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술푸게' 만드는 심야택시

머니투데이 전예진 기자 2010.01.18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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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술푸게' 만드는 심야택시


"아저쒸~ 춰안이요(술 취한 발음으로)" "천안이요? 타세요." "(택시에 탄 후)아니요. 청담이요."

얼마 전 인터넷에 올라온 '심야택시 잡는 법'이다. 송년모임이 많은 연말이 지났지만 여전히 야간 택시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장거리 행선지를 말해야 겨우 택시가 잡히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서울시 홈페이지와 인터넷포털에는 택시 승차거부에 대한 민원이 줄을 잇는다. 얼마 전 내린 폭설과 한파 속에 상황은 더 심각하다. 엄동설한에 1시간 이상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은 보통이다.



이미 승차한 승객에게 내리라고 말하는 배짱 좋은 기사도 있다. 종로, 광화문 거리에는 택시 손잡이 문을 여는데도 가속페달을 밟는 위험천만한 모습도 곳곳에 보인다.

택시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지하철 막차시간 용산, 성수역에는 탈 수 없는 '장거리뛰기' 택시들이 줄줄이 서있다. 기사들이 자릿세를 걷을 정도로 성황리에 영업 중(?)이다. 신고해도 그때뿐이다. 장거리 승객만 우대하는 '더러운 세상'이다.



하지만 택시기사들에게도 '술푸게 하는 세상'은 마찬가지다. 어느 개인택시기사의 지난해 12월 영업실적을 보면 한달 20일, 하루평균 18시간 근무로 벌어들이는 총 수입은 230만8000원. LPG연료비 67만원, 식대비를 제하면 기사의 월급봉투에 들어오는 순수입은 약 155만원이다.

한 택시기사는 "카드수수료가 대형마트보다 높은 2.2%인데다 콜회비, 네비게이션 통신비, 카드결제기 데이터료 등이 사업자 부담"이라며 "돈 되는 장거리 손님을 골라 태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산, 분당 등 장거리 승객을 태우면 1시간 내 왕복손님으로 일당을 채울 수 있는데 밤새 시내를 돌아봐야 가스비 낭비라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자 서울시는 17일 CCTV로 승차거부 행위를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근 대신 채찍만 휘둘러선 반발이 거세질 뿐이다. 지난해 인상한 기본요금 500원은 기사들 말대로 '껌값'도 안된다. 수수료를 낮추지 않고 카드결제를 의무화하고 11개 도시의 시계할증료를 없앤 결과 바가지요금, 승차거부만 늘었다.


그러면서 뉴욕의 '옐로캡'처럼 돈을 들여 해치택시로 꾸미라고 한다. 기사들도, 시민도 '꽃담황토색'의 예쁜 해치택시를 원하는 게 아니다. 흙빛이 된 택시기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심야에도 신속히 귀가할 수 있는 운송수단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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