시장의 불필요한 진입장벽을 없애야 한다는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한국 부동산 시장에 투자하겠다는 외국기업이 많은 것은 확실합니다. 광화문과, 여의도, 강남에는 개발을 필요로 하는 빌딩들이 많습니다. 오피스와 리테일 부문에 대한 투자를 이끌어내려면 투자 과정에서의 불합리한 규제를 줄여야 합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취·등록세와 법인세를 줄이는 등 세제를 합리적으로 개편해야 합니다."

세율이 지나치게 높으면 탈세의 유혹도 커진다는 게 한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는 '인·허가를 받으려면 도장 수 백 개를 찍어야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복잡한 절차를 개선하는 일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명근 기자ⓒ이명근 기자
◇"세계적 기업의 부동산 투자, 내 손 안에"
한 변호사는 국내외 투자은행과 부동산펀드, 자산운용회사의 대형 부동산 거래 자문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업무용 부동산 거래인 모건스탠리의 대우센터(현 서울스퀘어) 매수 거래를 비롯해 론스타의 역삼동 스타타워(현 강남파이낸스센터) 매수, 메릴린치의 SK빌딩 매수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한 변호사는 부동산 분야에 첫발을 내딛었을 당시 자신의 모습을 '일벌레'라고 회고했다. 그는 1998년 골드만삭스의 부실채권 매입 자문 업무를 전담했을 때 호텔에 워룸(war room)을 차려놓고 일에 몰두하느라 2개월 동안 집 구경은 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하루 세 차례 실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잠은 그야말로 사치였다.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잔 기억이 없다.

"육체적으로는 고생했지만 골드만삭스라는 최고의 고객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게 감개무량했죠. 천하를 다 얻은 것 같았습니다. 덕분에 메릴린치와 GE캐피탈, 모건스탠리 등 세계적인 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하게 됐습니다. 힘들었던 경험이 저를 키워준 거죠."

한 변호사는 국제무대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세계적인 금융·법률 전문지 'IFLR'에서 2009년 '부동산 분야를 이끄는 변호사'로 선정됐다. 영국의 법률 저널인 'PLC: Which Lawyer'에서는 2006년부터 부동산 분야 추천 변호사로 매년 그를 선정하고 있다.

◇해외부동산 투자, 안전하고 신중하게
"우리가 아파트 한 채를 살 때도 내부 구조와 지리적 요건 등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차례 찾아가잖습니까. 하지만 해외 부동산은 자주 가서 보기 힘들기 때문에 개인투자자는 직접투자보다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가 바람직합니다. 기관투자자는 인구가 많은 도시의 랜드마크 건물을 살 것을 권합니다. 주요 입주자가 안정적이고 본사로 사용하고 있다면 투자할 만합니다."

한 변호사는 국민연금이 HSBC 본사빌딩인 영국 런던의 'HSBC타워'를 인수하고 국내외 기관투자자로 구성된 금호종금 컨소시엄이 미국 뉴욕의 상징적 빌딩인 AIG 본사빌딩을 인수한 투자를 성공사례로 꼽았다.

그는 투자에 위험이 따르거나 법률의 예측가능성이 낮은 국가에서는 반드시 변호사의 조력을 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 대기업과 개발사들이 현지인을 통해 땅을 사면서 대뜸 거액의 돈을 송금했다가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식 투자승인을 받기 전 돈을 지급했다가 투자금으로 인정받지 못해 사업이 난항을 겪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명근 기자ⓒ이명근 기자
한 변호사는 "현지 세법과 공정거래법 등 법령의 개정, 인·허가 절차 등에 대한 정보를 수시로 확인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면서 "해외 진출할 때 가장 믿을 수 있는 파트너는 변호사라는 점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민말고 한국 로펌 찾아라"
한 변호사는 변호사 10명으로 시작한 율촌을 20여배 규모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이제 그는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율촌을 글로벌 로펌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또 한 차례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외국인의 국내 투자와 우리의 해외 투자가 더욱 활발해질 미래를 예측하면 '국제 M&A' 분야의 전문가를 늘려야 합니다. 이를 위해 외국어 실력 배양은 기본입니다. 앞으로 영어와 중국어를 비롯해 러시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에 능통한 사람이 귀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한 변호사는 거의 매일 새벽 중국어 수업을 듣고 업무를 시작한다. 짬이 나면 스페인어와 일본어를 독학한다. 후배들도 덩달아 외국어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는 것은 그의 또 다른 주문. 변호사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면 전공 분야를 2~3번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한 변호사 역시 1987년 지적재산권 전문가의 길을 택해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았으나 10년 만에 부동산 분야로 과감히 발길을 돌렸다. 그는 "해외 로펌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 변호사는 로펌이 도약하려면 기업과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한국의 로펌이 해외 유수의 다국적 로펌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실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기업 역시 한국 로펌의 활동 반경을 넓혀주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한 변호사는 "우리 로펌이 한국의 이슈에서 벗어나 전 세계 시장의 큰 그림을 볼 수 있도록 성장해야 한다"며 "투자자들에게 고민하지 말고 한국 로펌의 문을 두드리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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