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존망을 좌우하는 것은=리스크관리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김지민 기자 2010.04.19 11:47
글자크기

[2010 금융강국코리아, 1부 리스크관리]<1-2>

2008년 10월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 금융시장의 지형을 바꿔 놓았다. 5대 투자은행이 사라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리먼브라더스는 파산했고,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했다. 태양이 지지 않는 금융제국 씨티그룹은 비핵심 사업부문을 매각하고 구조조정을 겪으며 규모가 쪼그라들었다.

반면 JP 모건 체이스와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는 각각 메릴린치와 베어스턴스를 인수했다. 덩치도 키웠고, 사업 영역도 다각화했다. 웰스파고 역시 대형은행 와코비아를 인수해 자산기준 미국은행 순위가 6위에서 4위로 뛰어올랐다.



어떤 곳은 파산하거나 피인수되며 몰락했고, 위기를 시장 지배력 강화의 기회로 삼은 곳과의 차이는 뭘까. 리스크 관리의 성패가 글로벌 금융회사의 운명을 갈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금융회사는 리스크를 고려해 각종 전략을 짜야 한다. 리스크 관리 목표도 명확해야 한다. 리먼은 리스크관리의 역할을 과소평가했다. 수익창출의 보조수단으로만 여겼다. 서브프라임(비우량주택담보대출) 투자자산에 부실징후가 나타났지만, 오히려 수익성만 추구하며 레버리지 비율을 높였다.



반면 JP 모건 체이스는 리스크 분석 결과 모기지 사업을 과감히 포기했다. 수익성은 좋지만, 위험요소가 너무 많다고 본 탓이다. 골드만삭스 역시 모기지 사업이 불확실해지자 위기 발생 전인 2006년 말 철수했다. 사업전략과 리스크관리 사이에 견제와 균형이 자리 잡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은행의 존망을 좌우하는 것은=리스크관리


리스크관리위원회의 독립적 운영도 눈여겨볼 만하다. 리스크관리 부서의 조직 내 위상도 관건이었다. 그래야 경영진에 대한 견제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JP 모건 체이스는 수익성을 무릅쓰고 연체율이 늘자 모기지 업에서 철수하도록 할 정도로 리스크관리 부서의 위상이 높았다.

골드만삭스는 사업부서와 리스크관리 부서 간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두 부서 사이 인사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진 탓이다. 리스크 담당이 사업부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효과적인 견제업무 수행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로 인해 이사회는 모기지상품의 초기 손실 보고를 받고 이상 징후를 파악, 신속히 포지션을 축소하도록 지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리스크관리 부서가 경영진을 견제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운영된 곳은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리먼브라더스는 리스크관리위원회가 1년에 2차례 형식적으로 개최됐다.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견제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씨티그룹은 투자부서장과 리스크관리부서장의 사적 친분 관계로 견제기능을 상실했다.


메릴린치는 리스크관리책임자(CRO)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채담보부증권(CDO) 등의 리스크를 CEO에 보고했다. 결과는 JP 모건 체이스나 골드만삭스와 달랐다. 해당 임원은 해고됐고, CRO와 모기지 담당자를 CEO 측근으로 배치했다. UBS 역시 자금부서의 모기지와 CDO 한도 설정 요구가 투자은행 부서의 반대로 무산됐다.

거래상대에 대한 한도 설정도 중요했다. 스위스의 거대 금융그룹인 UBS가 대표적이다. CDO 투자한도와 거래상대에 대한 한도를 설정하지 않은 채 과다한 투자에 나섰다 낭패를 봤다. 투자한 자산유동화증권(ABS) 기초자산의 95% 가량이 미국에 편중됐다. 영업 전략과 정책을 만들 때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국내로 시각을 돌려보면 1980~1990년대 은행산업을 주도했던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가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살아남은 곳이 없다. 관치금융으로 자율경영의 한계가 있었지만, 은행의 기본인 대출심사나 리스크관리 기법 개발에 소홀했다. 은행들은 예대율(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이나 유동성 비율 관리를 제대로 안 하다 금융위기 때 외환위기 이후 11년 만에 다시 정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우리은행은 2005~2007년 CDO 등 파생상품에 15억4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1조5000억 원의 손실을 봤다. 리스크관리심의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등 리스크관리와 내부통제가 철저하지 못했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었다. 한국투자증권도 CDO 투자에 나섰단 손실을 입었고, 키코(KIKO)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하나은행도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