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스마트, 계량화의 한계를 넘어라"

머니투데이 진상현 김태은 기자 2010.05.0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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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스마트 연구회 2차 회의]직원들의 열정, 이타적 조직 문화 등 중요

미국의 한 제약회사는 독특한 업무 처리 지침을 갖고 있다. 다른 부서에서 업무 협조 요청이 오면 자기 부서 업무를 제쳐 놓고 먼저 처리해 줘야 한다. 이 원칙은 특정 지원부서가 아니라 사내 전 부서에 적용된다. 이타적인 조직 문화를 심기 위해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다. 조직 내에 협력하는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진정한 '워크스마트(똑똑하게 일하기)'가 실현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개개인이 '스마트'하게 일하는 것과 조직 전체가 '스마트'한 것과는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지난달 머니투데이와 삼성경제연구소가 함께 출범한 워크스마트 연구회가 지난달 27일 저녁 삼성생명서초타워에서 2차 모임을 갖고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연구회는 매월 1회 오는 10월까지 '워크스마트 실현 방안'에 대한 논의를 계속한다.



이날 참석자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본질에 대한 이해, 일에 대한 열정, 이타적인 자세 등 정신적인 부분, 계량화하기 힘든 부분 역시 워크스마트 실현을 위해 중요한 요소라고 입을 모았다.

◇개인의 스마트가 아닌 우리의 스마트=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생각하는 워크스마트'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한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는 "개인이 아닌 '우리'가 스마트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매출, 영업이익 등 일반적으로 기업이 중요시하는 계량적 가치 외에 계량화하기 힘든 가치, 직원들의 열정이나 이타적인 조직 문화 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상수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평가하고 체크하는 시스템들은 대체로 성악설에 근거하고 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구미 기업들이 이런 쪽으로 접근을 했었다"며 "최근에는 창의성과 열정 등 측정할 수 없는 부분의 가치에 주목하는 성선설적인 접근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장상수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장상수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김 교수는 '계량화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로버트 맥나마라 전 미국 국방장관의 베트남전 실패 사례를 들었다. 맥나마라 전 장관은 하버드대 조교수, 포드 사장 등을 거친 계량분석기법의 대가다. 국방장관 때 그는 중앙정보국(CIA)에 특별전담반을 설치, 베트남에서 이뤄진 폭격기의 출정횟수, 월별 폭탄투하 종류, 폭탄투하의 위치와 수 등을 분석하는 이른바 `전쟁의 계량화'를 통해 베트남전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정글'이라는 '변수'가 있는 베트남에서는 이런 계량적 접근은 치명적인 오판으로 판명됐다.

김 교수는 "애플 직원들의 이혼율이 급증하는 것을 보고 '애플의 위기'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며 "경영자들은 보이지 않은 가치에 대해서도 항상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병하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기업을 운영하는데 있어 성선설과 성악설 적인 접근 모두 고려돼야 한다"며 "관리자 입장에서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문형구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원장. ↑문형구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원장.
이타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김 교수는 "어떤 성과를 냈을 때 자기의 공이라고 내세우지 않아도 되는 문화를 만들면 성과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며 "성과를 측정하고 참여자, 기여 정도 등을 따지다 보면 '남 좋은 일은 안 한다'는 조직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문형구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협력과 경쟁이 공존하는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지를 고민해야 한다"며 "A급 인재 뿐 아니라 B급 C급 인재까지 활용하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나는 왜 이일을 하고 있는가?"= 직원들에게 '자신이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철학을 갖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구성원들이 일의 목적과 목표, 이유, 가치를 분명히 하고 이것을 공유해야 동기 유발이 되고 열정을 갖고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선진 기업들만 보고 뛰던 국내 기업들이 이제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할 단계에 올라서면서 방향성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방향성이 없으면 스피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CEO들도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직원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프라이드(자부심)'가 있어야 열정을 갖고 일에 몰입할 수 있다"며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모르고 일하는 경우에는 스트레스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병하 삼성경제연구소 상무. ↑이병하 삼성경제연구소 상무.
지쳐있는 현장의 직원들에게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어떻게 심어줄 것인가 하는 실행 방안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참가자는 "기업 현장에 가면 직원들의 에너지가 '고갈'돼 있는 경우가 많다"며 "정신적인 가치가 중요하지만 어떻게 이를 끌어내느냐는 실행 방안에 대한 고민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리더들이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 조직이 '스마트'해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가 언급한 어린아이는 철학자 니체가 정의한 인간 정신 발단 단계의 최종단계를 말한다. 니체는 인간 정신의 발달 과정을 의무와 복종을 상징하는 낙타의 단계, 부정과 자유의 정신을 뜻하는 사자의 단계, 망각과 창조를 의미하는 어린아이의 3단계로 나누고 있다.

김 교수는 "어린아이의 특징은 잘 잊어버리고, 몰입하는 것"이라며 "실패이든 성공이든 리더가 빨리 잊고 다시 새로운 일을 즐기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어야 조직이 스마트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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