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위협하는 주담대..경제회복도 발목잡아

이새누리 기자 2010.02.1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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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담대출 금리 한계상황... 급격한 금리인상시 경제 뇌관]

# 대구에 사는 황모씨(37)는 지난해 1월 연6% 초반의 낮은 금리로 1억원을 주택담보대출 받아 아파트를 샀다. 금리가 낮을 때 대출을 받는 게 좋다는 주위 권유도 많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요즘, 황씨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이사를 위해 집을 내놨지만 거래조차 안 된다. 실물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미분양아파트가 급증했고 가격은 떨어지고 있다. 기대했던 시세차익은커녕 이자부담만 지고 있는데 앞으로 금리가 더 오를 거라는 전망이 많아 매일이 가시방석이다.

돈을 빌려 집을 산 뒤 좌불안석하고 있는 사람은 황씨 만이 아니다. 시세차익을 노리고 경기 용인에 아파트를 경기 일산에 사는 박모씨(51)도 벌써 2년 넘게 억울한 이자만 물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금리인상, 즉 출구전략 시기를 놓고 신경전을 펴고 있는 가운데 돈을 빌려 집을 산 주택담보대출자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1억원을 빌렸을 경우 금리가 1% 포인트 오르면 연간 이자부담은 100만원이 늘어난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 경우 최대 3억원 정도의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연간 300만원, 월 25만원의 부담이 늘어난다. 샐러리맨에겐 녹록치 않은 부담이다.



문제는 현재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한계상황에 거의 달했다는 점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소득과 집값 등의 상황을 고려할 때 6.7~6.8% 정도를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임계치로 보고 있다. 주택담보로 집을 산 사람들이 그 이상이 되면 집을 팔려고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주택담보대출 시장 금리는 5~6% 수준으로 1% 포인트의 금리 인상은 단순한 이자 부담 증가 뿐 아니라 금리가 인내의 한계수준을 넘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 경우 매물이 집값하락을 부르고 다시 매물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조속한 출구전략의 찬반에 상관없이 금리 인상은 서서히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담보대출의 90% 이상이 변동금리상품으로 대출구조가 매우 취약한 상황"이라며 "금리 정책에 따라 시장 상황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만큼 시장 상황을 고려해 정책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선덕 건설산업연구소장도 "고성장, 저금리 정책이 지속된다면 자산 버블은 불가피한 상황으로, 한국은행 등이 시장에 금리 인상 시그널 계속 줄 필요 있다"면서도 "갑작스럽게 큰 폭으로 금리가 인상될 경우 늘어난 대출 이자를 낼 수 없는 한계계층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금융위기를 겪는 동안 신용하위등급 대출과 연체율 모두 나쁜 쪽으로 기울었다는 점도 이같은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고금리인 제2금융권에서 대출이 크게 증가해 급작스런 금리 인상이 단행될 경우 사회적 약자들의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신용하위등급 연체율도 2008년말 8.4%에서 지난해 9월말 10.1%로 상승했다.

김명기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은 "지속적인 상환능력과 향후 소비제약요인으로 작용할지를 판단하기 위해선 GDP나 금융실물자산이 아니라 실제 쓸 수 있는 돈(가처분소득)에 대한 가계대출 비중을 봐야 한다"며 "집값이나 주가가 급락하면 원래 자산가치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말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대출은 125%로 영국을 제외한 미국이나 일본 등 주요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물론 가계대출 이자부담이 금리인상 반대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출구전략 시기를 정교하게 조정해야 하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가계대출이 급증했을 때 금리인상을 실기한 측면이 있다"며 "저금리가 계속 유지된다면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이 계속 증가해 부실 가능성은 그만큼 더 불어날 수 있다"고 경계했다.

호황기에 자산을 늘리는 투자수단으로 활용됐던 주택담보대출이 이제 서민을 위협하고 회복기에 접어든 경제의 발목마저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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