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주택분양시장의 서브프라임

머니투데이 이용만 한성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2010.06.1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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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주택분양시장의 서브프라임


2008년 서브프라임(sub-prime mortgage) 부실로 미국 금융시장이 파멸 직전에까지 가자 우리나라도 서브프라임 부실과 같은 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곧 기우로 끝났다. 세계 금융시장의 패닉으로 우리나라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지만 우리나라의 낮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수준 때문에 주택담보대출시장이 붕괴되는, 그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부실과 같은 위기가 오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높은 LTV와 차입자의 상환능력 감소, 그리고 전략적 파산이 가능한 법적 환경이 그것이다. 이런 조건 하에서 차입자의 원리금 지급능력이 떨어지면 차입자는 쉽게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게 된다. 남아있는 채무를 상환하느니, 차라리 담보로 잡힌 주택을 금융기관에 넘겨주는 것이 낫다고 보는 것이다. 차입자의 이런 행동은 결국 금융기관의 부실과 주택시장의 침체로 연결되어 파국을 맞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이 3가지 조건 중 적어도 2가지 조건은 충족되지 않는다. 낮은 LTV와 전략적 파산이 허용되지 않는 법적 환경이 그것인데, 이 때문에 차입자의 상환능력이 극단적으로 약화되지 않는 한 주택담보대출의 대량 부실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런데 최근 주택분양시장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서브프라임 부실과 같은 파국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주택분양시장의 분양대금 지급구조를 보면 5% 수준의 계약금, 50∼60% 수준의 중도금대출, 입주시 잔금납부 구조로 돼 있다. 시행사들은 계약금 수준을 낮추고, 중도금대출에 대한 이자를 주택 완공시까지 대납하는 방식으로 수분양자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법으로 미분양문제를 해결하려다보니 이런 지급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 구조는 주택이 완공되기 전까지 잘 유지돼왔다. 시행사는 수분양자의 이름으로 대출받은 중도금대출로 공사비를 지급하고, 대출이자도 대납하면서 사업을 유지해온 것이다. 그런데 주택이 완공되자 상황이 복잡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주택이 완공되면 수분양자는 그동안 시행사가 대신 내주던 중도금대출에 대한 이자를 직접 내야 할 뿐만 아니라 잔금도 치러야 한다.

문제는 수분양자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대체수요자들이 잔금과 대출이자를 치를 능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이들은 기존 주택을 팔아 잔금을 치르고 신규주택에 입주하고자 했는데, 재고주택 거래가 완전히 얼어붙으면서 잔금은 고사하고 중도금대출에 대한 이자조차 지급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진 것이다.
 
여기에다가 주택가격이 하락하자 일부 수분양자는 전략적 파산까지 고려하는 것같다.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낸 60% 정도의 돈 중 자기자본은 계약금 5% 정도니, 주택담보대출로 보자면 LTV가 90% 정도 되는 셈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는 계약금을 포기하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에서 분양계약을 해지해달라며 중도금대출의 이자지급을 거절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일부 수분양자가 중도금대출의 이자를 지급하지 않자 그 불똥이 시행사에 떨어졌다. 시행사는 수분양자가 중도금대출을 받을 때 지급보증을 해주었기 때문에 금융기관들이 시행사에 대위변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시행사는 중도금으로 받은 대출금을 대위변제해주고 수분양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면 되지만 문제는 시행사 역시 대위변제해줄 능력이 안 된다는 데 있다. 이러다보니 시행사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중도금대출에 대한 이자를 대납해가면서 파국을 막고 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 불안정한 균형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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