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시장]전교조 명단공개와 보수정당

머니투데이 정기동 변호사 2010.05.0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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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시장]전교조 명단공개와 보수정당


“알권리와 학습권을 위해 공개하겠다.”
“알권리와 관련 없는 개인정보이고 단결권의 문제다.”

교원단체나 교원노조에 가입한 교사의 명단 공개문제는 이처럼 처음엔 공개 자체의 타당성이 쟁점이었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1심 법원은 공개금지결정을 함으로써 후자의 손을 들어줬다. 교사의 노동조합 가입과 학생·학부모의 권리 사이의 사회적 논쟁이 가닥을 잡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법원의 결정에 따르지 않고 명단을 공개했다. 법원은 전교조의 신청을 받아들여 명단 공개를 거듭 금지하면서 이를 위반할 때에는 하루 3000만원을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조 의원은 법원의 결정은 정치와 국회에 대한 사형선고라며 맞서 싸워 나가겠다고 했다.



스토리가 여기까지만이었고 이것뿐이었다면, 그래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조 의원은 전교조 교사의 명단 공개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책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이른바 ‘확신범’이다. 비록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긴 하지만 법원의 결정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자신에게 가해질 불이익을 모두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정치적 양심을 지키겠다는 것이니, 그 차원에서 이해해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토리는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그 뒤 같은 당 정두언 의원이 법원의 결정을 ‘조폭판결’이라고 하고, 드디어는 김효재, 차명진 등 같은 당 의원 15명이 “조 의원 혼자 고통을 당하게 할 수 없다”며 명단 공개에 동참하기로 하면서 사태의 성격은 질적으로 달라져 버렸다. 그전까지는 법원의 결정과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의 한계, 교원노조의 자기정보 결정권과 학부모의 권리 등을 둘러싼 정책적, 법리적 논쟁이었다면 이제는 법치주의 자체의 문제가 돼버렸다.



이 사회의 질서와 가치를 존중하는 정당이라면, 즉 한나라당이 제대로 된 보수정당이라면, 내심 법원 결정을 결코 수용하지 못하더라도, 명단공개를 유보하고 상급법원에 이의를 제기했어야 할 일이다. 상급법원조차도 공개를 금지한다면 관련 법률을 개정하여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기존 질서의 수호를 으뜸 강령으로 삼는 보수정당의 도리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조폭판결’이라고 비난하더니(단독판사가 아니라 3인 합의부여서 조폭인가), 무리를 지어 법원 결정을 농락한다. ‘그래? 내 배도 한 번 째 봐’라며 15명이 떼거리로 웃통을 벗어젖힌 꼴이다. “조 의원 혼자 고통을 당하게 할 수 없다”는 의리의 내면이 이와 얼마나 다를까.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확립한 가치를 이렇게 우습게 뭉개버리니, 한나라당은 도대체 생각이 있는 정당인가. 한나라당 안팎의 우리 사회의 보수주의자들은 지금 뭘 하고 있는가? 사람들은 이런 한나라당을 조폭정당이라고 조롱하지만, 조폭은 규율이라도 있다.

한 가지 더. 떳떳하다면 왜 공개하지 않느냐고 한다. 과연 그런가? 우리는 내가 떳떳하다면 어떤 불이익이 있어도 다 공개하며 살고 있고, 그래야만 올바른 것인가? 떳떳하지 못하니 숨기는 것 아니냐는 주장은 기득권을 가진, 전형적인 강자의 논리다.


법이 교원노조 가입 교사에게 공개의무를 부과하고 있지 않다면 조합원 교사들 외에는 누구도 공개를 강요하여서는 안 된다. 전교조에 반대한다고 하여 공개를 강요하게 되면, 언젠가는 그 칼끝이 바로 나를 겨누게 될지도 모른다.

나라고 하여 항상 다수와 강자의 편에 선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그 끝에 있는 건 반대자와 소수자, 차이와 다양성을 용인하지 않는, 우리가 이미 수십 년을 겪어본 사회가 아닌가? 그것으로도 부족한가? 역사의 수레바퀴는 거꾸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불변의 명제가 아니라, 그렇게 믿는 당대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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