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영한ⓒ길상사
지병인 폐암으로 투병해온 법정스님은 이날 낮 입원중이던 삼성서울병원에서 길상사로 옮긴직후인 오후 1시51분께 열반에 들었다. 서울 성북2동에 위치한 길상사는 1997년 세워졌다.
길상사는 본래 고급요정 ‘대원각’이었다. 80년대말까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3대요정으로 꼽히며 밀실정치에 이용됐던 곳이다.
김영한은 법정스님의 대표적인 산문집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당시 시가 1000억원에 달했던 7000여평 절터와 전각을 내놓았다. 사양하는 법정스님을 10년에 걸쳐 설득해 그 뜻을 이루었다고 한다.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99년 11월14일 타계한 그는 하루 전날 목욕재계하고 절에 와 참배하고 길상헌에서 생애 마지막 밤을 묵었다고 전해진다. 다비후 유골은 유언대로 길상헌 뒤쪽 언덕바지에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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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무소유’를 비롯 ‘버리고 떠나기’, ‘산에는 꽃이피네’ 등 대중서 20여권으로 깊은 울림을 남긴 법정스님은 한동안 길상사의 회주를 맡았다. 그외에는 그 흔한 사찰주지 한번 지내지 않으며 ‘무소유’를 실천한 삶을 살았다.
↑길상사에 위치한 고 김영한을 기리는 공덕비ⓒ길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