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의료선교사 에비슨이 세운 세브란스의학교(연세의대 전신) 1회 졸업생 기념사진. 가운데줄 오른쪽에 있는 이가 박서양.
4일 SBS ‘제중원’(극본 이기원·연출 홍창욱)이 첫 방송됐다. 격변의 시대, 죽어서도 깰 수 없던 신분제의 벽을 넘어 고귀한 직업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불가촉 천민’의 신분상승 스토리만으로도 극적인 시대극이다.
철저한 신분사회에서 호적도 없이 살던 백정이 겪은 굴욕과 울분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SBS의 2000년 설 특집극 ‘백정의 딸’(극본 박정란·연출 이현직)은 이러한 모진 삶을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했다.
‘백정의 딸’의 주인공 언년이의 모델은 ‘제중원’의 주인공 소근개의 모델이 된 박서양(1885~1940)의 누이다. 박서양 일가에 대해서는 캐나다 출신 의료선교사로 고종의 시의였던 에비슨의 수기에 상세히 기술된다. 자신이 치료한 백정 박성춘의 두 아들인 서양과 대양이 나중에 양의가 되고, 딸도 이화학당을 다녔다.
2006년 논문 ‘박서양의 의료활동과 독립운동’(박형우·홍정완)은 독립운동가로서의 행적을 조명했다. 성악에도 조예가 깊었던 박서양은 모교인 세브란스의학교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에 간도로 건너가 대한국민회의 멤버로 항일운동을 펼쳤다. 2008년 뒤늦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건국포장을 받았다.
사람취급도 받지 못한 백정의 자식에서 서양교육의 혜택을 입은 엘리트가 됐지만, 그는 자신의 배만 불리지 않았다. 배운 것을 시대와 민족에게 올바른 방향으로 베풀며 살았다. 수대에 걸쳐 멸시와 천대를 받은 백정의 후예는 그렇게 한국 개화기의 상징적 인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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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학이라는 신문물을 수용하며 호기심과 포부에 넘치는 소근개(박용우 분)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이유다.