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는 왕자를 어떻게 얻었을까

머니투데이 황인선 KT&G 부장 2010.06.1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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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톡톡]'주름'을 보듬는 '낮은 음성의 위로'를

신데렐라는 왕자를 어떻게 얻었을까


"인생 16년 금방이야." 큰아들 녀석이 동생에게 툭 던집니다. 그보다 3배 더 산 이 몸이 쳐다보자 "아빠, 벌써 열여섯살이에요. 휴" 합니다. 이제 겨우 20대 대학생들도 "저 이제 곧 스물다섯살 된다고요. 휴" 합니다. 여자들은 더 심하죠. 하루하루를 보면 꽤나 길지만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면 찰나처럼 느껴지는데 왜 지나간 세월은 그렇게 빠르고 짧게 느껴지는 걸까요?

'주름효과'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종이부채 아시죠? 접으면 한손에 들어가지만 펼치면 매우 넓어지듯이 지나간 세월은 우리의 기억 속에 접혀버려서 마치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산을 탈 때 멀리 높은 자리에서 보면 짧아 보이지만 실제 걸어보면 많이 다르죠. 군데군데 숨어있는 계곡들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산의 주름들이죠.



우리가 지나서 바라보는 시간,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통과의례나 의미있는 사건들만 요약본으로 기억되니 거기에 묻힌 수십만 주름의 시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한번 스스로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보면 내세울 거 몇 개 안됩니다. '내가 겨우 이거 하느라고 10년을 보냈나?' 싶습니다. 그러나 그 세월의 사이에 숨은 주름을 쫙 펴보면 망설임과 게으름, 평범한 것에 집착, 미로 속 헤맴, 반대자와 싸움, 뜻밖의 일로 원점회귀나 퇴행한 일들이 곳곳에 숨어있을 겁니다.

이런 것들이 다 시간의 주름 속으로 숨어버려서 '그 많은 시간에 뭐했나?' 하는 회한이 들죠. 이 주름현상을 마케팅이나 커뮤니케이션에 적용해보면 의외의 시사점이 있습니다.



마케터들은 브랜드를 개발하고 소비자 니즈를 파악하려고 몸부림치지만 대부분 숨은 주름, 계곡들을 보지 못하고 돌출된 봉우리만 보는 '주름 무시의 오류'를 저지릅니다. 그러니 소비자 니즈의 스펙트럼이 과거의 세월처럼 짧게만 보입니다.

조사의 한계는 바로 이 주름들을 보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흔히 20대 타깃들을 겨냥하는 마케터들은 20대를 도전적, 미래지향, 어번라이프(Urban Life), 세련이라고 정의합니다. 20대가 정말 그런가요? 20대의 주름인 불안감, 의타심, 현실성을 모르면 이런 뻔한 공략은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풍요가 있으면 상대적 빈곤감도 커지게 마련인데 그게 바로 풍요사회의 주름입니다. 요즘 부쩍 공감, 공감하는데 공감의 마케팅이 바로 그 주름을 보듬는 마케팅입니다. 상상해봅시다. 주름진 여성들의 로망인 신데렐라가 왕자의 마음을 어떻게 얻었을지. 미모, 유리구두, 세련된 춤? 무도회엔 왕국 최고의 미녀, 귀공녀들이 모였을 텐데 설마. 음악평론가 임진모씨가 타이거 우즈가 외도한 대상 대부분이 그의 아내보다 집안, 학벌, 미모가 떨어지는 데도 "그녀들에게 타이거 우즈의 마음이 쏠린 것이 왜일까"라며 힌트를 준 적이 있는데 모든 것을 다 갖춘 도도한 아내가 아니라 평범한 그녀들의 '낮은 음성의 위로'에 성공남들은 무너진다는 겁니다. 수줍게 엉거주춤 앉아있는 신데렐라. 그 이색상품에 호기심을 느낀 왕자가 춤을 청했을 때 신데렐라는 왕자의 귀에 바로 이 '낮은 음성의 위로'를 전했을 겁니다. "저에겐 왕자님의 외로움이 보인답니다"라고. 더 가질 것이 없어 외로운 왕자의 주름을 보듬은 거죠. 그 대가로 유리 구두의 신화는 완성됩니다.


대한민국의 주름, 더이상 오를 데 없는 김연아의 주름, 4500만 한국인의 기대를 진 허정무의 주름, 대기업 CEO의 주름, 40대 가장의 주름…. '디자인 수도'의 꿈 아래 묻힌 강북민들의 주름. 누구나 주름은 있는 법인데 마케터들, 경영자들, 정치가들은 이런 주름에 어떤 낮은 음성의 위로를 들려줄 건가요? 이번 선거의 최대 수혜자인 야당은 한번 잘 새겨보기 바랍니다. 주름을 보듬는 '낮은 음성의 위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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