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고객없고 은행만 있는 코픽스대출

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2010.02.23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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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금리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금리 때문에 상품 출시가 미뤄지는 건 아니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곧 나올 겁니다."

새 주택담보대출 기준금리인 코픽스(COFIX. 자본조달비용지수)가 발표된 지 1주일이 지나도록 관련 상품이 나오지 않아 목소리를 높이는 고객에게 돌아오는 판에 박힌 은행의 답변이다.

지금까지 기업은행과 SC제일은행만 상품을 내놓았을 뿐 내로라하는 은행들은 언제 내놓겠다는 일정조차 제시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두 은행의 코픽스 대출상품도 기존 상품보다 금리인하 효과가 크지 않아 고객들의 냉대를 받고 있다.



'빅4 은행' 등이 코픽스 상품을 내놓지 않고 대신 내놓는 핑계는 가지가지다. "상품 완성도를 높여야 해서"(A은행), "전산 적용 문제 때문에"(B은행), "내부 심의가 지연돼서"(C은행)…. 스스로 귀를 의심해볼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변명이다.

코픽스가 공시되기 전에 "상품 설계를 이미 끝냈다. 기준금리만 나오면 가산금리를 더해 곧바로 상품 출시가 가능하다"고 호언장담하던 모습은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은행들이 코픽스 대출상품을 내놓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은행 마진을 결정하는 '가산금리'(스프레드)를 결정하지 못 해서다. 수익을 생각한다면 가산금리를 높게 정할 수 있지만, 금리가 떨어지기를 바라는 당국과 고객의 눈치를 보자니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는다.

은행들 사이에선 "기업은행이 당국의 코픽스 대출금리 낮추기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금리를 너무 내리는 바람에 시중은행들의 입장만 난처해졌다"는 볼멘소리마저 나온다.

은행들의 이런 고민을 이해할 수 있다. 은행도 기업이기 때문에 이익을 낼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는 게 당연하다. 고객의 금리부담을 낮춰주기 위해 역마진이 발생한다면 피해가 고객에까지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은행의 지나친 '눈치 보기'는 고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여러 상품을 꼼꼼히 재보고 대출을 결정해야 하지만 현재로선 비교할 만한 상품 자체가 태부족이기 때문이다. 고객의 편의성을 높이고 금리부담을 낮춰주겠다는 코픽스대출의 도입취지와도 어긋난다.

"이럴 것이면 뭐 하러 코픽스를 도입한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느냐?"는 고객들의 불만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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