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과 절이 된 요정 '대원각'

머니투데이 김태은 기자 2010.03.11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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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영한ⓒ길상사↑고 김영한ⓒ길상사


법정(法頂·78)스님이 11일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지병인 폐암으로 투병해온 법정스님은 이날 낮 입원중이던 삼성서울병원에서 길상사로 옮긴직후인 오후 1시51분께 열반에 들었다. 서울 성북2동에 위치한 길상사는 1997년 세워졌다.

길상사는 본래 고급요정 ‘대원각’이었다. 80년대말까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3대요정으로 꼽히며 밀실정치에 이용됐던 곳이다.



대원각의 주인이었던 고 김영한(1916~1999)이 법정에게 시주해 절을 만들어주기를 청하면서 길상사가 탄생했다. 16세때 조선권번에 들어가 '진향'이라는 기생이 됐던 그는 대표적 근대시인 백석(1912~1995)의 연인이기도 했다. 백석에게 자야(子夜)라고 불리웠던 그는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내 사랑 백석' 등의 저술을 냈다.

김영한은 법정스님의 대표적인 산문집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당시 시가 1000억원에 달했던 7000여평 절터와 전각을 내놓았다. 사양하는 법정스님을 10년에 걸쳐 설득해 그 뜻을 이루었다고 한다.



97년 12월14일 길상사가 개원하던 날, 김영한은 법정스님으로 부터 염주 하나와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만을 받았다. 수천 대중 앞에서 단 두 마디를 남겼다.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99년 11월14일 타계한 그는 하루 전날 목욕재계하고 절에 와 참배하고 길상헌에서 생애 마지막 밤을 묵었다고 전해진다. 다비후 유골은 유언대로 길상헌 뒤쪽 언덕바지에 뿌려졌다.


한편 ‘무소유’를 비롯 ‘버리고 떠나기’, ‘산에는 꽃이피네’ 등 대중서 20여권으로 깊은 울림을 남긴 법정스님은 한동안 길상사의 회주를 맡았다. 그외에는 그 흔한 사찰주지 한번 지내지 않으며 ‘무소유’를 실천한 삶을 살았다.
↑길상사에 위치한 고 김영한을 기리는 공덕비ⓒ길상사 ↑길상사에 위치한 고 김영한을 기리는 공덕비ⓒ길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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