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아카데믹 거품과 저널리즘 거품

이용만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 2010.04.2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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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아카데믹 거품과 저널리즘 거품


세계 금융위기 이후 빠른 회복세를 보이던 주택가격이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자 주택가격에 끼어 있던 거품이 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것 같다. 몇몇 금융기관 산하 연구소의 보고서에서 촉발된 주택가격 거품론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에 따른 주택가격의 장기 침체론과 결합하면서 더욱 그럴싸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주택가격 거품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과거 주택가격이 하락할 때쯤이면 항상 나온 주장이라는 점이다. 2003년쯤이 그랬고, 2006년 무렵이 그랬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무렵이 그랬다.



가격거품(price bubble)이란 자산가격이 자산의 내재가치를 초과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자산의 가격과 내재가치간 차이를 거품이라고 하는데, 이 거품은 지속적으로 팽창하다 어느 순간 터지는 특징을 갖고 있다.

가격거품의 정의는 이렇듯 간단하지만 실제 거품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은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자산가격은 관찰되지만 자산의 내재가치는 관찰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부동산처럼 현금흐름이 확정되어 있지 않고 영속적인 자산은 내재가치를 측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 학자는 거품을 직접 측정하지 못하고, 자산가격의 실제 움직임과 내재가치의 이론적인 움직임을 상호 비교하여 거품의 존재 여부를 판정하곤 한다. 이처럼 거품의 존재 유무를 확인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판인데, 거품의 크기를 측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쉽게 거품의 존재는 물론이고 거품의 크기까지 이야기한다. 이렇게 쉽게 거품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동안은 몰랐다는 말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그런데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거품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품의 정의가 학문적인 정의와 사뭇 다르고, 심지어 거품을 이야기하는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주택가격이 적정 수준보다 높으면 거품이 있다고 본다. 주택가격이 적정 수준보다 높거나 낮은 이유는 다양하다. 가격이 내재가치의 변화를 제때 반영하지 못할 때도 있고, 가격이 과잉반응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괴리는 자산시장에서 흔히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괴리가 지속적으로 커지는 거품과 다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주택가격이 상승하면 거품이고,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거품이 꺼지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렇다보니 주택의 내재가치가 상승하여 가격이 상승하는 것조차 거품이라고 칭한다. 대표적인 예가 금리하락에 따른 주택가격 상승을 거품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순환변동에 의한 주택가격의 오르고 내림조차 거품으로 해석이 되니 도대체 무엇이 거품이고 무엇이 일시적인 가격변동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결국 우리는 서로 다른 용어로 거품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학문적으로 이야기하는 거품(아카데믹 거품)과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거품(저널리즘 거품)이 서로 다른 것이다. 이는 비단 언론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저널리즘적인 거품으로 거품론을 이야기하고 거품의 붕괴를 언급하곤 한다.

지금 주택가격 하락이 거품붕괴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순환변동적인 것인지, 장기적인 추세변동에 의한 것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우리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고, 그런 만큼 정책수단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통틀어서 거품이라고 이야기해 버리면 거품을 이야기하지 않으니만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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